행복탐구 보고서
[경험의 멸종(The extinction of experience),크리스틴 로젠]
"기대가 즐거운 경험으로 이어질 때면 기다림이 즐거움을 한층 더 키운다."
1000명 이상의 네덜란드인을 대상으로 행복과 휴가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휴가를 앞두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여행 전의 행복도가 더 높았다." 즉 여행을 기대하는 사람이 여행 계획이 없는 사람보다 더 행복했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결과는 "여행 후의 행복도는 휴가를 다녀온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게 휴가의 긍정적인 효과는 빠르게 사라진다. 연구자들은 이런 차이를 설명하는데 기대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에 관한 책을 읽고, 여행의 세부 사항을 정리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즐거운 경험이었다. 결국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 것은 휴가 자체가 아니라 휴가에 대한 기대였다. 왜 우리는 그 즐거운 경험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려는 것일까?
나는 휴가를 매우 중요한 목적이자 수단으로 삼는다. 휴가는 언제나 무엇이든 좋지만 휴가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여름휴가다. 여름휴가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 중 하나는 비교적 계획된, 장기 간의 일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계획된, 장기 간의 일정'이기에 우리는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인 여행 경험을 막라하여 가장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밀도 높은 기대와 준비를 하게 된다. 우리 속담에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있는데, 사실 여행지에 도착하고부터는 계획과 실제 현실 가운데 지속적으로 갭이 발생하면서 동반자와 원치 않았던 갈등이라던지 기대에 못 미치는 숙소의 컨디션 등으로 잔뜩 부풀려 있는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빠르게 치환되어 버린다. 이런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치환되는 것을 최소화하거나, 기대 이상의 경험을 남기려면 역설적으로 더 꼼꼼한 준비는 필수이다. 그리고, 꼼꼼한 준비의 핵심은 직/간접적인 경험에 대한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챙겨 이를 여러 가지 시간적, 공간적인 변수에 따라 A, B, C 계획으로 옮길 수 있는 유연성이다.
그러나, 이런 꼼꼼한 준비와 환상적인 여행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여행 후의 행복감과 만족감은 한낮 모래사장의 열기가 밀려드는 바닷물에 쉬이 식듯이 빠르게 가라앉아 사그라져 버린다. 사실, 그 행복감은 추억이라는 데이터로 우리 평생에, 어떤 시간에 어제 일처럼 다시 떠오를 수 있지만 그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기대와 즐거움'은 기록되거나 기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행이라는 이벤트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그때였음에도 말이다.
사실, 행복은 여행 그 자체보다는 행복이라는 누적되어 있는 긍정적인 경험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더불어, 내가 겪은 직접적인 경험 외에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타인들의 경험을 모아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더해 지는 '경험의 현실화 또는 실행'에 있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서두에 언급한 "기대가 즐거운 경험으로 이어질 때면 기다림이 즐거움을 한층 더 키운다."는 긍정적인 경험을 실행할 수 있어야 가능하기에 단순히 계획하고, 기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경험은 실행했던 것 사실의 집합이다.
직접 경험은 거의 100% 내 주도로 준비하여 실행한 것이고, 간접 경험은 소셜 미디어의 힘을 빌리거나 타인의 정보와 의견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행의 결과를 긍정적인 경험으로 남기고 이를 다른 기회에 보다 만족감 높은 여행의 결과로 이어지게 하려면 가급적 나만의 방식으로 경험하고 나만의 스타일로 기록하는 것이 좋다. 간접적인 경험의 사례가 나의 결과와 같을 수 있다고 누구도 보장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결혼 20주년을 맞아 가족들과 겨울 해외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때론, 이렇게 긴 텀을 두고, 일생에 의미를 남길 수 있는 여행을 앞 두는 건 삶의 텐션과 의미를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인생은 어쩌면 긴 텀으로 길게 준비되어 있는 여행이라는 긍정적 경험을 통해 행복감을 지속할 수 있도록 거의 무한으로 반복된 이벤트인지도 모르겠다.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