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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Jun 07. 2021

영업의 세계

교수도 교사도 영업을 뜁니다.

머리가 희끗한 노신사가 학년실 문을 두드린다. 자동문 스위치를 눌렀다면 단번에 열릴 벽이건만 쉽사리 들어서지를 못한다. 학년실의 다른 교사들은 귀찮아하는 기색이다. 노신사는 다시 문을 두드린다. 그제야 부장교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높은 톤으로 묻는다.


어디서 오셨어요?


올해 처음 고3 담임으로 올라오며 평소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학교의 모습을 매일같이 마주한다. 특히 월부터는 온갖 대학에서 학년실에 전화와 우편물을 쏟아붓는다. 학년부 안에서 우편물 담당인 나로서는 명문대부터 시작하여 처음 이름을 들어본 대학들까지 하루에만 십여 통가량 되는 대학들의 러브레터(?)를 매일같이 정리한다.


바야흐로 대 저출산의 시대이다. 게다가 02년생부터의 학령인구 감소가 워낙 급격하여 작년, 지역 대학들은 줄줄이 미달이 떴다고 한다. 대구 지역의 모 대학에서는 충원율이 형편없어 총장까지 사퇴했다고 한다. 대학의 총장이라고 하면 아직까지는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꽤나 힘 있고 권위적인 자리일 것 같은데 그마저도 학령인구 감소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나마 4년제 대학들은 당당하게 교무실 문을 두드린다. 값이 꽤나 나가 보이는 유명 브랜드의 텀블러에서 케이크, 쿠키 등 여러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들어온다. 대학의 급에 따라서 들어오는 사정관들의 당당함도 다르다. 그나마 서울 주요권 대학의 사정관들은 아직까지 고자세를 유지하지만, 지방의 거점 국립대만 하더라도 사정관들의 얼굴이 편치는 않아 보인다. 지방 국립대나 사립대는 아예 대놓고 도와달라는 말까지 한다. 그러나 어쩝니까, 담임은 제시만 해줄 뿐, 최종적인 선택자는 학생인걸요.


전문대의 경우는 모 아니면 도이다. 당당하게 학년실로 찾아와서 전단지(?)를 잔뜩 쏟아놓고 나가는가 하면, 어떤 사정관들은 학년실의 문도 제대로 열고 들어오지 못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아무 생각 없이 드나드는 문이건만 누군가에겐 넘기 힘든 벽으로 다가오나 보다.


사정관들이 돌아가고 나면 그들이 준 명함 내용을 좇아 학교 사이트를 들어가 보곤 한다. 내가 가진 고약한 호기심의 발현일 수도 있고, 짧게나마 얼굴을 마주했던 자들에 대한 경외일 수도 있겠다. 해당 대학 홈페이지에서 사정관으로 왔던 교수들의 약력을 살펴보면 다들 스펙이 어마어마하다. 그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세태 앞에 이 작은 교무실에까지 찾아와 준 셈이다.


졸업하고 임용에 낙방한 뒤, 고시생 시절을 보내며 교수를 꿈꾼 적이 있었다. 개론서를 내는 교수들이 대단해 보였고, 그들처럼 학자의 길을 걸으며 기념비적인 저술을 남기고 싶단 욕망이 활활 타오르기도 했었다. 그리고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그런 미래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그 개론서를 낸 교수들이 속한 대학에서, 심지어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지역의 대형 사립대에서 보낸 사정관들도 학년실의 문만 넘어서면 필사적인 자세로 다가온다. 내가 알던 '교수'의 모습이 이게 맞나 싶어 가끔은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교사라고 학교 홍보를 나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연말이 되면 지역 중학교를 상대로 영업(?)을 나간다. 똑같이 전단지를 뿌리고 사탕을 뿌리며 온갖 말로 학생들을 모은다. 피리 부는 사내처럼 학생을 많이 끌어와야 교내에서 평가도 좋아진다. 관리자의 성향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현장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체로 비슷하다. 한참 홍보를 뛰다 보면 '내가 이러려고 학교에 있나'하는 말이 목 끝까지 치민다.


학년실을 다녀갔던 수많은 사정관들, 그리고 교수들은 그 심정이 안녕했을까?

그들의 웃는 낯과 애탄 발걸음에서 같은 말들을 듣는다.


'내가 이러려고 교수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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