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번영에 대하여
21대 대통령이 국민의 선택으로 선출되고 김민석 국무총리가 임명되면서 새로운 내각을 구성할 장관들이 속속 임명될 예정이다.
금번 21대 내각을 구성할 장관 후보자 중 너무나 반가운 인물이 있으니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지목된 한성숙 님이다. 내게는 영원히 '한이사님(메일 주소를 sshan으로 쓰셨던)'으로 기억될 그분이다.
2002년 12월 어느 날 나는 엠파스(Empas)라고 하는 검색 포털에 입사를 하게 된다. 당시 한이사님은 검색사업본부 본부장이었고 나는 검색사업본부에 소속된 제휴비즈니스팀에 입사를 했다. 지난 회사들마다 여자 상사를 줄곳 모셔왔는데 엠파스에서도 그 우연은 계속되었다.
엠파스는 4명의 본부장이 있었는데, 그중 한이사님은 유일한 여성이었으며 가장 나이가 어렸다.
본부장, 이사라는 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그때 한이사님의 나이는 30대 중반에 불과했다. 나는 이것을 장관 후보자 프로필을 보면서 새삼 알게 됐다. 그 당시는 인터넷 서비스에 경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대리급 경력만으로도 팀장을 할 수 있을 때니 특별히 어색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30대에 한 기업의 핵심 사업을 맡는 본부장이란 역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 본부는 소속부서만 해도 20여 팀 이상으로 규모가 작지 않았는데, 한이사님은 꼭짓점에서 매우 냉정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관리 능력을 보여줬고 때로는 실무자로서도 꼼꼼한 업무 처리 역량을 보여줬던 솔선수범형 리더였다. 소속 팀장 중에는 한이사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팀장들도 더러 있었는데 회의 때마다 날카로운 질문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모습에 쩔쩔매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발소리를 듣고 그 사람을 맞춘다거나 특정인의 경우는 발소리로 그날의 컨디션이나 기분을 잘 알아맞히는 약간의 잡기 혹은 눈치 같은 것이었다. 가끔 한이사님이 내 주변에 지나가면 선배들이 내게 메신저를 보내와 "야, 오늘 한이사님 기분 어떤 거 같냐?"라고 종종 묻기도 했다. 내가 "슬리퍼를 끌면서도 딱딱 끊어 걷는 걸 보니 오늘 기분 별로인 거 같은데? 오늘 불려 가는 사람 땀 좀 흘리겠네~"라고 회신하면 사무실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실제로 "OOO, 내 자리로 와" 하고 한이사님의 호출을 받아 부리나케 뛰어가는 사람의 대부분은 등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깨지곤 했다.
그녀는 똘똘하고, 목표지향적이며 워커홀릭이었다.
최근 그녀의 사진을 검색하다가 그녀 역시 세월을 비껴갈 수 없음을 느끼며 함께 일했던 청춘의 시간을 되돌아봤다.
본부장, 이사였지만 그녀는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이었다. 큰 눈에 작고 귀여운 외모를 가졌고 웃을 때는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 가끔 회식 자리에서 우수게 소리를 하거나 장난을 좀 치면 유쾌하게 받으시며 그 나이 또래가 갖고 있는 수수한 모습도 보이셨다.
나는 한 동안 한이사님이 직접 관리하던 엠파스 메인 페이지를 관리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우리 부서에서 담당하는 일부 영역만 관리하다가 한이사님의 잦은 실수(오탈자나 잘못된 링크)를 말씀드리다 보니 어느새 거의 모든 영역을 담당하게 됐고, 나름 광고 카피도 잘 뽑는다고 하여 7~8개월 간 검색 포털의 메인 페이지를 관리하는 막대한 권한을 갖게 된 거다. 메인 페이지 운영 정책 등 그 기간 동안 내가 담당하던 서비스와 관련하여 한이사님과 사적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런데, 한이사님은 어떤 선이란 게 있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던지, 지나친 친밀감은 경계하는 그런 선 말이다. 아마도 늘 4~5위에 머물러 있는 검색 트래픽에 대한 스트레스와 뚜렷한 돌파구가 없는 상황에 어떤 인간적 유대감을 통한 조직력보다는 냉점함과 전략적인 면모가 국면 돌파에 맞는 방법이라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내가 엠파스를 떠나 회사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엠파스가 SK커뮤니케이션즈로 합병이 됐고, 한이사님은 엠파스를 떠나 야인이 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때는 사내에서 연인이니 아니니 했던 당시 박석봉 대표가 한이사님께 조차도 인수합병에 대한 소식을 뒤늦게 알렸고 이런 과정에서 회사를 떠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곤 얼마 후에 네이버에 입사를 했다는 소식은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과 함께 다소 의외라는 느낌도 있었다. 네이버나 야후 등 당시 엠파스와 경쟁했던 포털에 대한 한이사님의 감정이 단순히 경쟁사를 경계하는 느낌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장난 섞인 행동이긴 했지만, 네이버의 그린 컬러와 같은 톤의 옷을 입거나 타 회사의 사이트를 이용하는 직원들이 보이면 등짝을 치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잔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가끔은 농담조로만 듣기에 다소 오버스러운 멘트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여하튼, 경쟁사에서 본부장으로 있던 이가 타 경쟁사에 부장급으로 입사를 했다는 소식은 쓴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물론, 나중에 한이사님이 왜 네이버를 선택했는지 알게 되면서 그 선택에 매우 입체적인 고민이 있었겠다는 추측을 할 뿐이었다.)
엠파스 OB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한이사님의 직접적인 소식은 자주 접할 순 없었지만 늘 언론을 통해서 한 조직의 꼭짓점이 아닌 업계와 산업의 꼭짓점으로 나날이 큰 인물이 돼 가는 모습만 감탄과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네이버 대표이사에서 물러나셨다는 소식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고는 앞으로 어떤 삶을 또 설계하고 살아가실까 궁금해했는데 대한민국의 장관 후보자로 지목되셨다는 소식은 뜻밖이면서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마저 일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이재명 대통령을 도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라는 요직을 잘 수행할 적임자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1세대 벤처인으로서 누구보다 인터넷, IT, 인공지능 신기술에 밝고 당시 검색 플랫폼 기업이었던 네이버를 문과 출신 대표이사로서 기술 기업으로 환골탈태시킨 점은 그 시간 동안 한이사님이 얼마나 또 치열하게 변화하고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명징한 대목이다.
엠파스 이후 나란히 약 20여 년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나대로 나의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자립인, 슈퍼개인의 길을 갈고닦는데, 우리 한이사님은 이제 대한민국 장관으로서의 삶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한이사님의 모습이 있다.
그중 한 가지는 붉게 충혈된 눈이다. 그 눈은 밤새 고민과 업무로 싸운 자들이 갖는 눈이다.
한이사님은 그런 눈을 자주 갖고 있었다. 수많은 아래 직원들이 있었지만 때론 메인 페이지 설계를 밤새워 혼자 하고 최정예 인원들과 함께 다시 밤을 새워가며 경쟁사보다 하루 더 먼저 개편을 단행했던 모습도 나는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인원으로써 어제일 처럼 기억한다.
기업인으로서가 아닌 관료로서 새로운 도전을 그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하고 계실까 궁금하다. 그리고, 그녀가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나눌 이야기와 5년 간의 여정도 너무나 기대된다.
1세대 벤처인으로서 가장 성공한 자립인, 슈퍼개인이 바로 한성숙 중소기업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이다.
그 누구보다 선명한 족적을 남겨 후대에 본이 될만한 관료로서 기억되실 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립인, 슈퍼개인 한성숙 장관을 응원한다!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