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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Mar 18. 2022

끝없는 진로 고민

쓸모없어 보이는 것을 쓸모 있게 만들기 위한 고민

'그래서 석사를 따면 뭐가 나아지려나...'


주변에 꽤 바쁘게 살아가는 형이 있다. 같은 교직에 있고 과목은 다르다. 교원대 파견을 준비한다는 말을 듣고서 나도 이제는 교원대 파견을 준비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솔직히 대학원이나 연구자의 길을 알아보고 준비해갈수록 점차 이쪽으로의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학부 때부터 나는 왜 교원대 파견을 그토록 바랬을까. 주변 동기들은 그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지금에 와서 솔직하게 생각을 해 본다면, 학문적인 관심과 탐구하고자 하는 마음조금이었던 것 같고,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우월감, 그리고 한 때 갖고 싶어 했던 교원대라는 대학의 이름값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초년 때부터 대학원이나 진로를 두고 모교의 교수님들을 자주 찾아뵈었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교원대나 서울대로 대학원을 가고 싶다는 의견을 노골적으로 밝혔었다. 한 소리 들을 지라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명약이 처방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교수님들은 내게 한결같은 조언을 주셨다.


"대학원을 왜 가려고 하니? 공부는 왜 하려고 하니? 학자가 되고 싶은 거니? 행정가가 되고 싶은 거니?"


나는 쉽사리 답을 못 했다. 진심을 밝히기가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내가 진실로 어느 길을 가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제가 어느 쪽으로 갈지를 몰라서요, 우선은 뭐든 준비해볼까 합니다'란 답변에, 교수님들은 또다시 되물으셨다.


"그럼, 학위를 따면 네가 정말로 행복해지는 거니? 학위 따고 나면 뭘 할 거니?"


복잡한 물음도 아니었다. 그러나 단순한 물음이었기에 나는 한없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지난 학부생활만 해도 4년의 대학과정 자체가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대학원이라고 다를까. 아니, 그보다 더하면 더하지 않을까.


교원대 파견은 석사 과정만 제공된다. 척척 석사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면 박사를 고려해야 한다. 교원대에서 박사를 이어나가려면 휴직을 해야 한다. 그러나, 30대에 3년간 휴직을 하며 잃는 기회비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학위를 딴다고 해도 획기적으로 근로소득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이직을 한다고 한들, 국공립대학 및 지역 대형 사립 이상의 정교수 자리가 호락호락한 곳도 아니다. 해보지 않고서 쉽게 겁먹었다고 말할지 모르나, 인생 모든 일을 해봐야만 아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연구자의 길을 걷는다면 출신 대학 이름보단 논문 파워가 중요해. 연구자로서 퍼포먼스가 좋지 못하다면 물 석사, 물박사일뿐이야."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덧붙이며 나를 다독이셨다. 다독임의 방향이 응원인지 완곡한 만류인지는 내가 해석할 문제였다. 어느 교수님은 은연중에 모교로 대학원을 오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이미 국내 대학원은 이공계열 중심이고, 문과는 설 곳이 없는 판이다. 모교로 간다면 내가 관심 있어하는 인지언어학을 집 근처에서 실컷 연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별 의미는 없는 줄 알면서도 석사와 박사 학력 칸에 같은 대학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이어지다 보면 결국 나는 끝없는 자기모순을 직면하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작년 한 해는 아침에 출근해서 교수신문과 각종 연구자들이 보는 커뮤니티를 기웃거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금도,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다만, 그 길을 가기 위해서 내가 치러야 할 대가가 어느 정도인가를 헤아리기 시작한다. 십 대 때와는 달리, 단순한 동경심 만으로 내 모든 것을 내걸고 달리기엔 삶이 그만큼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십 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믿고 달렸듯, 지금의 나도 십 년 후의 나를 믿는다. 십 년 전의 내가 상상하지 못할 삶을 지금의 내가 살아내고 있듯이, 십 년 후의 나도 지금의 내가 상상하지 못할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실 있고 단단한 40대를 위해서 지금의 나는 부단히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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