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누군가의 악마였으니
2021년 5월 26일, 전 직장 선후배들을 만나 오랜만의 회포를 풀며 옛 추억을 되새기고 있을 때였다. 거의 동시에 각자의 핸드폰에서 카톡 메시지가 울렸다. 부고였다. 한 참 거나하게 한 잔 하고 있었던 터라 부고 메시지만 확인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OOO님, 부모님이 돌아가셨나 보네요. 장례식장 가실 건가요?” 한 후배가 묻고 있던 순간에 ‘어? 부고가 좀 이상한데?’라고 느꼈고, 다시 핸드폰을 꺼내어 부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상했다. 우리가 아는 그분의 이름이 상주가 아닌 고인 란에 적혀 있었다. 다들 다시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2021년 5월 25일, 전 직장을 같이 다니던 동료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을 했다. 디지털 지도/내비게이션 SW를 개발하는 엔지니어였다. 대한민국 최고 IT 회사를 다니던 분이었고, 서울대학교를 나온 매우 유능한 분으로 기억한다. 5월 27일, 그 회사에 재직 중인 몇몇 지인들께 연락을 드렸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처음에는 교통사고라 했는데, 차츰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마침 그즈음에 그와 같은 회사를 다니다 최근에 퇴사한 후배와의 술자리가 생각났다. 그 후배의 퇴사 사유도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5월 28일부터인가, 공중파 TV에서 고인의 사건 소식이 방송되었다. 괴롭힘을 했던 피의자가 누군지, 어떻게 괴롭혔는지 자세히 방송되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대한민국 매스미디어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부각되었다. 한동안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성추행 미투 사건과 같이 상당 시간 동안 여러 방송에서 이 사건과 가스라이팅에 대한 이슈를 다뤘다.
고용노동부의 「2023년 직장 내 괴롭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2.3%가 최근 1년 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2023년 한 해 동안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총 10,028건으로, 이는 전년 대비 12%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아래는 몇 가지 주요 현황이다.
1. 한국의 직장 내 괴롭힘 현황
① 고용노동부 「2023년 직장 내 괴롭힘 실태 조사」
전체 응답자의 22.3%가 최근 1년 내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유형별 비율: 언어적 폭력(51.2%), 업무 과다 부여·배제(29.7%), 성희롱(13.5%)
신고율: 피해자의 60% 이상이 "두려움" 또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신고하지 않음
②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22년)
여성 근로자의 34%가 성희롱 또는 성차별적 언행을 경험했으나, 75%는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하지 않음
③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임금노동자 중 61.5%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남
여성의 경우 68.9%로 남성(48.8%) 보다 높은 비율을 보임
2. 주요 피해 영향
① 개인적 영향
정신 건강: 우울증(65%), 불안 장애(52%), 수면 장애(40%)
신체 건강: 두통, 소화 장애 등 신체화 증상(30%)
② 조직적 영향
생산성 감소(연간 1.8조 원 이상 경제적 손실 추정 -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직률 증가(괴롭힘 피해 조직의 이직률은 2.5배 높음)
3. 괴롭힘 유형별 사례
① 언어적 폭력: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래?" "네가 이러고도 사람 새끼냐?"
② 업무적 배제: 중요한 회의에서 제외하거나 업무 성과를 부정
③ 신체적 경계 침해: 고의적인 접촉, 개인 공간 침범
④ 온라인 괴롭힘: 메신저·이메일로 지속적인 비난, 집단 채팅방에서 무시
4. 피해자 직급 분포
① 사원급이 51.6%, 대리급 30.1%, 과장급 12.9%, 차장급 2.5%, 부장급 이상 2.9%
5. 기타 통계
①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62%가 결국 사직하게 됨
② 괴롭힘 가해자의 61%가 상사이고, 33%가 동료
③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60%가 여성
주목할 점은
첫 번째로 고용노동부의 「2023년 직장 내 괴롭힘 실태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22.3%가 최근 1년 내 직장 내 괴롭힘 경험했다고 했으나, ‘피해자의 60% 이상이 두려움 또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라는 사유로 신고율이 낮다’라고 했으며 실제는 약 61.5% 이상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수치로 볼 수 있다. 통계적 수치만 보면 10명 중 4명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본 적이 없다는 얘긴 데, 경험 상 받아들이는 정서와 감정 상태가 다를 뿐이지 이런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오너이거나 오너의 가족 외에는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직급이 낮을수록 괴롭힘을 당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와 반대로 직급이 높을수록 신고율은 더 낮다고 본다.
세 번째로 가해자의 절대다수는 상사이나 약 33%의 비율로 동료를 지목한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흔히들 동료라고 하면 동기생이나 후배들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협업과 협력을 중요 시하는 현대 조직 문화에서 동료는 같은 부서 내 동일 직급군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조직, 테스트 포스(TF) 등 다양한 물리적 공동체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33%의 비율이 절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좀 낮게 보인다.)
