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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Jul 31. 2023

인턴 교사 생활이 끝났습니다.

중등국어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받다.

교직에 들어선 지 4년 차가 되었다. 지난 4년을 어떻게 지내왔나 싶다. 20대였던 나는 30대가 되었고, 그 사이에 법이 바뀌어 나이도 줄어들었다. 두 번의 시험을 지나왔고 두 곳의 학교에서 근무를 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새로운 인연도 참 많이 맺었다. 내 앞에 주어진 길을 미리 걸어갔던 여러 선배들을 마주했고 좋은 쪽으로든, 그렇지 못한 쪽으로든 그들로부터 다양한 것들을 스며냈다. 어색하기만 했던 교직사회가 이제는 제법 편안해졌다. 문화란 보슬비와 같다. 내 옷자락에도 이들의 문화가 촉촉이 스민 것일까. 아, 말을 고치자. 이젠 '이들'보단 '우리'라고 일컬어야 맞는 것 같다.


이제 어디 가서 '신규교사'라고 나를 밝히면 다들 '그건 아니지'라고 반응을 한다. 그렇다고 '나는 기성세대 교사요'라고 말을 하면 '아직 젊은 사람이...'라고 반응을 한다. 4년 차 무렵이 딱 그런 것 같다. 신규도 기성도 아닌 문지방과 같은 시기. 적응의 과도기와도 같은 시기에 교사는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받는다. 흔히들 줄여 말하는 '1정 연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사범대를 졸업하면(혹은 그와 유사한 양성과정을 마치면) 2급 정교사 자격을 받는다. 1급 정교사 자격을 받지 않으면 현장에서 부장교사를 할 수 없다. 부장직을 할 수 없으니 승진 역시 할 수 없다. 관리자 승진을 위해서는 교무부장을 비롯한 몇몇 보직에 대한 역임을 요구한다. 장학사나 연구사를 비롯한 전직도 마찬가지이다. 글로써 명시하였느냐에 따라 미미한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1급 정교사 자격을 받은 후, 여러 가지 분야에서의 경험을 추가로 요구한다. 그래서 '1정 연수'는 교사에게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첫 관문이자 '인턴 교사'가 끝나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에는 1정 연수의 점수에 따라서 승진 결과도 좌우되었다. 그래서 제법 살 떨리는 경쟁의 장이었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몇 년 전부터 이수/미이수 여부로 1정 연수 결과 고지가 바뀌어 승진 여부에는 영향이 없어졌다. 그래서 그런가, 연수원의 분위기는 한결 차분하다. 무거운 것은 맞지만 숨은 쉬어진다.

연수는 3주에 걸쳐 96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90시간 이상을 이수해야 자격이 주어진다. 매일 배정된 연수 시간이 6시간에서 7시간이니 하루라도 통으로 빠져버리면 자격 부여가 힘들어진다. 과거의 빡빡했던 연수과정의 흔적인지 과제나 분임토의도 가득하다. 교직에 들어서고 받았던 연수들 중에 이렇게나 할 일이 많은 연수가 있었던가. 1학기 교과세특 작성 마감도 연수기간 중간으로 잡혀 있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여유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학년부에서 1정 연수를 떠난다고 하니 커피 쿠폰을 잔뜩 보내줬다. 작년에 1정 연수 가시는 분들께 커피 쿠폰을 보내며 '이렇게나 많은 쿠폰을 다 쓸 일이나 있을까' 했는데, 막상 와보니 받은 쿠폰도 부족할 지경이다. 매일 카페인을 물처럼 마셔댄다. 그런데도 밤잠은 잘 잔다. 일정을 마치고 저녁 잔업을 끝낸 후, 기숙사 침대에 몸을 누이기만 하면 콩순이 인형마냥 잠이 쏟아진다.

안도현 시인의 시집을 가지고 이루어졌던 분임토의 수업. 수업 참여를 위해 시집을 읽고 패들렛에 제시된 질문에 답을 달아가야 했다.

이번 연수를 받으며 새롭게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 분야가 적지 않은데, 그중 하나가 도교육청과 연수원의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1정 연수의 콘텐츠는 생각보다 풍부했다. 곰곰이 되짚어보면 우리에게 도교육청 연수원이란 분기별로 온갖 귀찮은 필수 연수를 들으라고 강제하는 집단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실제 강의 구성을 보면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만큼 시의성 있는 주제들을 다루는 대단히 다양한 강의들로 꽉 차 있었다.


일반적으로 매일 오전과 오후, 블록타임으로 구성된 강의 일정에 따라 전국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초청되어 강연을 이어간다. 첫날 강연에서 다루었던 주제가 챗GPT의 발전과 미래의 교사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이 외에도 구술평가를 실제 교실 현장에서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지필평가 설계와 관련하여 소송에 휘말리지 않는 방법, 통합학급 내 장애아동이 저지른 학교폭력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와 같이 대단히 민감하고 한번쯤은 고민했던 주제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매일 연수가 끝나면 당일 연수를 기획했던 연구사와 장학사들이 각 연수의 목적과 취지를 설명했다. 연구사와 장학사라니. 나같이 경력이 미미한 평교사가 보기엔 참 멀고 먼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사람은 누구든 제 일이 가장 중하다고 생각을 한다. 군대 이야기를 해도 자기가 나온 부대만 가장 힘든 줄 알고 다른 곳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오해는 시작된다. 학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입버릇처럼 '본청에서는 뭘 하는 거야?'라고 불평을 하곤 한다. 잘 알지 못하니 쉽게 말하는 것이다. 청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나 하는 말이냐'라고 투덜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교폭력과 교권침해에 관한 강의를 진행하던 한 장학사가 강의를 마치며 한마디를 던졌다.


