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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나약한 당신

나도 누군가의 악마였으니

by 까칠한 펜촉 Mar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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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지심(自激之心), 열등감(劣等感), 콤플렉스(Complex)


이 단어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마음이나 감정의 한 종류라 생각한다.

이 마음은 그것을 감추고 애써 부정하려는 어떤 이에게는 폭력적인 행태로,

이 마음을 숨기지 않고 극복하려는 이에게는 성장을 위한 인내와 집념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열등감은 성장을 위한 가장 강력한 동기이다."라고 얘기하면서도 열등감이 지나치면 열등감 콤플렉스가 되어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이로 인해 삶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고 하였다.


흑백,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나 역시 자격지심, 열등감, 콤플렉스를 지독하게 겪은 적이 있으며, 어떤 면은 죽을 때까지도 해소되지 않을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내 주변에서도 이런 상태에서 자기 방어, 거짓말, 허세, 언어폭력 등으로 자신을 감추고, 숨기려는 사람을 많이 경험했다.


우리는 안다.

자기 방어와 거짓말, 허세, 언어폭력을 표출하는 강도와 세기만큼 열등감과 콤플렉스로 인해 우리 내면은 더욱 깊이 상처받는다는 것을.

칼날이 바깥을 향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더 날카롭고 예리한 칼날은 우리 내면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이것은 자격지심, 열등감, 콤플렉스에 대한 나의 이야기이다.



 

자격지심(自激之心):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 


안 되는 모든 일에는 수 십, 수 만 가지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잘 되는 일에도 그러하듯이.

실패와 실수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실패와 실수 후에 그 원인을 실력, 열정, 집중력, 전문성 등 여러 가지로 평가받을 때는 '다음에 만회하면 되지'라는 상투적인 다짐을 쉽게 하긴 어렵다. 물론, 어떤 이들은 실패와 실수에 대해서 남 탓을 하거나 평가하는 이들의 아집과 독선을 문제로 삼아 자신의 잘잘못을 인정하지 않기도 하지만, 자격지심이 강한 사람들은 그 문제의 원인을 항상 스스로 자신을 지목한다.


왜일까? 내 경우엔, 우선 그 일은 나 홀로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실제 내 능력을 넘어섬에도 그저 열심히 하면, 노력하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기 때문이고, 주변의 동료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원인은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미흡함을 스스로 인지하면서도 도움을 구하지 않은 독단과 집착이었다.


세상 사 많은 일 중에는 될 이유보다 안 될 이유가 훨씬 더 많은 경우가 있다.

될 것은 나의 개인기로 해결할 수 있지만 안 될 것은 능력 있는 주변의 동료들을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식별된 어려움이 실제 해소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 이실직고를 해야 한다. 항상 그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알면서도 실패와 실수를 하고 결국 그 경험은 그와 유사한 일과 마주치면 자신감을 떨어뜨려 종국에는 자격지심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자격지심에서 해방되는 첫 번째는 자존심을 허물고 협업, 협력하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협업과 협력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개인의 아집을 넘어 그 보다 거대한 조직의 합목적을 생각하며 함께 더불어 문제해결에 나서하는 것이다.




열등감(劣等感): 자기를 남보다 못하거나 무가치하게 낮추어 평가하는 마음


열등감과 유사한 단어로 열위감(劣位感)이 있다.

**열위감(劣位感): 자신이 남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고 느끼는 감정


열등감은 사회적 지위, 능력, 경제력, 외모, 학력 등 여러 측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뒤처졌다고 느끼는 감정이고 열위감은 이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위치나 서열의 차이에서 오는 감정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열등감이나 열위감은 왜 생기는 걸까?

내 경우엔, 상대와의 비교를 통해 우월감과 자만심을 가지려는 태도에서 이 감정은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한때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 유행할 때 핸드폰 카메라를 갖다 대면 어떤 객체들의 메타 정보가 디스플레이되는 게임이나 서비스가 행했다. 그 유명한 드래곤볼의 스카우트가 그런 기기일 것이고 젊은 층에 유행했던 포켓몬고를 떠올리면 된다. 구글 글래스가 구상한 서비스나 그 퇴출된 원인이 바로 휴먼 라벨링이다. 개인정보와 사생활 침해에도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휴먼 라벨링(Human Labeling), 내가 만든 단어다. 사람을 하나의 객체(object)로 보고 신원정보와 교육, 경제, 금융, 건강 등 생애 전 주기 동안 누적되는 여러 유형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 평가하는 일련의 행위를 의미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종특인지도 모른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경쟁이 될 수 있는 상대에 대한 장, 단점을 파악하여 어떻게든 보다 우월한 전략을 세우려는. 이는 인간종의 보편적인 본능이겠지만 이 경쟁심이 유난히 강한 종류가 있는데, 자연계에서도 흔히 보는 짐승의 썩은 고기를 먹거나 남이 사냥한 사냥감을 훔쳐 먹는 하이에나, 독수리, 리카온과 같은 인간들 말이다.


