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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Aug 22. 2022

학교 속 이중노동시장

기간제 교원의 고용불안 문제를 비춰보다.


학교에서 일합니다.


이 말 한마디로 가리킬 수 있는 자리는 얼마나 있을까.


이제는 드라마 <블랙독>으로 제법 알려진, 기간제 교사의 처우 문제는 언제나 언급하기 조심스럽고 참으로 무거운 주제다. 분명 학생 앞에서는 동일한 '선생님'이건만, '성직'이나 '봉사직'으로서의 교사가 아닌 '근로자'로서의 교사 입장에서는 고용방식의 차이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가 겪었거나 주변에서 직접 들었던 학교 안에서의 고용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언제나 학교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밝히는 바이지만, 진리의 '학교 바이 학교'를 잊지 말자.




전임교에 있을 때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복도에서 한 선생님과 학생이 고성을 지르며 싸우고 있었다. 그 고성들 사이로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말을 들었다.


놔 봐요, 내가 저 선생 자르고 나도 퇴학할려니까


평소에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학생이었다. 나는 '저 선생 자르고'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어디까지인가를 더듬었다. 물론, 대부분 학생들은 교원의 고용 방식 따위를 알지 못했다. 학생 본인의 꿈이 교사이거나 부모님이 교사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학 졸업하고 어찌하면 적당히 되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그 학생의 말은 사뭇 날카로웠다. 학생의 무례함에 벌겋게 상기된 선생님을 달래고 있던 차, 관리자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그 선생님을 일으켜 세우고는 따지기 시작했다.


박선생아, 니 OOO이 누구 아들인지 알고 그러나? 새 학교 알아볼 준비 해라.


문제를 일으킨 학생의 학부모는 학교운영위원회 소속이었다. 사실, 이 학교운영위원회라는 것이 사립학교에서는 별 역할을 하지 못한다. 공립에서는 의결기구이지만 사립에서는 자문기구만도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느 정도 역사가 있는 사립학교라면 이런 학교운영위보단 총동창회의 입김이 강하다. 행정적 절차상 학교운영위원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일들도 종종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를 의식하며 교육활동을 조절할 만큼의 그런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절차와 의전을 좋아하던 우리의 관리자께서는 이런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당신의 말의 위엄을 싣는 것에 아낌없이 보탠 것이었다.


이런 내막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말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해당 선생님을 따로 불러서 한 말도 아니었다. 관리자는 대뜸 우리 교무실의 문을 열었고 모두가 듣는 앞에서 그 말을 던진 채 다시 어딘가로 황급히 달려갔다. 순간 영겁에 가까운 정적이 흘렀다. 천천히 박 선생님을 돌아보았을 때, 그 선생님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해당 학교에서 6년이나 근무한 분이었고 줄줄이 딸이 둘인 선생님이었다. 공강 때마다 '유부남 그룹'들끼리 아이들 이유식과 기저귀 값에 대한 토론을 벌이던 가장이었다. 물론, 그 일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고 박 선생님의 고용은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일은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요약하기까지 해당 선생님이 겪었을 여러 감정들을 우리는 모른다.




전임교에서는 전체 교원의 50%가 기간제 교사였다. 내가 있는 지역 한정의 특징인 지는 모르겠으나 인근의 대다수 사립학교가 이와 같았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다. 적은 곳은 기간제 교사 비율이 30%였고 많은 곳은 60%였다.


주변의 상황을 보면 실적을 중시하는 학교일수록 대체로 40대 이상의 기간제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고, 이 분들은 사립학교만 옮겨 다니는 분들이 대다수셨다. '가정이 있고 경력이 많으며 충성심 있는' 이 부류의 선생님들을 인근의 '알아주는' 학교에서는 선호하였다. 가정이 있는 사람은 책임도 무겁기 때문이다.


