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과 당구장
나는 오늘날의 네이버를 있게 한 일등 공신으로 ‘지식iN’ 서비스를 가장 먼저 꼽는다.
이 서비스는 대한민국 웹 서비스를 한 단계 도약시킨 주역으로, Web 2.0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식iN’은 ‘집단지성’과 ‘사용자 참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사용자 주도형 웹 생태계를 자생적으로 형성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더불어, 검색 서비스를 소비자와 생산자가 상호 교차하는 플랫폼(Platform) 형태로 이끈 서비스이기도 하다.
‘묻고 답한다(Ask & Response)’는 개념은 어찌 보면, ‘컴퓨터/서버 – 네트워크 – 서비스’로 이어지는 가치 사슬을 통해 사용자가 인터넷이라는 매체에서 가장 원초적으로 원했던, 근본적인 니즈(Needs)를 충족시킨 구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존재 자체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다양한 Enrich 한 정보를 자유롭게 찾아보고 재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묻고 답하기'는 인터넷의 본질에 좀 더 가깝게 사용자를 이끈 서비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묻고 답하기 형태의 서비스는 네이버 '지식iN'(2002년 10월 7일 런칭) 이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서비스가 바로 일간 신문지 한겨레에서 운영했던 대한민국 최초 지식검색 사이트인 디비딕(DBdic) 닷컴이다. 이 서비스는 초창기 닷컴들의 가장 큰 실수였던 섣부른 유료화로 인해 사용자 이탈을 초래했고, 이듬해인 2003년 3월에 엠파스에 전격 인수되어 엠파스 '지식거래소'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재개하게 된다.
다음 카페(1999년 런칭) 역시, 네이버 '지식iN' 서비스 이전에 출시했고 로열티 높은 사용자층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답 정보가 풍부했지만 다소 폐쇄적으로 운영됐던 당시 카페 서비스의 특성에 따라 검색 콘텐츠로 활용하기에 미흡했던 부분이 많았다.
결국, 핵심은 Open or Close 정책이었다.
Open 한다면 내 콘텐츠의 방문자와 구독자가 늘리는 대신, 상업적 용도로 활용되어 수익화되었을 때 권리 주장을 할 수 없고, Close 한다면 방문자와 구독자 확보를 할 방법이 없기에 커뮤니티 외 공간에서의 쓰임새가 제한된다. 이 부분이 바로 Web 2.0의 문제 지점이고, Web 3.0 사상의 동력이 된다. 그러나, 어쨌든 이 당시는 Web 2.0의 개화 시기였기에 Open과 Close에 대한 논쟁이 그다지 격화되지 않았다.
2003년 3월 엠파스가 '지식거래소'를 런칭하면서, 본격적으로 '네이버 지식iN vs 엠파스 지식거래소'의 경쟁이 점화되었다. 이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검색 서비스의 핵심 경쟁 요소가 '검색 엔진의 성능에서 검색 콘텐츠의 질과 양'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전환에 있어 트리거가 된 것은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카페인데 양질의 콘텐츠를 폐쇄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커뮤니티의 한계가 노출된 것이고 이는 후에 공개형 블로그나 소셜 미디어의 오픈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전지현 씨가 삼성 마이젯 프린터와 올림푸스 광고 모델로 연달아 화제에 오르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인지도와 인기를 몰아갈 즈음 네이버는 '지식iN'의 광고 모델로 전지현 씨를 전격 발탁한다. 뒤늦게 네이버의 '지식iN'을 추격하여 검색 서비스의 경쟁 구도를 만드려 했던 엠파스는 '지식거래소' 런칭과 함께 당시 [어린신부]라는 영화로 국민 여동생이란 별칭과 함께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문근영 씨를 엠파스의 얼굴로 전면에 내세운다.
당시 젊은 층에게 '전지현'이라는 키워드는 말 그대로 '핫(Hot)' 했다. 섹시 퀸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효리 씨와는 다른 면으로 젊은 층에 어필을 했다. 큰 키에 날씬한 몸매,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게다가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막 시작한 터여서 '스타성'은 당대 최고였다. 그런 '전지현'에게 엠파스는 아직 10대였던 '문근영'으로 맞불을 놓은 셈이다. 그것도 미국 스트립 바에서나 볼 수 있는 바니 토끼 의상을 입혀서..
상대가 됐겠는가?
여기에서 말하는 상대라는 것은 성인 배우와 아역 배우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지 배우로서의 스타성, 외모, 역량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스타성이야 문근영 씨도 전지현 씨 못지않았으니.
