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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Jul 16. 2021

왜 내가 좋아하는건 하나같이 돈이 안되는 것들 뿐일까?

좋아하는 일 하고 있나요?

퇴근한 남편이 밥을 먹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자기 팀의 어린 직원 하나가 최근 가죽 공예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야근도 제법 많고 업무 강도도 낮은 팀이 아닌데, 일주일에 두 번은 무리를 해서라도 퇴근 후에 수업을 들으러 간다고 한다. 체력적으로는 결코 쉽지 않을텐데 그래도 수업에 다니기 시작한 후 표정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업무 집중도가 오히려 높아져 신기하게 생각한 남편이 어떻게 가죽공예를 배울 생각을 하게 됐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그냥 관심이 가서 취미생활로 시작했는데, 수업을 듣다 보니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 것 같아 더 재미있어졌고 나중에 아예 퇴사하고 공방을 열어서 직접 운영할 생각도 하게 됐다고 대답했단다.

남편은 열심히 해 보라고 응원의 말을 건넸지만, 머리 속으로는 '그게 돈이 되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나도 솔직히 제일 먼저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월급 잘 나오는 회사를 나와서 공방을 연다고? 막상 수강생이 안 모이면? 주문이 많이 안 들어오면? 코로나같이 천재지변같은 돌발사태가 벌어지면 어쩌지? 매장 임대료도 못 내고 보증금까지 날리는거 아니야?

왠 오지랖인지, 나랑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벌써 빛더미에 올라 다시 일자리 찾는 상황까지 걱정이 됬다.




나의 직계가족과 가까운 친척 중에는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인지,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사업이란 '대박나고 부자되는 기회'가 아니라 '쫄딱 망해서 패가망신하는 위험'을 의미했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회사에 취직해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샐러리맨으로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유일한 선택지였고, 실제로 그렇게 10년 넘게 살아왔다.


 직장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도 줄곧 샐러리맨이었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 거창하지만- 아이의 생존을 위해 우리가 매달 받는 월급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1순위 항목이 되어버렸다. 당연히 월급을 최대한 아껴서 사용하고, 저축은 최대한 늘리고, 조금이라도 위험한 투자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20 가까이 아끼고 모으며 살다보니 조금씩 자산이 불어나고, 아파트 평수도 넓어지고, 통장 잔고는 우리 집안에 갑자기 돌발상황이 생겨도 얼마동안은 생계를 유지할 만한 정도가 확보되었다. 나와 남편은 우리의 이런 형편에 우리가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나름의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이렇게 살아오는 동안 세상변했다. 예금 금리가 형편없이 낮아지고 집값이 미친듯이 뛰면서 개미처럼     모으는 저금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되었고, 대출을 받아 과감하게 부동산에 투자하고,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비트코인을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크게 변해서 명문대 나와 이름있는 회사에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말고도,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 하고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삶의 방식이 인정받고,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나는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회사를 다니는 것이 책임감있는 어른으로써 가장 '옳은' 선택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회사에서 싫은 사람을 견디고, 재미 없는 일을 억지로 하고, 정해진 시간을 채우고 앉아 있는 것이 어른이라면  당연한 것인줄 알았다.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고싶은 것만 하겠다고 떼를 써서는 안되고, 그런 사람은 '철없는' 사람. 반대로 남들에게 인정받고, 힘든 직장 생활을 해내는 사람은 '의젓한 어른'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친구와 서로의 회사 생활의 힘듦에 대해 투덜대는 대화의 말미에는 의례히 "사는게 원래 그렇지 뭐, 먹고 살기가 원래 힘든거지"라는 씁쓸한 위로의 말이 따라 붙었다. 그리고 "바쁜거 끝나면 만나서 술이나 한 잔 하자"도.


좋아하는 것과, 실제 직업이 다른건 너무나 오랫동안 당연한 진리처럼 내 머리에 박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회사원의 삶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었을까?


되돌아보면 나도 하고 싶은 것이 꽤 많았다. 어릴 때는 화가, 작가가 되고 싶었고, 대학생 때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예쁘고 멋진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도 되고 싶었고, 베이킹에 푹 빠진 후에는 직접 베이킹 클래스도 해보고 싶었고, 베이커리 카페도 하고 싶었다. 또, 작고 소박한 쉼터같은 집을 지어 카페가 있는 게스트하우스 운영도 하고 싶었다.

이 중 몇개는 아직도 유효한 바램이고, 심지어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정보를 찾아보고 공부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선뜻 회사를 박차고 나와 시작하지 못하는 건 일단 너무나 불확실한 성공 여부,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월급만큼 돈을 벌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왠지 빨간머리 앤이 2층 방 창틀에 기대어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 같은, 뭔가 로맨틱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으로 가득하고, 당췌 돈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이런 바램들은 생각만으로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만, 조금만 구체적으로 발을 담그면 당장 냉혹한 현실이 꿈 깨라고 다그친다.  


아니 왜 내 꿈은 뭔가 나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기발한 아이템으로 스타트업을 차려 백억 단위의 성공을 노려볼 수 있는 야심찬 사업가가 아닐까! 왜 다 하나같이 다 이런 소꿉놀이 같은 것들 뿐이지?

빵을 굽고, 커피를 팔겠다니.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면서 누가 사줄지도 모르는 그림을 그리겠다니.

한 번에 두 팀 이상 받을 수 없는 게스트하우스라니!

대체 빵을 얼마나 굽고, 손님을 얼마나 받아야 지금의 월급만큼의 돈을 벌 수 있는거지?

(결국 로또 당첨만이 답이란 말인가......)




그 어떤 직업에도 쉬운 길은 없다.

남들이 쉽게 생각하는 직업도 실제로 그 분야에서 돈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프로의 레벨, 또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수 많은 좌절과 걸림돌을 넘는 끈기가 필요하다. 요즘 '나도 유튜브나 할까'라는 말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나올 정도로 대세로 떠오른 유튜브 크리에이터도 정작 유튜버를 본업으로 할 정도의 수익을 창출하는 이들은 전체의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고싶은 것만 할 수는 없다는 말은, 그 앞에 '정말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이라는 말이 숨어있었던 것 같다. 그걸 진작에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어른이 되면 당연히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을 '의젓하게' 버텨가며 해야 한다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내 자신이 참 한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어른이란, 아니 멋진 어른이란,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최소한의 현실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해내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나에게 다시 물어본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건? 정말로 좋아하는 건 뭐야?

벌써 이렇게 세월이 지나고 나이도 결코 어리지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서 도전하고 싶을 정도로 하고 싶은건 뭐야?


남편 팀의 어린 직원이 정말로 회사를 나와 가죽공방을 차린다면, 꼭 잘 되었음 좋겠다.

설령 결과가 기대한 것 만큼 되지 않는다고 해도 너무 실망하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직원도,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는 용기 있는 누군가도, 그리고 이 나이에도 소녀같은 꿈에 설레어하는 나도,  모두모두 파이팅 했으면 좋겠다.


매일매일의 일상에 지쳐도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그리고 주변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도저히 포기가 안 될 정도로 정말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꼭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용기를 내 봤으면 하고 진심으로 응원하고 또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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