사자와 호랑이를 봐라. 그들이 어떤 열등감, 열위감을 느끼는지.

그들은 약육강식 피라미드에 정점에 있기에 그런 감정을 느낄할 이유가 없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들의 뒤꽁무니를 쫓으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하이에나, 독수리, 리키온뿐이다. 그런데, 이 하이에나나 독수리, 리카온 무리들을 봐라. 자기들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면 그 대상의 뼈, 가죽까지 남김없이 소멸시킨다.


그런 인간들은 우월감, 자만심이라는 가면 안에 자신을 감추는 열등감과 열위감에 쩌든 나약한 인간 종류이고,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흔히, 열등감에서 해방되려면 자존감을 높이라고 조언하는데 나는 자존감과 타존감을 동시에 높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나의 내면에서 나를 아끼고 내 존재를 애정하는 만큼 타인의 존재도 나못지 않은 존재임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열등감과 열위감에서 해방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을 향한 진심의 존중과 인정이 결국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 가장 올바른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콤플렉스: 자기가 다른 사람에 비하여 뒤떨어졌다거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성적인 감정 또는 의식


콤플렉스를 느낄 때 버릇이 있다.

내가 누군가를 대하면서 이 행동을 하고 있다면 이는 100% 그에게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말 더듬


초등학교 4학년 때, 집 안에 큰 불화가 있었다.

가산은 망했고, 함께 오손도손 지냈던 이웃집 반지하에 세를 들어살게 됐다.

오손도손 지냈던 수평적인 관계는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수직적인 관계가 되어 이는 함께 놀던 동네 친구, 형, 동생의 처지에까지 이어져 우리 형제는 누구 남매집에 세 들어 사는 형제로 낙인 되었다.


우리 가정이 다시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어 이사하기까지 약 6년의 시간이 걸렸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했고 왠지 모르게 새로운 친구들은 나보다 나은 형편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에게 말을 걸면 괜스레 얼굴을 붉히면서 말을 더듬었던 그런 때가 있었다.


그로부터, 가난, 왜소함, 성적, 차림새, 학력, 학벌, 외모, 경제력, 자동차, 액세서리, 외국여행, 유학, 부모의 직업, 부모의 형편 이런 많은 것들에서 나는 콤플렉스를 겪었다.


한참 사회적으로 잘 나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도 나보다 좋은 아파트에 사는,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H그룹 본사 기획조정실이나 전략기획본부에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콤플렉스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벽으로까지 느껴져 그 벽 가까이는 가지 않으려는. 그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상황에도 이르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리 아이들을 봤다.

아빠와 엄마의 형질을 고스란히 반반씩 물려받은. 세상에 둘도 셋도 없는 사랑하는 내 아이들.

그리고,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 아이들이 아빠와 같은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면 어떡하지?


내가 느끼는 콤플렉스는 조금 불편할 정도지만, 이 아이들이 아비의 유전적 특성으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면 어떨지 몹시 두렵고 가슴 아팠다.


그런데, 이런 마음의 번민을 떨쳐준 건 다름 아닌 우리 아이들이었다.


인생에 어떤 변곡점에 있을 때마다 아빠에게 응원의 손 편지를 써주는 큰 아이.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제는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싶다는 아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소신껏 달려가는 아이. 아빠가 늘 자랑스럽고, 아빠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밝고 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아이.


우리가 서울에 살지 않아도 우리 가족은 늘 서로 아끼고 사랑해서 행복하다는 작은 아이. 아빠의 금명함을 팔지 않고 갖고 있으면 언제가 아빠가 유명해졌을 때 엄청난 가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아이. 유튜브에 있는 아빠의 강연 영상이나 인터넷 검색 결과를 보면서 흐뭇해하는 아이. 남들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섞은 것이고 우리는 우리 삶에 만족하는 것이 더 똑똑하고 건강한 것이라는 어른스러운 말을 하는 아이.


어쩜 이렇게 바르고 올곧을 수 있을까?

나의 콤플렉스를 치유한 이들은 놀랍게도 나의 후세인 나의 아이들이었다.


나의 더 나은 삶의 태도와 습관은 이 아이들에게도 스밀 것이다.

그래서, 치유하기 어려웠던 일상의 습관을 조금씩 조금씩 바꾸고 나아지려 노력한다.

 

만약, 콤플렉스에 빠져 올바른 태도와 습관을 갖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의 사랑하는 아이들을 봐라.

당신이 조금 더 나아져야 할 이유가 그들에게 있고, 그들이 당신을 치유할 것이다.

가족은 사랑이고, 치유의 원천이다.



- 까칠한 펜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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