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탐구 보고서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한다."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의 태어난 날이 되면 우리는 일단 축하부터 하고 봅니다. 수명을 가진 동식물 중에 태어난 날을 기록하고, 기억하여, 기념하는 건 인간 밖에 없을 겁니다. 반려동물의 생일을 기념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감정적으로 의인화시킨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함께한 날을 기념하는 것이지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건 아닙니다.
인생을 여러 해 살다 보면 내 생일조차도 의미가 무뎌질 때가 있습니다. 삶이 버겁고 힘들수록 '이러려고 태어난 건 아닐 텐데'라고 자조 섞인 생각을 하다가도 누군가 문득 내 생일을 기억하고 기념한다고 표현하면 서로의 감정이 잇대어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두둑해지는 걸 느낍니다.
어릴 때, 3대가 모여 살아 각박하고 서로의 챙김이 부족할 때는 생일날이 돼봐야 소고기 들어있는 미역국 먹는 것 외에 그리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가끔 집에 여유가 있으면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 먹으라 얼마의 용돈을 쥐어주던 엄마의 소소한 이벤트가 전부였죠.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내 태어난 날이 더 중요하게 기억, 기념된 시점은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부터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뤄 가족의 테두리가 넓고 깊어지면서 축하해 주는 이들도 점차 늘게 됐습니다. 이런 과정에 사회인으로서 특별한 연대를 맺은 이들과의 정신적 교감은 때론 서로의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축하함으로써 서로가 잇대어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50 몇 번째 생일날을 맞았습니다. 이제 정말 50대가 됐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아낌없는 축하와 사랑이 듬뿍 담긴 손 편지 그리고 선물. 어떤 값으로도 치환할 수 없는 '내 가족'이라는 유일함이 이런 순간에 더욱 특별해 짐을 느꼈습니다. 생일날이면 늘 갖가지 음식과 두둑한 선물, 그리고 진심 어린 축하와 격려를 해주시는 장인, 장모님께도 감사했습니다. 마음 표현이 서툰 우리 부모님의 챙김도 고마웠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않고 기억하여 마음을 표현해 준 옛 후배들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내 주변으로 사람이 많이 모일 때, 소위 잘 나가는 시절에는 생일에 받은 쿠폰(교환권)을 겨울에 까지 쓸 정도로 많은 이들의 축하도 있었지만 인간관계라는 게 얼마나 예민하고 어려운지 살아보고 느낀 바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변화무쌍한 연대감이지만 여전히 잇대어 있음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행복(Happy)이란 단어와 날짜를 묶어 특별함을 더 하는 날은 Happy New Year 외에는 Happy Birthday가 유이할 겁니다. Happy New Year는 '새로운 한 해도 행복하게 보내길 바라!'라는 소망과 격려, 응원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Happy Birthday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태어나서 행복하다.'는 뜻보다 '늘(day by day) 행복하길 바란다.'는 축원의 메시지로 하루하루를 응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격려와 응원은 나를 특별하게 기억하고 함께하는 연대가 있다는 것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감정의 공감대와 교류가 잇대어 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더욱 충만한 행복감을 불어넣어 주는 겁니다.
저는 올해 제 생일을 전후로 하여 이런 충만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복감을 더해준 모든 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제가 느꼈던 행복감을 더불어 드리고 싶습니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을 표현해 준 모든 연대와 사랑하는 이들께 감사합니다.
모두 모두 행복, 행복하세요!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