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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Jun 28. 2022

무례함 대하기 연습

구 할의 행복, 일 할의 슬픔

새벽 한 시가 넘은 야심한 밤에 문자가 왔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다.


내일 출근 후 연락 바랍니다.


순간 관리자나 교육청일까 싶었다. 그러나 딱히 집히는 부분이 없다. 께름칙한 느낌으로 잠을 이룬 후, 다음날 학교 내선전화로 회신을 하였다. 그러나 받지 않는다. 두 번을 걸어도 받지 않는다.


저녁 여덟 시가 넘었을 무렵, 같은 번호로 다시 문자가 왔다.


OOO 엄마입니다. 왜 연락을 안 하시는지요?


모르는 번호의 정체는 학부모였다. 내신 전화로 회신하였으나 받지 않으셨다고 답을 보내자 대뜸 전화가 다시 온다. 그리고서는 자기 아이의 비행에 대한 주제 없는 하소연과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을 비판한다. 말의 요지를 이해할 수 없어서 학교 측에 무엇을 요구하면 좋겠냐고 물으니 횡설수설 끝에 아래와 같이 말한다.


아이가 담배를 필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밖에서 단속되지 않게 지도해주세요.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아이가 담배를 필 수 있다고? 그런데 단속은 또 겁이 난다는 말인가? 순간 매년 반마다 한 두 명씩 있는 그런 부류의 학부모 인가하고 직감이 왔다. 당신의 아이를 보살피겠노라, 금연캠프가 있으면 반드시 참석할 수 있게 하겠노라 말하고서 서둘러 통화를 마무리했다. 품행 지도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위임받은 나는, 저녁 여덟 시 길거리 한 복판에서 그 어떤 미안함과 부탁의 말도 듣지 못한 채 이십여분을 소모해야만 했다.




모든 학부모가 이렇지는 않다. 대게, 서른 명이 있는 한 반이 있으면 내가 먼저 걸지 않는 이상 스무 명 이상 학생의 학부모들은 담임과 통화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한다. 교권이란 것이 바닥에 붙은 지 오래 건 만 아직도 자기 아이 담임과의 통화는 매우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내가 나의 아이를 학교에 보내더라도 아이의 담임과 통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진땀이 흐른다. 심지어 같은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해마다 보면 위와 같은 경우가 한 두 건씩은 발생한다. 이 정도는 그래도 매우 양호한 편이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관이다. 학교에 찾아와 멱살을 잡는다거나, 흉기를 들고 교사를 위협하기도 하고, 징계라도 열릴라고치면 명백한 증거가 있는 상황에서도 무작정 자신의 아이는 그럴 리가 없다며 떼를 쓰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내년엔 담임을 맡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


덩치가 큰 교사는 그래도 다행이다. 학생이든 학부모든 체구에서 밀리면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학문과 교육을 다루는 장소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바라볼 때는 동물적인 영역에 여전히 의존한다. 나는 체구가 상당히 큰 편이다. 어지간히 거친 녀석들도 내게는 적당히 선을 지키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만약 왜소했거나 가녀린 편이었다면 어땠을까. 내 앞에서 고분고분하던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들 시간에 무례한 짓을 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이들이 선생님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사고의 과정을 더듬는다.


학교의 내부 전산망에는 오늘도 교권회복을 위한 여러 연수가 올라와있다. 각종 '힐링'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고, 가끔은 좋은 음악을 선곡하여 리스트를 뽑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험한 일을 당한 선생님들이 그런 '힐링'과 좋은 음악을 누릴 여유가 있으실진 모르겠다. 건너 학교에서는 한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시달리다가 유산을 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사실여부야 알 수 없겠지만 괜스레 끄덕여진다.


물론 착하고 예쁜 아이들이 더 많다. 어쩌면 훨씬 더 많다. 꼭 공부를 잘해야 예쁜 건 아니다. 누구는 주말에 구운 쿠키 사진을 내게 들이밀며 새로 배운 제빵기술을 칭찬해달라고 한다. 누구는 학교스포츠클럽에서 축구 경기를 이겼다며 자신이 내게 사인을 해주겠다고 한다. 백이면 아흔 이상은 이런 아이들이다. 그 덕에 매일을 웃는다.


하지만 아흔이 좋다고 하여 열의 경우가 없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끝없이, 어디선가는 무례함이 판을 친다. 누구는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라며 불만을 일축한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같다고 하여 나의 일이 쉬운 일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와 나의 동료들이 그 '무례함'에 다칠 때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학교와 교직에 대한 생각을 꺼내어본다. 그렇게 꺼내서 닦고 또 닦아본다. 그리고 점차, 왜 나이가 들수록 교사가 현장을 떠나려고 하는가에 대하여 조금씩 이해를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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