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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Jun 13. 2021

무슨 낙으로 살아가는가

고인 웅덩이에서 고이지 않기

교직은 수평 사회다. 이 말의 함의는 초년생 때나 말년이나 하는 일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어느 직업이나 따지고 들면 비슷한 모습이겠지만, 생각보다 교직사회는 따분하고, 생각한 것보다 보수적인 집단이다.


교직 사회에는 승진이라는 개념이 없다. 물론, 통념상 관리자로 올라가거나 교육청으로 빠지는 것을 승진이라 부를 수는 있겠으나 일반적인 회사와 비교한다면 그 수가 터무니없이 적다. 부서의 부장직을 단다고 해도 그것은 직책의 이름일 뿐, 교사로서의 계급 차이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위아래를 나누는 기준으로 아직까지 널리 쓰이는 것에는 '나이'가 있지만, 이 또한 교직 사회에서는 써먹기에 적절치 않다. 개인적으로 각별하지도 않은 사이에서 나이 어린 교사를 함부로 이름으로 부른다거나 '너'라고 지칭하게 된다면 아무리 연로한 교사일지언정 무수한 비판을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다 보니 개인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삼십여 년 위아래의 교직 생활 동안 비슷한 업무와 비슷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개인의 성격에 따라서 이는 축복일 수도, 저주일 수도 있다. 성장 욕구가 강한 나에게 이러한 교직 사회의 특수성은 철저하게 저주로만 다가왔다.


보통 직장에서 마주하는 10년 차, 20년 차 앞 선배들의 모습은 자신의 미래가 되곤 한다. 내가 학교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선배들의 모습은 아주 다양했다.


1.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으나 내심 이직을 고려중인 사람

2. 학생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

3. 관리자와 다투며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을 즐기는 사람

4. 나이와 연차를 핑계로 타인에게 업무를 미루는 사람

5. 후배 교사들로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속이 좁은 사람

6. 개인적 취미에 열중하며 학교 일에 관심을 끄는 사람

7.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며 조용히 퇴직을 준비 중인 사람


이 외에도 여러 모습을 보며 나는 모종의 답답함을 느꼈다. 콕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겠으나 전반적으로 학교 사람들은 작은 일에 기뻐하며 그보다도 더 작은 일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결같이 저마다 자신들의 '낙'을 갖고 있었다. 그런 '낙'이 없이는 학교 생활을 해내기가 어렵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첫 해의 나는, 나만의 '낙'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고민을 쉬지 않고 했었다.


지금의 나는 크게 다음의 두 가지를 '낙'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1. 연구자로서 제2의 삶을 준비하기

2. 교수자로서 제2의 삶을 준비하기


적어두고 보니 둘 다 이직에 대한 것들이다. 그리고 둘 다 충족되지 못하는 성장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들이다. 이는 내가 한 곳에 정체된 채로 살아가는 것에  철저하리만치 끔찍함을 느끼는 까닭이기도 하다.


우선 연구자로서는 문법 교육과 언어학 분야로 천천히 나아갈까 한다. 요즘 대학 시장이 워낙 절망적이다 보니 이쪽에서 새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우선은 연구 자체가 재미있어 보이니 괜찮다. 이직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계속 나아갈 생각이다. 부끄럽게나마 누군가를 가르치고 사는 직업인데 배움을 학사로만 끝낸다면 꽤나 위태롭지 않을까.


그리고 교수자로서는 교육방송이나 새로운 매체를 대상으로 나아갈까 한다. 이쪽 역시나 녹록지 않은 분야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코로나 이후로 비대면 수업이 많아지며 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수업을 알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EBSi 정도에 나아가야만 자신의 수업을 널리 내보낼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도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 수준의 공동 교육과정 수업을 통해 나의 수업을 알릴 수 있다.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유튜브를 찍어도 된다. 물론 인기를 얻을 수 있을지는 개인의 역량에 달린 일이겠지만 최소한 할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이 외에도 몇 가지 작은 재미거리들을 생각해두고 있다. 그리고 적절한 때가 오면 하나씩 실행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다 보면, 훗날 적어도 초년생의 내가 존중하고 우러러볼 어느 한 교육자의 모습에 다가가 있지는 않을까.


웅덩이에 내려앉은 작은 오리의 발길질에 의미가 있기를 빈다. 적어도 웅덩이가 고이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며, 나아가 그 오리는 백조가 되어 날아갈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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