다만, 광고 모델이 주는 느낌이랄까? 대한민국 1등 섹시 퀸의 이미지를 가진 전지현 씨와 고등학생 어린신부, 문근영 씨의 구도는 서비스의 성숙과 미성숙의 차이를 보이는 단면처럼 보였단 말이다.
한겨레 DBdic을 인수하여 런칭한 엠파스의 지식거래소는 서비스 초기부터 이런저런 잡음이 있었다. 사실 광고 모델을 누굴 쓰냐에 대한 차원이 아니라 'Web 2.0, 집단지성, 사용자 기반 콘텐츠 생산(UGC, UCC)'에 대한 개념의 이해와 전략적 관점의 차이가 문제였다.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Web 2.0, 집단지성, 사용자 기반 콘텐츠 생산(UGC, UCC)'라고 정의된 것이지 한참 붓칠을 하고 있을 때는 그 그림이 정물화인지 인물화인지 풍경화인지 어찌 알겠는가. 그러다 보니 어떤 전략이 트렌드를 이끌어 갈지, 새로운 서비스 규칙을 만들어 갈지 아무도 모를 때였다.
결과적으로, '집단지성'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봤을 때, 네이버의 '지식iN'은 일반인이 묻고, 일반인이 답하면서 Score & Rating 시스템을 통해 필터링과 경쟁 구도를 지향했다면, 엠파스의 '지식거래소'는 일반인이 묻고, 전문가가 답하는 답변 콘텐츠의 순도를 지향했다. 이런 면에서 이후에 Web 2.0의 키워드는 '집단지성'이었어!라는 결과론적인 부분에서 엠파스의 '집단지성'은 묻는 이에게만 한정된 '집단지성'이었기에 네이버의 '지식iN'과는 수평적인 경쟁이 시작부터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이유는 한 꺼풀 떠 까보면 전문가들(주로, 병원, 변호사 등 인터넷 홍보가 필요한 전문직)에게 소정의 입점비를 받아 수익화하려 했던 어정쩡한 수익모델도 초기 경쟁에서 밀리는 빌미가 되었다.
광고 모델과 서비스 전략에서 엠파스는 이미 크게 밀렸다.
전략적으로 내민 지식거래소 카드가 실패하자 연이어서 엠파스 랭킹, 엠파스 리뷰 등의 서비스를 런칭했지만 사용자의 반응은 미적지근했고, 비슷한 시기에 런칭한 블로그에서도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때 엠파스의 주가는 2,000원대 까지 떨어져 공모가 14,000원을 주고 우리 사주를 매입한 전 직원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던 시기였다.
이 당시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나는 엠파스 금융서비스 중 증권 서비스 개편을 준비하던 터였고 같이 일하던 개발자가 증권 서비스를 개발하다 보니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됐고, 우리 주식이 거의 1/7 토막이 나다 보니 큰 근심으로 나만 만나면 우리 주식 어떻게 될 거 같냐고 허구한 날 묻길래 귀찮은 마음에 그렇게 궁금하면 대표님 찾아가 봐라 했더니 정말 찾아갔다. 당연히 엄청 깨지고 왔고.
모든 일은 결국 결과다.
우리 엠파스도 최선을 다했고, 지식거래소가 완전한 사용자 기반의 집단지성 서비스를 지향하였더라도 수천 명의 알바를 동원하고 당대 최고의 광고 모델을 내세웠던 네이버의 물량 공세를 이기기는 여러모로 부족한 했을 거다.
한 번은 FGI(Focus Group Interview)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엠파스 검색창에 네이버 검색결과를 연결하거나, 네이버 검색창에 엠파스 검색결과를 연결해도 대부분의 참가자는 검색결과의 품질에 관계없이 네이버라는 브랜드에 높은 충성도를 보였다. 이미 네이버는 검색 포털의 1인자로서의 위용을 갖추고 있었고 그 견고한 철옹성을 깨부술만한 효과적인 전략이 엠파스에게는 없었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통한 웹 서비스의 핵심은 누가뭐래도 검색 서비스이고, 그 검색은 관문(Portal)의 역할을 하며, 인터넷으로 통하는 관문은 네이버 하나면 충분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좋아하는 아내(당시는 여자친구)를 만난 후 호기심에 그의 소설을 몇 편 보았다.
