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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Sep 02. 2021

사람 보는 눈 삽니다

내 뒷통수는 소중하니까

최근에 새로운 회사로 이직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문득 내가 너무 마음놓고 있는게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과연 여기에는 지뢰가 없을까?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나의 부족한 점 때문에 아쉬울 때가 종종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업무 능력이나 운(의외로 매우 중요;;), 학연, 지연같은 인맥보다도 사람 보는 눈인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나이도 아니고, 이제까지 거쳐온 회사들의 규모로 봤을 때도 스타트업, 중소기업, 외국계 회사,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정말 크고 작은 다양한 조직을 거쳐오면서 조직 생활에 대한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 유독 지금까지도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느껴지는게 참 답답하고 아쉽다.


보통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건 처음에는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쁜 사람이었다거나, 반대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좋은 사람이었다로 판단이 바뀌는 경우를 말할텐데, 사실 후자같은 경우는 큰 문제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크게 호감이 가지 않거나,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어도 평소에 인사만이라도 잘 하거나, 평범하게 대화에 응하는 등 그야말로 최소한의 예의만 지켜도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싫은 티 내면서 불편한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전자의 경우는 엄청난 뒷통수 스매싱과 함께 멘탈이 탈탈 털리는 후폭풍이 따라올 수 있다. 좋은 사람이다 라고 판단한 순간 그 사람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이 생기고,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허용 범위가 확 넓어진다. 심지어 단순히 좋은 사람을 넘어 존경할만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좋은 사람이라서 잘 해준 모든 일들, 적극적인 업무 협조, 믿고 따랐던 나의 신뢰가 한 번에 와장창 깨지면서 최악의 경우 오히려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돌아왔을 때의 배신감과 상처는 다른 무엇으로도 회복하기 어렵다.


나는 그동안 16년 넘게 회사를 다니면서 사람을 잘못 봐서 크고작게 데인 적이 여러번 있었는데, 가장 데미지가 컸던 대표적인 경우로는 내가 존경하고 따르던 상사에게 그야말로 제대로 뒷통수를 쎄게 맞은 사건을 꼽을 수 있다.




문제의 상사A는 내가 경력으로 이직한 회사에서 3년차로 접어들어 한참 신나게 일하고 있을 당시 같은 부서 내 다른 팀의 팀장이었다(여러 팀으로 이루어진 사업실로, A는 나의 직속 상사는 아니었다). 개발자가 대다수인 부서에서 사업 백그라운드로 팀장을 하고 있었고, 시원시원한 말투와 개발자가 아님에도 개발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도도 낮지 않아서 당시 나에게는 롤모델 같은 사람이었다. 특히 나의 바로 전 직장 직속상사는 -마케팅 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뜬구름잡는 원론적인 이상론만 펼치는 교수 스타일의 인물로, 항상 주말에 읽은 책에 나온 이론을 주간회의에서 강의하고 그걸 바탕으로 애매모호한 업무 지시(라기 보다는 숙제;;)를 내려 팀원 전체를 혼란스럽게 하던 사람이어서(오죽하면 팀원들 모두 제발 팀장이 주말에 책 좀 그만 보고 잠이라도 자기를 간절히 바랄 정도였다;;), 상사A는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이었고, 저 사람이 우리팀 팀장이었으면 참 좋았겠다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나는 상사A의 업무 협조 요청에는 항상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당시 부서장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퇴사하고 상사A가 갑작스럽게 부서장이 되었을 때는 우리 부서 전체의 업무 환경이 더욱 개선될 거라고 생각해 진심으로 축하하기도 했다. 그런데 세상에, 상사A는 부서장으로 승진한지 일주일만에 부서 전체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내 포지션의 새로운 담당자를 발표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전체 회의 후 바로 나를 따로 회의실로 부르길래 뭔가 다른 계획이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별다른 설명 없이 다른 직원에게 내 자리를 주기로 결정했고, 원하면 사내 타 부서로 이동할 수 있는지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사실 부서 이동이 불가능하다면 나는 회사에서 갈 곳이 없어지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중요한 결정을 사전에 나에게 일언반구 없이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공표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왜 내가 3년간 잘 해오던 자리에서 일방적으로 밀려나는지, 그리고 이런 부당한 일처리에 대해 항의 한 마디 못 하고, 더듬거리면서 감사하다고 했다.


