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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Jun 30. 2021

나는 왜 나한테만 야박할까?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나에게는 혹독한 자기갑질

얼마전 오랜 기간 알아왔던 후배 J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나 회사 때려치우고 나왔어. 원룸 빼고 다음달부터 당분간 엄마집에 가 있을거야.”

J는 대기업 그룹사에 10년 이상 다니면서, 일반적인 시각에서 소위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의 삶을 살고 있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고 아끼는 똘똘한 후배이다. 그런 J가 느닷없이 회사를 나왔고 시골집에 내려간다고 했을 때 잠깐 놀라기는 했지만, 나는 이내 그래 그랬구나, 그럼 내려가기 전에 얼굴 한 번 봐야겠네 하고 약속 일정을 잡았다.


전화로 소식을 전한 J의 목소리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담담한 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내가 J의 상황에 대해 자세한 내막을 캐묻지 않아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뭔가 생각이 있겠지 하고 스스로 납득해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번의 이직을 통해 꽤 많은 수의 회사를 경험한 내 관점에서 보면, 그 회사가 밖에서는 아무리 멋지고 화려한 이미지로 보여져도, 실제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지지고 볶음’은 회사의 규모와 분야를 떠나 어디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도 안되는 일정과 주어지는 달성 목표, 무능력한 상사가 밀어내는 무자비한 업무, 어딜가나 반드시 존재하는 ‘똘아이’가 유발하는 깊은 빡침이 어우러져 열리는 대환장파티는 그 빈도와 수준의 차이일 뿐, 어떤 조직에도 반드시 존재했다.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대상인 회사도, 어떤 이에게는 로또 당첨으로 탈출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인 지옥일 수도 있는 것이다.


J가 어떤 이유로 퇴사를 결심했는지, 뭔가 힘든 상황이 있었는지,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지, 스카우트 제안이 있었는지, 치킨집을 차리기로 한건지는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그런 판단에 대한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와 생각이 있었을 것이고, 내가 굳이 아니 그렇게 좋은 회사를 왜 하면서 호들갑 떨 일은 아닐 것이다.


회사에서 누가 괴롭혀서 못이기고 나왔으면 같이 시원하게 욕하고 술잔을 채워주면 되고, 치킨집을 차리겠다면 개업 선물로 정수기라도 들여주고, 유튜브를 시작하겠다고 하면 첫 번째 구독자가 되어 좋아요를 눌러주면 될 일이다.


내 인생의 상당한 시간을 들여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의 경험을 쌓은 지금의 나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왠만한 일에는 더 이상 깜짝깜짝 놀라거나 세상에 그럴 수가를 외치지 않게 되었다. 주변의 지인과 친구들에게 뭔가 일이 생겨도, 일단 그런 일이 일어났구나 수긍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해결이 될거야, 아니면 오히려 더 좋은 길이 열릴 수도 있어 하고 초 긍정적인 행복 회로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낙심한 그들을 위로하거나 고민 상담 상대가 되어줄 때 그들에게 건네는 잘 될 거라는, 이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라는 말은 정말 200%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어릴 때에는 기말고사 한 번 망치면 인생이 끝나고 이미 낙오자가 된 것처럼 절망하지만, 지나고 보면 길고 긴 인생에서 중학교 기말고사 한 번 망친 것은 인생이 끝장날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설령 중요한 시험을 망쳐서 내신이 어그러져서 지망 대학에 못 가게 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간 다른 학교에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날 수도 있고, 재수로 더 좋은 학교에 갈 수도 있고, 아예 학업이 아닌 다른 길에서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고, 정말 인생에는 수십 갈래의 새로운 길이 갑자기 눈앞에 쫙쫙 펼쳐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이게 신기하게도 나한테는 적용이 안 된다.

그런 사실을 분명히 머리로도 알고 있고, 숱한 경험을 통해 체득했는데도, 여전히 나는 나에게 뭔가 문제가 생기면 세상 끝난 듯 괴로워하고, 자책하고, 괴로움과 자괴감에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직장 상사에게 지적을 받으면, 지원한 회사에서 불합격 메일을 받으면, 새로 이직한 곳에서 업무 파악이 더디고 모르는 것만 한가득이면, 심지어 친한 친구 그룹의 누군가와 불화가 생기면… 나는 내 자신이 너무 못나고 뒤떨어진 존재처럼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도 척척 잘 해내고, 인생도 쿨하게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런 사소한 것에도 어려워하고 쩔쩔매는지 내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후배 J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오는 것은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겨지는데, 내가 회사에 사표를 내는 것은 설령 J와 똑같은 이유라고 해도 어쨋든 내가 못나고 부족해서 생존에 성공하지 못하고 도망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왜 나는 나에게만 이렇게 엄격한 잣대를, 심지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들이대는지 모르겠다. 나는 왜 내 자신에게도 남들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하고 너그러워질 수 없는 걸까? 이제 나는 다 큰 성인이고, 더이상 누군가가 나에게 잘했네 못했네 잔소리를 하거나, 뭘 잘못했다고 벌을 주는 것도 아닌데, 뭔가 조그만 문제라도 생기면 내 자신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를 질책하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웃긴 일이다.


J를 만나면 좀 물어봐야겠다. 대체 얼마나 흥미진진한 사건이 있었는지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으면서 팝콘을 튀기기보다는, 그녀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떻게 퇴사를 결심했고, 뭐가 제일 힘들었고, 또 제일 힘이 되었는지.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쿨하고 강하기만 한 그들의 비결은 무엇인지 너무나 알고 싶어졌다.


나는 이제 남은 인생을 내 눈치 안보고 좀 덜 빡빡하게 살고 싶다. 다음에 또 뭔가 의기소침해질 일이 생기면 이번에야말로 괜찮다고,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고 인생 끝나는 거 아니라고 제발 좀 쿨하게 허세 좀 부려 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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