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누군가의 악마였으니
우리는 언제 공포를 느낄까? 그전에, 공포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공포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공포와 현실에서 마주치는 공포는 느낌도 긴장감도 훨씬 다를 것이다.
공포심과 무서움을 간혹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공포심은 생존 본능과 관련된 기본적인 감정으로, 실제적이고 즉각적인 위협에 대한 반응이다. 눈앞에서 사고를 목도하거나 칼을 든 강도를 만나는 상황이 그런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포심의 특징 중 하나는 일시적이며 위험 상황이 해소되면 감정도 사라지게 된다.
무서움은 공포심에서 파생된 감정으로, 위험이 실제적이지 않거나 상상에 기반한 경우에도 느끼는 감정이다. 현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과거에 경험한 불안이나, 공포스러운 상상이 더해서 심리적인 불안과 떨림, 긴장을 느끼게 된다. 무서움의 특징 중 하나는 불안과 결합하여 공포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과 뇌가 이를 인지하고 해석하여 유사하다고 판단하는 상황에서 무서움의 감정이 더욱 증폭될 수 있다는 거다.
따라서, 공포는 일시적이지만 그 흔적은 트라우마로 남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와 같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탄 낼 수도 있으며,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자주 때리는 놈은 때리는 요령이 몸에 밴다. 그리고, 자신이 맞았던 경험까지 살려, 맞으면 더 아픈 곳을 때린다. 가장 치명적인 급소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여기저기 때리지 않고 급소 한 곳을 집요하게 때린다.
격투기 얘기가 아니다. 우리들 회사, 우리들의 직장 얘기다.
일생을 살며, 생존에 위협을 느낄 만큼의 공포심과 그 트라우마(무서움)를 경험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지만, ‘가정 폭력, 학교 폭력, 데이트 폭력, 스토킹, 가스라이팅 등’ 실제로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들이 있다.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도 그중 하나이다.
나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유명을 달리한 동료를 경험했다. 그는 유능했고, 유쾌했으며,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괴롭힘이나 폭력의 상황을 목격한 주변인들이 ‘혹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고 의심하는 태도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상황을 제지하지 않거나, 관망하고 심지어 동조를 한다. 이런 현상은 대체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 및 그 목격자들에 비해 우월한 지위에 있거나 무리 내에 힘이 가장 세기 때문이다. 그 목격자들도 이미 피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될 여지가 많기에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적극적인 행동보다는 관망과 동조의 자세를 취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한 가지 더, 피해자에게 절망적인 상황은 가해 행위를 알면서도 묵인하는 상급자의 처신과 회사의 태도이다. 실제 그 동료에게도 있었던 상황이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내가 경험했던 바이기도 하다.
사람이 무섭다는 느낌이나, 감정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하면 그 사람이 나약하거나, 심리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직을 하고 첫날부터 주변의 인사가 ‘부디 잘 적응하여 소프트 랜딩하시길 바란다.’ 일색이었다. 그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많은 직책자들이 혹은 업무 담당자들이 어떤 사람을 무서워해서 퇴사를 했다는 얘기를 했다. ‘21세기, IT 회사에서 사람이 무서워 퇴사를 해? 얼마나 무능력했으면 사람을 무서워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한 지 3개월 만에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무서워할 수 있는지, PTSD 같은 트라우마가 전쟁을 겪은 군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내 그 사람과의 대면을 하기 위해서는 한동안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러다가 마주치면 호흡이 멈추고 머리가 빙빙 돌았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그런데, 직무 상 자주 마주쳐야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정말 많은 시간, 많은 날들을 고민했다. 수면 시간 외에는 늘 회사 생각, 일 생각 밖에 하지 않았다. 주말에도 늘 상 노트북을 끼고 살았고, 언제라도 연락이 오면 피드백을 해야겠기에 핸드폰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안 해본일,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그리고, 일하는 방식이 나와 많이 달랐다. 처음에는 일하는 방식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무시를 했다. (나름 대기업에서 내가 만든 전략이고, 프로세스인데?) 디테일한 것 하나하나가 다 걸렸다. 큰 소리가 나고 폭언이 시작됐다. 같이 일하는 파트너들조차도 문제였다. 그들의 문제는 또 나의 문제였다. 관리자였기에.
어떤 때는 나를 바이패스하고 내 하위 직책자들에게 직접 일을 시키고 보고를 받는다. 자신이 오너라는 이유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지위체계가 무너지고 통제가 안된다. 하위 직책자들과 그 밑에 직원들은 더욱 혼란스러워한다.
관리자를 세워 놓고 실무자처럼 쓰고, 마음 내키는 데로 조직을 운영한다. 그 사람, 그 회사의 한계였을 것이다.
영혼이 얼음처럼 얼었다가 깨져버렸다.
보통 성인의 경우, 그런 갈등을 나누게 되면 여차하면 주먹질이라도 하고, 어떻게 든 복수를 하려 할 텐데, 그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했는지, 안 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한 팀장이 들어와 어떤 직원이 퇴사하려 한다는 얘기를 전했다. “이유가 뭔데?”, “실장님이 무섭답니다…”, ‘내가 무섭다고???’
