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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Apr 26. 2023

지존이 되지 못한 영웅

게으름뱅이가 지식in에서 답변을 답니다.

네이버 지식in 활동을 해온 지가 꽤나 됐다.


아, 말을 고쳐야 할 것 같다. '시작한 지'가 꽤나 됐다. 뭐든 꾸준히가 중요한데, 천성이 게을러서 무언가 하나를 꾸준히 하지를 못한다. 당장 브런치만 해도 글이 뜸하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고시생 때 공부한 내용을 복습하려고 시작했던 지식in. 아직도 '지존'을 못 달았다.

지식in 활동을 하다 보면 재밌는 일이 많다. 우선 생각보다 각 분야의 '괴수'들이 많다. 이 분들의 특징은 자신의 전공 분야에 올라온 거의 모든 질문에 1분 내로 답변을 올린다는 점이다. 도대체 얼마나 능력자이신가 하여 프로필을 열어보면 레벨(?)이 상당히 높다. 나는 '영웅'인데 '영웅'이면 그래도 난세를 구하는 인물이지 않은가. 그러나 상대방은 '물신'이다. '물신'이라 하면 물을 관장하는 신이니 우리 설화에서는 강의 신 '하백'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하백의 딸이 유화였고, 유화의 아들이 주몽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영웅의 외할아버지라니. 내가 '영웅'이니 내 할아버지 격을 만난 셈이다. 이건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다.

지식in의 계급 체계. 세분화가 잘 되어 있다. 계열적 구조는 구성원의 성취동기를 유발한다. 조직행정에 능통한 자가 설계한 시스템임이 틀림없다.

답변자만 대단한 것이 아니다. 질문자들도 대단하다. 온갖 질문이 올라오는데, 더러 꽤나 퀄리티가 높은 질문도 올라온다. 신기한 것은 질문의 질과 답변의 양은 반비례한다는 점이다. 나는 내 전공을 발휘하여 국어, 언어 전반을 관심 카테고리로 설정해 놓고 질문을 받아보는 편인데, 언어학 원론에 대한 질문이나 의미론에 대한 질문이 올라오면 답변이 잘 달리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의미론과 화용론의 분야는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복수의 답이 가능하다.


답변을 달다 보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우리가 흔히 일상생활에서 쓰는 '전제'는 한 문장에 대한 답이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의미론에서 '전제'는 문장의 참과 거짓에 관계없이 항상 참임이 보장되는 정보를 뜻한다. 자, 이 정의에 유의하여 아래의 문제를 고민해 보자.


다음 광고 문구의 전제는 무엇인가?

요즘 보통, 보통내기가 아니다.(2023, 현대차 아반떼)
(치열하게 살아온 2030 세대를 보여준 후, 이들이 아반떼에 탑승하여 질주하는 장면)


전제의 정의에 유념하여 답변을 찾아보자. 해당 문장의 참과 거짓 여부에 관계없이 참이어야 한다. 이 말인 즉, '요즘 보통, 보통내기이다'로 문장을 바꾸어도 반드시 참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를 살펴보면 당장에 떠오르는 전제만 하여도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겠다. 참고로 아래의 내용은 광고 문구와 광고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고려하였다.


1. 아반떼는 보통내기가 타는 차이다.
2. 보통내기는 자동차를 탈 수 있다.
3. 보통내기가 존재한다.


만약 지식in에서 위와 같은 질문이 올라오면 나는 '전제'의 정의에 대한 설명과 가장 원형적인 답변을 함께 적는 편이다. 그러나, 위에서 답변자들 중에는 대단한 '괴수' 분들이 계신다고 밝혔다. 보통 내가 갸우뚱거리며 답을 달고 보면 이미 위에 두어 개의 답이 먼저 달려 있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은 많은 경우 가장 첫 답변을 채택하곤 한다. 이러다 보니 나는 자연히 '빨리 답변이 달릴 것 같은' 질문들은 쉽사리 손을 대지 않고 있다.


그래도 간혹, 반나절 이상 답변이 달리지 않는 질문들은 조심스레 답을 달곤 하는데 이때는 질문자와 깊은 교감을 하며 만족스러운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래의 경우가 그러했다.

https://kin.naver.com/qna/detail.naver?d1id=11&dirId=11080103&docId=442800815#answer1


답변을 달고 나면 어딘가 찝찝한 경우도 종종 있다. 보통은 내가 잘 모르거나 잘못 답변을 한 까닭인데, 은근히 답을 달고나서 다시 검색해 보니 내가 답변한 것이 틀려 수정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럴 땐 얼굴이 화끈해져 얼른 고치곤 하는데, 재야의 '괴수' 분들은 나의 이런 약점을 놓치지 않고 밑에 올바른 답을 달아두시곤 한다. 난처한 상황이다. '글삭튀'를 할까 하다가도 '틀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글을 수정한 후 그대로 둔다. 잘못된 정보가 퍼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다. 다행히, 나의 능력 부족으로 그리 '중대한' 질문에는 답을 달지 않는 편이다. 틀린 것들은 누가 보아도 잘못된 답변들이니 쑥스럽지만 애교로 보아주시라.


여하튼 이 지식in이 적적할 때 가끔 들러 답변을 달기에 참 재미있는 구석인데, 좀 꾸준히 달아서 '지존'은 찍어보고 싶다. '지존'이라니, 이름이 멋있지 않은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신'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나도 방구석 어느 한 자락에서 '지존'은 찍어보고 싶다. '지존'을 찍으면 자랑글을 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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