현장 경험도 없는 게 무얼 아느냐는 말, 듣기 싫습니다. 현장 경력만 20년이 넘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학폭 장학사가 경력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까닭이 아니다. 장학사가 되는 시스템을 모를 리가 없다. 내가 부끄러워진 것은 그런 작은 소견으로 지금껏 얼마나 많은 집단을 쉽게 생각해왔을까에 대한 알아차림이었다.

연수의 내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환경과 기후에 대한 것이었다. 매 연수의 처음과 끝에는 담당 연구사가 날씨와 건강에 대한 염려의 인사를 건네주었다. 확실히 요즘 들어 날씨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연수 중에도 기후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다루었다. 강연의 주제가 환경이나 기후가 아니더라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기후에 대한 것을 한 번은 거치곤 했다. 확실히 최근 들어 우리가 접한 주제들 중에서 열대화만큼 뜨거운 감자가 있었던가.


기후위기 연수 도중에 시대별로 반복하여 시행한 설문조사에 대한 결과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설문조사에서 조사 참여자들에게 던졌던 질문은 간단했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우리보다 더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000년대와 2020년대의 대답은 뒤바뀌어 있었다. 미래를 낙관하면 20여 년 전과 달리 최근의 답에서는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 60%가 넘었다. 설문조사의 결과가 담긴 꺾은선 그래프를 제시할 때,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아마 피부로 이미 느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내 아이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보장이 없는 현실. 이런 현실에 대한 의문은 젊은 우리네가 결혼과 출산에 대하여 갸우뚱하게 되는 여러 요인들 중 하나일 것이다.


다양한 주제로 구성된 연수를 짧은 기간 동안 몰아서 들으면 내가 들었던 여러 주제들을 이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연수의 주제가 쌓일수록 머릿속에는 그 어떤 강연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나만의 의문이 생겨난다. 이 땅의 흔적을 살펴보면 100여 년 전에는 국가의 존망이 가장 큰 문제였고, 그로부터 50년이 흘러서는 전쟁이, 다시 50년이 흘러서는 기후와 인류의 존망이 문제가 되고 있다. 시대별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도, 다가오는 문제도 우리의 예상보다 한참 밖에 있다. 교사는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미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사람이 빚어낼 미래를 준비시켜야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건만, 나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


교단에 서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꿈을 가져라', '20대를 준비해라'라는 말에는 교사가 가진 미래에 대한 예견이 녹아들지 않을 수 없다. 덮어놓고 '나도 미래는 어찌 될지 몰라'라고 체념해 버린다면 내가 뱉는 말에서 얼마만큼의 진정성이 남아 있겠는가.


이런 고민이 이어질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보단 그럴듯한 미래를 읽어낼 수 있는 안목이지 않을까 싶다. 말은 쉽다. 이걸 어떻게 구체적으로 담아내야 할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가 너무 먼 곳까지 헤아리려고 한 것은 아닐까 싶다. 일개 사람인 내가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어찌 제시하겠는가.

연수원 기숙사 근처에는 고양이가 많다. 오며가며 보는 재미가 있다.

가장 쓸모가 있는 강연은 단연 평가 관련 연수였지 싶다. 학교나 학원에서 문항을 출제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해하실 것이다. 문항 출제는 어딘가 반쯤 예술의 영역에 걸쳐 있다. 매 상황에 따라 '좋은 문항'의 정의와 구현 방법이 달라진다. '이렇게 내야 좋은 문제다'라고 일률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원칙이랄 것이 없다. 교육평가적 측면에서 제시하는 원론을 이야기하지는 말자. 현장에서 실제로 문항을 만들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선배 및 동료교사의 어깨 너머로 배우게 된다. 학교마다 평가부가 있다지만 교과가 다르면 문항의 타당도를 점검하기가 어렵다. 문과 출신인 국어교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물리 문항을 점검할 수 있겠는가? 이건 묘하게 과목 간의 월권 문제와도 걸려 있어서 함부로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외부 연수를 활용하지 않으면 학교 내에서 평가 역량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


교사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꿈이 하나 있는데, 언젠가 수능 출제위원으로 선발되는 것이다. 평가 연수 중, 도교육청 모의고사 출제진 중 한 분이 강사로 와서 연수를 진행하였다. 내신과 수능 출제 과정을 비교하며 지문을 어떻게 선정하고 선택지의 설계를 어디까지 다듬어야 논란에 휘말리지 않는가를 듣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기존에 출제했던 문항을 두고서 분임토의를 통해 문항 검토를 하는 경험을 가질 수 있었는데, 실제 현장에서도 해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문항을 더 개선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것. 토의가 진행될수록 처음에는 생각도 못했던 문항 개선 방향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이런 과정 자체가 참으로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밥은 잘 나온다. 연수원 밥이 이러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식단이 좋아진 것 같다.

3주간 진행되는 1정 연수가 이제 한 주 지났다. 남은 2주간은 무엇을 더 느끼게 될까. 임용 시험을 준비할 때는 방대한 지식을 머리에 체계화하여 넣는 것에 집중했다면, 1정 연수는 끝없이 나 자신을 설득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무작정 새로운 내용을 받아들이기보단, 하나의 의견이 과연 나의 수업을 향상하거나 나의 직무 만족을 높일 수 있는 것인가를 따지고 있다. 확실히 어떤 연수 중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스스로의 묻고 따짐을 거쳐서 진정으로 괜찮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꽤나 깊숙이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이틀이나 사흘에 하나 정도씩만 얻어가도 2학기가 시작할 무렵에는 꽤나 나아진 모습으로 바뀌어 있지 않을까.


많이 더운 나날이다. 연일 폭염 경보 알람이 쏟아진다. 이 견디기 힘든 열기가 끝날 무렵, 연수도 끝이 나지 않을까. 가을이 어서 오기를, 유래 없이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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