직원을 불렀다. 면담을 했다. “퇴사한다는 얘기 들었다. 어떤 이유냐? 솔직하게 얘길 나눠보자.”
처음엔 묵묵부답이었던 직원이 조금씩 얘기를 터 놓는다.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이 사람에게 거짓 행동을 했었는지 그리고, 끔찍하게도 그 행동이 내가 당했던 방법과 얼마나 똑같았었는지 생각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나름 적지 않는 직원들을 관리하고 코칭했던 나였다. 잘 가르친다고 배울 점이 많다는 얘기를 늘 상 들어왔던 나였다. 가끔 선배들에게 싹수없는 행동으로 지적을 받긴 했지만 후배들에게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나를 돌아봤다. 노트북과 핸드폰을 내려놓고 생각했다.
기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공포가 되는 방법, 사람이 사람을 무섭게 만드는 방법, 어떤 얘기가 상처가 되는지, 어떤 눈빛과 제스처가 위협이 되는지. 이런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상처와 위협은 동급자 간에도 할 수 있지만, 공포와 무서움은 반드시 수직 관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수직 간의 간격이 크면 클수록 훨씬 효과가 크다.
처음에는 분위기를 만든다. 그리고, 상대가 쉽게 대답하지 못할 질문을 연달아한다.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피드백을 요구한다. 피드백에 대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 후, 크게 한숨을 내쉬고 혼잣말을 한다. ‘와~ 정말 짜증 나네! 정말 와!!’ 일단, 이러면 상대는 대개 얼게 돼 있다.
보고자는 혼자 생각을 한다. 어떤 부분에서 문제일까… 하고는 상급자의 표정을 읽으려 애쓴다. 그때 상급자가 책상을 한 번 치거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면 가슴이 뛴다. 그 표정을 상급자가 눈을 깔고 내려본다.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된다.
상급자는 논의를 해 보자는 거짓말을 하고는 보고자가 하는 어떤 얘기도 수용하지 않는다. 통상, 상급자가 윽박을 질러가며 하는 의견은 논리보다는 상명 하달의 경우가 많다. 그래서, 듣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상급자가 얘기한다. “내가 한 얘기 이해해? 알아듣겠어? 네가 다시 나한테 설명해 봐!” 더듬더듬 얘기한다. 근데, 이미 한 참을 쫄아있던 터라 100% 기억을 장담할 수가 없다. 상급자는 그것도 알고 있다. 다 이해하지 못했을 거란 것 말이다.
그러고는, 보고자 외에 다른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밖에서 이 상황을 눈치채고 있던 순한 양들이 들어오고 늑대의 으르렁거림에 몸을 베베 꼰다. 늑대는 보고자를 가리키며 얼마나 한심하고 멍청한 지 얘기한다. 순한 양들이 이번엔 ‘매매’하며 고개를 조아린다.
‘다 나가!’
보고자는 이 순간을 두 가지로 기억한다. 첫 번째 공포심과 수치심, 두 번째 죄책감과 모멸감, 그리고 이 두 가지 기억은 무서움이라는 트라우마로 뼛속 깊게 각인되고, 이 트라우마가 반복되면 가스라이팅이 되는 것이다.
상급자는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가르치려고? 코칭하려고? 후배가 이뻐서?
아니, 내 지위의 우월성을 뽐내려고!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다. 내 지위를 이용해서 찍어 누르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콤플렉스나 자격지심을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 방법을 시전 하는 경우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떠했는가?
다 내려 놓았다.
그런 무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MBTI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MBTI를 왜 하는가? 단순히 재미로?
최근에는 인재 채용 시에 MBTI를 하는 조직도 꽤 있다.
MBTI는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라고 부르며, 인간의 성격을 총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이를 통해서 각 성격 유형별로 커리어 개발이나 대인관계 분석에 활용한다. 이런 활용의 목적으로 인간의 성격을 분류하는 이론은 ‘빅 파이브(Big Five) 성격 이론, 아이젠크의 3 요인 성격 이론, 성격 16 요인 이론, 자기 결정성 이론, 헥사코 이론 등’ 다양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렇게 성격 유형을 분류하고 테스트하여 데이터화하는 이유는 ‘커리어 개발, 대인관계 분석, 조직관리’ 이 세 가지에 있다. ‘조직관리’라는 단어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조직은 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이 아니라, 우리가 회사, 기업이라고 부르는 특수 목적집단이다.
보다 효율적이고 효용성 높은 조직으로 운영하기 위해 MBTI와 같은 조사, 테스트를 하면서 실제 기업에서 이를 중심으로 직원을 관리하고 육성하는지 모르겠다.
너무나 이중적인 태도로 조직을 운영하는 회사들이 많다.
회사 홈페이지와 기사에는 얼마나 좋은 회산지,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 웃고 있으면서 돌아서서는 쥐 잡이 놀이를 하는 고양이처럼 잔인한 놀이를 한다.
그렇게 잔인하게 하지 않아도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들이다.
당신들의 콤플렉스와 자격지심 같은 배설을 받아줘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에게 공포가 되고 두려움이 되는 존재라는 것에 우쭐대지 말기를 바란다.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