나를 몰아낸 사람에게 대체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묻지는 못할망정 감사하다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 머리를 너무 쎄게 맞은 것 같은 얼얼함과,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머리에서 접수가 안 되는 먹먹함과 충격으로 한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동안 그런 인사 조치를 받을 정도의 업무적인 실수나 문제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았으며, 오히려 일에 엄청 자신감이 붙어 있었던 시기여서 대체 왜 내가 자리를 빼앗겼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처음 겪어보는 해고에 준하는 인사에 대한 충격도 어마어마했는데, 그게 심지어 내가 나의 롤모델로 존경하고 지지했던 사람에 의한 것이라는 2차 충격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사고회로가 정지했던 나의 미련함때문에 지금까지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상사A는 나름대로의 기준에 의해 나를 밀어냈을 것이다. 그 판단의 이유는 그의 기준에 나의 업무 능력이 부족해서였을 수도 있고, 다른 직원이 나보다 더 적임자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정치적인 이유일 수도 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냥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뭐였던 간에 -설령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 때 내가 받은 충격은 벌써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해서, 다시 기억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뒷통수가 얼얼하다.




상사A 외에도 사람에 대한 나의 판단이 전혀 맞지 않았던 경우는 여러 번 있었다.  

믿고 아끼던 후배를 본인의 간절한 부탁에 그가 원하던 포지션에 적극 추천했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팀원들에게 민폐만 실컷 끼치고 무책임하게 떠나 버린 경우라던가, 자신이 맡은 업무에 내가 적임자라며 협력을 부탁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입사동기가 알고보니 내가 한 부분까지 전부 자신의 실적으로 포장한 경우 등등... 

이번 회사로 이직하기 바로 전 직장에서도 내가 믿고 따르던 직속상사가 알고보니 나와 다른 팀원간의 커뮤니케이션에 큰 오해를 만들어놓고 정작 본인은 나몰라라 해서 너무나 큰 마음고생을 했던 터라 새로운 환경에 멀쩡하게 적응해가던 중에 갑자기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나보다.


믿고 따르던 사람에게 뒷통수를 맞으면 당장 그 순간의 충격도 충격이지만, 나도 모르게 이런 경험이 트라우마 비슷하게 남아서 새로운 곳에서 또 누군가를 만날때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 더 큰 데미지로 느껴진다.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내가 속한 부서의 팀원들은 모두 다른 경력과 업계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데, 텃세같은 미묘한 견제도 전혀 없고, 모두 굉장히 친절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서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수다 꽃이 피기도 하고, 업무적으로도 너무나 협조적인 태도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는 내가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게 피부로 느껴져서 매일 출근하는게 즐겁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데도 갑자기 덜컥 겁이 나는 순간이 생긴다. 나한테 지금 이렇게 잘해주는 이 사람이 혹시 나중에 뒷통수 스매싱을 날리는 것 아닐까, 혹시 알고보니 또 발등 찍을 도끼가 아닐까, 내가 너무 순진하게 보이는 대로 너무 믿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르면서 너무 믿지 말자, 너무 좋아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곤 하다.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을 보이는 그대로 믿지 못하고 몰래 마음속으로 벽을 치는 건 정말 씁쓸하고 서글픈 기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자기방어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몇 번의 경험이 너무나 뼈아팠고, 내가 잘못 판단했던 사람들도 뒷통수를 치는 그 순간 전까지는 나에게 너무나 좋은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싹싹한 태도에 뛰어난 언변, 친절한 태도, 훌륭한 업무 능력과 매너까지, 좋은 사람으로 판단할 만한 요소가 너무나 많았다. 그런 사람이 어느 순간 갑자기 전혀 정반대의 모습으로 돌변하는 건 당하는 내 입장에서는 정말 기막힌 일이다. 아예 처음부터 폭탄의 싹수가 보여서 안전거리를 유지하던 사람한테 치이는 것보다 몇 배 큰 데미지를 전혀 무방비 상태에서 고스란히 받는 느낌이랄까. 아군인줄 알았던 사람에게 총 맞는 기분은 정말 몇 년의 시간이 흘러도 완전하게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


다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들의 어두운 단면이 언뜻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고, 사실은 주변 사람들이 나와는 다르게 판단하고 있었거나, 내가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면에 양날의 검처럼 단점이 존재하는 등 위험 신호는 분명 있었다. 다만 나한테 그것을 미리 알아차릴 눈이 없었을 뿐.


어떤 사람을 완벽히 파악하는 것은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평생을 같이 산 가족이나 부부 간에도 서로 알지 못하는 면이 존재하는데, 하물며 일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도 나의 사람 보는 눈이 조금만 더 제대로 작동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정말 간절하다. 적어도 새로 만나는 사람들을 마음껏 좋아하고, 신뢰하고, 나중에 배신당할 걱정에 미리부터 철벽치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친한 지인 중에 유독 사람보는 눈이 정확한 친구들이 있는데, 지금처럼 새로운 환경에서 막 첫걸음을 떼고 있는 단계에서는 그들의 안목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어디 가서 관상보는 법이라도 배워야 할지...;;


세상의 모든 지뢰들이여, 어차피 터질 거면 어디 묻혀있는지 제발 힌트라도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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