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년교생 Mar 16. 2022

육아휴직을 써도 되겠습니까?

사립학교 남교사의 휴직 문화

"좋은 아버지란 무엇일까? 나는 과연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이십 대 초입부터 이런 생각을 문득 했던 것 같다. 아직도 답은 모르겠다. 교무실의 사오십대 선생님들도 이 질문에는 선 듯 답을 하지 못하겠다고들 하신다.


어려운 질문이다. 누구도 쉽게 정답을 내릴 순 없겠으나, 어렴풋하게 대답할 수 있는 건 아이들과 꼭 필요한 시기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교직이 갖는 메리트 중 하나가 '육아휴직'이다.


첫 임용이 되고 3월이었다. 당시 학년부장에게 육아휴직 절차를 물었다.


"샘, 설마 육아휴직 쓰려고? 남 샘이?"


농담 반 진담 반의 어조로 되묻는 물음에 나는 말을 얼버무리곤 말았다. 뒤늦게서야 알게 된 것이 전임교의 재단에서는 육아휴직을 쓴 남자 선생님이 한 분도 안 계셨다고 했다. 교원들이 모이는 카페에서 해당 내용을 검색해보면 대동소이했다. 물론, 몇몇 학교는 휴직이나 교원 이동 자유로운 곳도 있었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머무는 곳은 그렇지 못했다.




당시 첫 임용 때, 재단에 8명의 동기가 있었다. 나는 일반고로 발령을 받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특성화고로 발령을 받은 한 동기 남자 선생님이 육아휴직을 썼다는 말을 들었다. 주변에서는 '문제 선생'에 '막장'으로 잔뜩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과정과 방법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만나서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아니, 전화나 문자로라도 괜찮았다. 하지만 희한하게 같은 재단임에도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두 학교의 특성(?)상 나는 그 선생님께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이듬해, 그 선생님은 서울의 큰 사립으로 이직했다는 말을 건너 들었다. 나의 호기심은 결국 풀리지 않았고, 재단 안에서 남게 된 말은 '남자가 육휴를 쓰면 이직을 한다'라는 묘한 결론이었다.


교직은 아이를 기르는 직업이다. 나는 교직을 바라볼 때, 성직으로 보느냐 노동직으로 보느냐 하는 고리타분한 주제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아이를 기르는 직업이니 내 아이부터 잘 기르는 것이 중요하지 않냐는 입장이다.


그러나 선배 선생님들을 보면, 자기 아이가 부모를 찾을 때에도 직장에 얽매여 부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거나, 직업과 부모의 역할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퇴직을 앞둔 한 선생님은 신규로 앉아있던 나에게 찾아와 이런 말씀을 건네기도 했다.


"선생님아, 너무 그렇게 학교에 얽매이지 말아요. 다 부질없는 짓이야. 결국엔 내가 나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거야."


그 선생님은 뭔가 더 말씀을 이어가시려다가 다른 선생님이 학년실로 들어오자 황급히 대화를 끝맺었다. 박카스 한 병과 사탕 두어 개를 쥐어주며 퇴직 인사를 건네던 그 선생님은 도대체 무슨 말씀을 더 하고 싶으셨던 걸까.




사립과 공립을 모두 겪어보면 두 학교의 특성과 장단점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는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립에서 느꼈던 수많은 장점이 있었고, 공립에서 느끼는 수많은 장점이 있다. 이 둘은 서로의 영역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제쳐두고서라도 내가 쓸 수 있는 권리를 편하게 쓰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사립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내 아이를 최우선으로, 제대로 키워내는 것. 이것은 내가 재임용을 결심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이전 02화 무례함 대하기 연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