호모 사피엔스의 농업혁명으로 인해 공동의 언어와 협력 체계가 발전하여 문화, 역사, 신화가 되었고, 그 신화가 창조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회사’이다. ‘회사’는 사업주의 신념과 철학으로 시작되었다가 회사 공동체의 사훈(Mission), 비전(비전선언문, Vision Statement), 핵심 가치(Core Values) 등을 규범과 원칙으로 하여 성장하는 공동체이다.
회사는 직장인이라면 하루 24시간 중 정규 근무시간 8시간, 점심시간 1시간을 포함하여 최소 9시간 동안 머무는 공간이며, 삶의 개척과 성장, 성취, 실패, 좌절의 순간을 개인과 집단이 함께 경험하는 작은 사회 집단이다. 그래서, 애자일 조직에서는 부서를 Tribe라고 부르기도 한다. Tribe(부족)는 피를 나눈 혈연관계로부터 시작되었다. 회사와 혈연으로 맺어진 부족의 공통점은 모두 ‘생존’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과 다른 점은 그 ‘생존’의 지향점이 부족이 아니라 그보다 더 거대한 회사(Company)라는 조직에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혈맹 집단과 회사 조직은 너무나도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혈맹 집단은 DNA 속 특질을 나눠 갖고 비슷한 외모와 성격, 태도, 습관을 공유하며 개체의 성장을 집단 전체가 돕고 그의 실수와 실패가 쉽게 용인될 뿐 아니라 때론 다른 개체에 비해 역량과 능력이 부족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오히려, 뛰어난 개체에 비해 더 많은 관심과 보살핌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회사라는 조직은 특정 개체나 특정 부족(Tribe, 팀, 부서)의 생존에는 관심이 없다. 오롯이 회사 그 자체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이들의 DNA에는 이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 줄 ‘이윤과 성과(Profit & Performance) 추구’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 DNA는 호모 사피엔스가 회사라는 출입문 앞에 들어서자마자 그 개체의 DNA와 결합하여 독특한 변신을 한다.
멀끔한 회사원이었다가 예비군 훈련장만 가면 개XX 같은 꼴이 되는 예비군들, 딱 그 꼴이란 말이다. 그런 모습으로 우리는 회사에 있는 거다.
대마왕 대표이사, 저승사자 본부장, 악마의 표상과 같은 부장, 호랑이 없는 굴에서는 지기 왕이지 차장, 꼬리 치는 개 같은 과장, 하루 종일 눈치 보며 두리번 거리는 미어캣 대리,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곧 잡아 먹힐 것 같은 표정의 톰슨가젤, 신입사원.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각 회사 조직의 긴장감이나 상황, 업무 밀도에 따라서, 어쩌면 이런 표현조차 모자라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톰슨가젤 같은 신입사원 시절과 미어캣, 개 같은 과장 등의 시절을 거쳐 임원이 되었다. 실장, 본부장 타이틀로 여러 명의 직원을 채용했고 또 여러 명의 직원이 퇴사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퇴사 사유는 역시 사람에 대한 문제였는데, 그 사람 이름 석자만 들어도 손이 떨리고, 심장이 격하게 뛰며 공황 장애 증세까지 온다는 것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다른 직장도 구하지 못한 직원이었다.
처음엔 선 듯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 때문에 그 지경이 될 수 있나?
그건 오만한 내 착각이었다. 그 증세를 나 역시 겪고 있었지만 각성하지 못했을 뿐이다. 생전 처음으로 출근길에서 실신을 했다. 정신으로 억누르고 있던 것을 몸이 먼저 각성했다. 자율신경계 기능장애가 있다고 했고, 이후 공황과 함께 자주 찾아왔다.
이후,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악마였고, 퇴사의 사유가 되었다는 생각에 몇몇 직원들이 생각났다. 나름 가르치고 코칭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직장 내 갑질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회사를 마무리하는 시점에는 그 직원들을 중심으로 더 많이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쳐 하지 못했던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했다. 그 직원들이 아직도 많이 생각나고 그립다.
이 글들은 지나온 나의 반성이면서 이제 관리자로 접어드는 직장인들에게 코칭과 협업의 방식을 조언하기 위함이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통계 중 하나로 마무리해 보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조직적 영향은 ‘조직의 생산성 감소’이다. 이는 연간 1.8조 원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이라고 한다.
직장인은 회사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고 일을 한다. 그리고, 인력과 조직은 경영전략, 업무 프로세스, 업무 시스템과 함께 조직의 생산/효율성의 한 축이며 핵심 경쟁력임을 회사의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모든 관리자들이 반드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다음 챕터에서는 내가 경험했던 사례를 중심으로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의견을 제시하겠다.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