정교사 채용은 공립이든 사립이든 과정도 복잡하고 얽매임도 많다. 사립학교라 할지라도 정교사를 마음대로 뽑지 못한다. 정교사는 설립 주체를 가리지 않고 교원수급정책에 따라 전체 TO를 국가가 관리한다. 재단이 신규 교원 채용을 의뢰하면 교육부가 TO를 내려주고, 재단이 임용후보자를 결정한 후 결과를 다시 교육부에 보고하는 방식이다. 게다가 자체 채용이 막힌 지금으로서는 채용 과정에서 시도교육청 위탁까지 강제하고 있다. 재단에 의한 채용이라지만 '국가기관으로부터 간섭'이 심하다.


그러나 기간제 교사는 이런 '국가기관으로부터의 간섭'이 상대적으로 적다. 실질적으로는 학교의 관리자와 해당 교과 교사가 면접을 보고 채용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정교사 채용만큼 복잡한 행정적 절차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계약의 종료나 연장에 있어서 학교 관리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실제로 몇몇 관리자는 차기 연도 계약 연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학교의 기피업무를 강요하거나 부당한 대우에 대한 무조건적 수용을 요구한다. 당연히 이런 행동들은 '조금 머리가 큰' 정교사들이 당했다면 학교에 크게 사이 날 문제들이다. 더러우면 그만두고 떠나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녀가 있는 분들에게 지역 이동이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렵사리 들어간 유치원이나 기껏 쌓아가고 있는 자녀의 교우관계를 불시에 초기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사 과정에서 들어가는 부대비용은 덤이다. 이사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지만 실제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교무실이 얼어붙는다는 말은 이런 까닭이다. 일반적으로 1년짜리 계약은 3월 1일부터 다음 연도 2월 28일까지를 기본으로 한다. 당해연도 채용은 보통 12월 말부터 1월 말 사이에 대부분 결정된다. 임고를 병행하는 수험생이 아닌, 전업으로 이 일을 하는 선생님이라면 해당 기간 내에 자리보전을 확정받아야 한다. 이 시기가 지나면 채용도 어려울뿐더러 호봉 승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매 개월 단위로 호봉 승급이 이루어지는 정교사와 달리 기간제 교사는 연 단위로 호봉 계약을 한다. 1년 중 근무일수가 하루라도 부족하면 승급이 지연된다. 따라서 2학기 2차 고사가 끝날쯤엔 다들 상당히 민감해져 있다.


계약 종료와 연장의 여부를 미리 확실하게 밝혀주는 건 그나마 양반이다. '잘 될 것이다'라는 모호한 말만 거듭하다가 2월이 다 되어 계약 종료를 통보하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왜 미리 말을 해주지 않았냐라고 하면 계약이 2월 28일인데, 한 달이나 일찍 말해주었으니 된 것 아니냐고 한다. 관리자가 교원의 고용시장 생태를 모를 리가 없다. 새로 공고를 내고 교원을 뽑아본 후,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교체하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혹자는 학교의 고용상황을 일반 기업들과 비교하며 거리의 모든 고용시장이 그러한데 유달리 특별하게 생각해야 할 구석이 있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또한 '시험을 통해 당당히 들어가면 될 일'이라고 일축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느 정도 맞는 말이고 일리가 있다. 이 글에서 나는 현상의 일부를 단지 기술할 뿐, 결코 어떤 집단의 권익을 대변한다거나 특정 정책을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일터가 어디든 간에 고용불안을 빌미로 직원을 움직이고자 하는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계약직'은 일터의 사정상 임시적으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고용한 것이지, 희망고문과 폭언을 견디라고 고용한 자리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일을 두고서도 백 사람이 모이면 백 가지 말이 나온다고 한다. 나는 그 백 가지의 말들 중에서 '일하는 환경이 좀 밝고 가볍고 행복하면 좋겠다.' 정도의 안일한 입장 쪽이다. 나의 이런 바람은 너무 순진무구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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