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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엉뚱한 당신

나도 누군가의 악마였으니

by 까칠한 펜촉

리더에게는 여러 가지 역할과 덕목이 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명확한 방향제시, 동기부여, 소통과 협력 증진, 위기관리 능력, 구성원들 성장을 위한 코칭과 티칭, 경청과 공감 등이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역할 가운데도 리더들이 갖고 있는 역량과 특질, 성장 배경에 따라 리더십의 방향은 각각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나를 꼽으라 하면 나는 경청과 공감을 꼽고 싶다.


현대사회에서 요구되는 사회인의 역량 중 하나가 '대화의 기술'인데, <연결의 대화>를 중시하는 리플러스스인간연구소의 박재연 소장은 기업 내 상하 관계 및 동료 간의 적절한 피드백 문화가 건강한 방식의 소통을 이끈다고 하였다. 여기서 피드백이라 하면 대화의 주제(Pinto)를 중심으로 경청과 공감을 통해 자연스럽고도 적절한 의견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대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경청과 공감 그리고, 그에 따른 적절한 대화의 피드백은 상호 믿음과 신뢰에도 영향을 준다. 예컨대 보고자의 발표나 보고를 받는 피보고자의 자세와 태도, 질문의 적절성과 합리적 의견제시 등 종합적인 피드백 행위는 보고자에게 자신의 업무에 대한 경중과 피보고자로부터의 믿음과 신뢰를 짐작할 수 있는 요인이 되기에 진정성을 필요로 한다.


진정성 있는 경청과 공감을 하지 않는 리더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첫 번째, 독불장군식의 리더다. 보고자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던 이미 내가 생각해 놓은 방향이 있고 그 방향이 정답이라는 확증을 해 놓은 사람이다. 이런 부류는 통상 업무 지시 전에 혼자 숙고의 시간을 갖고 나름의 방향성을 명확하게는 제시하지만 자신이 제시한 방향 외의 의견은 웬만해서는 공감하지 않는다. 확증 편향성이 강한 부류이다. 이런 부류는 코칭과 티칭에도 강점을 갖고 있으나 구성원들을 수평적인 협력자로 보기보다는 수직적인 위계관계를 더욱 중요 시 하며, 구성원의 보고 의견을 내가 갖고 있는 의견과 견주어 경쟁하여 이기려는 습성을 갖는다. 이런 독불장군식의 리더는 조직이 위기의 상황일 때는 빛이 나지만 평상시의 안정적이고 창의적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구성원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팀의 역량과 자발적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나 같은 인간 부류다. 반성 많이 한다.)


두 번째, 이글의 주제인 '엉뚱한 리더'다. '엉뚱하다.'란 소위 '핀트(Pinto)'가 안 맞는다는 의미이고 엉뚱한 리더는 핀트(Pinto)가 안 맞는 부류의 상급자를 뜻한다. 엉뚱한 리더는 독불장군식의 리더와 비교해도 더 큰 문제를 갖고 있다. 이들은 경청하지도 않고 공감하지도 않으며 본인 주도의 의사결정을 하지 않고 방향도 제시하지 않는다. 당연히 소통과 협력은 물론, 구성원의 성장에도 큰 관심이 없다. 요즘말로 월급루팡과 고인물인 존재들이다.


여러 유형의 리더를 모셔봤고 연재를 통해 다양한 군상들을 예로 들었지만 정신적, 감정적 훼손과는 별개로 최악의 리더를 난 이 엉뚱한 리더를 꼽는다.




핀트(Pinto)가 안 맞았던 그분


일상의 대화 가운데, 핀트가 안 맞는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대화의 핵심을 놓쳤거나 주제에 벗어난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 갈 경우에 핀트가 안 맞는다는 표현을 쓰는데 내가 경험했던 어떤 분은 자주 이런 방향으로 상황을 만들었다.


예컨대, 한참 중요 사안 보고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창 밖을 내다보며

"야,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차가 엄청 막힐 거 같네. 얼마나 막히려나."

한참 열을 올리며 보고를 하고 있는데

"야, 오늘 밤 OOO 경기에 선발 투수는 누구냐?" 이런 식이다.


그러고는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에서 "그래서, 니 의견은 뭔데? 그걸 확실할 수 있어? 전문가가 확신을 해야지, 나한테 뭘 묻냐?". 물론, 담당자가 보고를 할 때는 이것저것 자기 깜냥에서 고민한 최적의 의견을 갖춰오지만 상사에게 보고할 때는 혹시 잘못짚은 것은 없는지, 부족한 자료와 정보는 없는지, 혹은 담당자가 지나친 편향성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상위 전문가 입장에서 리뷰하여 의견을 달라는 것인데 이를 '전문가의 확실한 의견'으로 속박해 버리면 담당자는 이해관계자와의 협업에서 '모난 돌'만 될 뿐이다.


그와의 관계가 어려운 적은 없었다. 오히려, 쉽고 편했다. 웬만해서는 혼날 일이 없었고 업무 보고라는 어려운 시간을 엉뚱한 얘기로 웃으며 마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늘 불편했던 건 결과적으로는 어떤 피드백도 없었던 터이다. 내 업무가 잘 되고 있는 건지 내 업무에 도통 관심은 있는 건지 혹은, 이런 류의 업무를 리뷰할 능력 자체가 없는 분인지 의심이 들었다.


문제는 최상위자에게 보고할 때 생긴다. 최상위자는 이런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OOO, 이거 어느 선까지 보고하고 내게 가져온 건가? 이 보고의 피드백은 어떻게 받았지? 이 부분, 저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지는 않았나?" 이렇게 물으시면 막상 대답이 궁색해진다. 별말씀 없었다고 하면 직무유기로 뭔가 꼰질러 바치는 거 같고, 피드백한 결과라고 하면 '전문가로서의 확실한 의견'이란 것에 흠집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또한 중요 사안을 놓고 임원급 회의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할 때 내 우군이 돼 줘야 할 이는 묵묵부답이고 쏟아지는 포화를 온몸으로 맞고는 너덜너덜해진 나에게 "전문가가 니 의견하나 관철 못하냐"는 질책으로 육성하고 코칭해야 할 부하 직원,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전문가로의 능력만을 의심받는 상황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핀트(Pinto)가 중요한 이유


핀트가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리더십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경청과 공감 그리고 핀트가 맞는 대화 속에서 상호 간의 믿음과 신뢰가 싹트기 때문이다.'


독불장군식의 리더도 문제지만, '이토록 엉뚱한 리더'는 사실 리더라고 부르기 민망한 이들이다. 더군다나 조직 쇄신을 통해 기업의 혁신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어찌 보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구시대의 유물이자,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는 희귀종에 가까워졌다. 이미 혁신이라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진화의 흐름에서 도태된 멸종 위기종이나 다름없다


핀트를 맞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청과 공감 그리고 적절한 피드백'이 중요하다. 그리고, 경청과 공감은 리더와 구성원 간의 신뢰와 믿음의 바탕이 된다.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듣는 것은 먼저이고 피드백은 그다음이라는 것이다.



- 까칠한 펜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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