좋은 책들이 많았지만 내게 가장 큰 임팩트를 준 작품은 단연, <개미>였다. 소설 개미의 백미는 단연, 인간과 개미의 소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서 소통이란 단순히 대화(Conversation)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Solidarity)와 화합/연합(Union)을 의미한다.
개미는 인간 세계와 개미 세계를 평행하게 그리며, 서로 다른 두 문명이 충돌하고 교류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미> 3부 즈음에 인간과 개미 문명의 진정한 접점이 드러나는 핵심적인 클라이맥스가 등장하는데 인간(인간 세계의 주인공 격인 줄리)과 개미(개미 세계의 주인공인 327호 개미)가 어떤 컴퓨팅 인터페이스를 통해 문자 기반의 채팅처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문장 채팅을 통해 두 문명은 상호 문명을 이해하고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모은다.
나는 지식 소통의 본질을 여기에서 이해한다.
바로,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는 행위와 공통의 문제에 대한 범위 정의의 인식이다. 우리는 늘 집단과 사회를 구성한다. 하나의 객체는 무리를 이뤄 집단을 만들고 집단과 집단은 더 큰 조직으로 다시 묶인다. '가족, 친구, 학교, 회사, 동호회, 커뮤니티, 종교, 우리동네, 고향, 지역, 민족, 종족, 나라, 국가, 대륙, 지구촌, 태양계' 뭐 이런 식으로 우리는 늘 어떤 바운더리를 두고 공통된 연결점을 찾아 나와 다른 이, 나와 다른 어떤 객체를 연결시킨다. 그리고, 그 연결의 범위를 상황에 따라 좁히고 넓히며 상호 이해와 소통의 방향성을 조정해 나간다.
따라서, 공통의 문제에 대한 범위의 인식도 이러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연결의 범위가 지역과 거리의 편차로 제한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연결해 줄 수 있는 매개체(컴퓨터/서버 – 네트워크 – 서비스)가 필요하고 그 매개체를 통해 지혜를 모으는 행위는 그 행위에 참여하는 객체를 제한(완전히 오픈된 집단지성)할 수 없으며 상호 소통이 가능한 인터페이스(네이버 or 엠파스)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대한민국 역사에 큰 변화가 있었다.
대통령 탄핵 말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서 대한민국은 그의 특징과도 같이 불통하여 분열되었다.
그는 지시하고 윽박지르는데만 익숙했고,내편과 남의 경계가 아주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편은 절대 선(善), 남은 절대 악(惡)으로 구분하였다. 그래서, 그의 편에 있는 어떤이가 극악무도의 범죄를 저질러도 그것은 절대적으로 선(善)한 행위라고 할 만한 명분이 있었다고 하였고, 반대편에 있는 어떤이는 손만 들어도 그건 폭력적이고 야만의 악(惡)한 행위라 몰아 붙였다.
그는 정당정치를 배척하고, 전제군주주의 부활을 꿈꿨던 파시스트였다.
이것이 바로 그가 일갈했던,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선언의 핵심이었다. '나는 남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모든 이는 나와 내 아내에게 충성해야 한다.' 가 실제로 그가 하고 싶었던 복심이었던 것이다.
이 독재, 파시스트의 등장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동안 민주화와 국민 주권 기반의 인격적 평등화에 가려져 있던 수만, 수천년간 뿌리 깊게 사피엔스 D.N.A에 박혀 있던 '추종하는 유전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며 오랜만에 등장한 알파 메일(Alpha Male)에 매료되어 본인의 노예 근성을 드러낸 많은 이들이 있었다. 정말 우숩고도 한심했던 건 본인이, 혹은 본인의 조상이 노예와 종살이를 오래했던 그 본성이 드러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북한과 중국 공산당의 개입 등으로 문제 원인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12.3 내란 후 D지역의 SM시장 상인 인터뷰 내용은 이러했다.
이번 계엄령 선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글쎄요. 저희는 그런 것 잘 모르고, 우리 원님들이 알아서 다 해주시겠죠..." 안타깝게도, 과거 민주화 운동을 통해 개인의 주권을 회복한 건 깨어있는 보통의 사람들뿐이었나보다.
종살이, 노예살이를 오래했을 지라도 이제는 자신들의 후손을 위해서라도 깨어나길 바란다.
자신들이 아들, 딸, 손자, 손녀가 여전히 종살이 하길 바라는 것인가?
결국 대한민국은 다시 일어설 것이고, 그 주저앉아 있는 이들까지 일으키려 노력할 것이다.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