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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Sep 10. 2021

무릎, 안녕하신가요?

다음 정류장은 '노년'입니다.

며칠 전 팀원들과 같이 한 점심 자리에서 어쩌다보니 아들 얘기가 나와서 이렇고 저렇고 얘기하던 중 팀원들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순이님은 그렇게 큰 아이가 있는 나이로는 정말 안보여요."

"맞아요. 처음 봤을때도 들었던 나이보다 어려보여서 깜짝 놀랐어요."


에헤헷~ 듣는 즉시 기분이 금요일 퇴근 10분전 수준으로 급상승했다.

이제 40대 딱 중간으로 치닫고 있는 나에게는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것 만큼 신나는 칭찬이 없다.

솔직히 일 잘하고, 아들이 잘 커서 부럽고 등등 다른 어떤 칭찬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그야말로 최상급의 칭찬이다. 대부분의 칭찬은 상당 부분 빈말+사회생활의 매너 정도로 알아서 걸러서 듣지만,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말 만큼은 필터링이 안 된다.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은 '나이보다'에 방점이 찍힌 지금 한 순간의 위로일 뿐, 내가 실제로 '어리다'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한마디에 마치 정말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처럼 행복해지고 마는 것이다.


내 친구들 중에는 20대에서 서른 살이 되면서 알 수 없는 조급함과 우울감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갑자기 노화가 시작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비싼 아이크림을 바르고 콜라겐을 먹기 시작했다거나, 이제 더 이상 좋은 남자를 만나지 못할 것 같다고 얘기하는 친구도 있었다. 실제로 그 시기에 결혼을 서두르는 친구도 몇 있었다. 

나는 스물 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사실 아무런 느낌이 없어서 사실 당시 친구들에게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었는데, 서른 아홉이 된 해에는 거의 패닉에 가까운 공포를 느꼈다. '마흔'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쾌한 어감과 이제 꼼짝없이 '중년'이라는 확인사살이, 육아 때문에 퇴사 후 프리랜서로 일하던 당시의 다시는 예전처럼 사회생활로 복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과 뒤섞여 그 어느때보다 우울한 한 해를 보냈다. 내 인생이 다시 빛나는 일 없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아줌마'가 되고 있는 것 같은 어둡기 그지없는 그 느낌에 뭘 해도 신나지 않았고, 어떤 것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었다.


그렇게 자포자기 상태로 바닥까지 내려앉아 허우적거리다가 마흔이 된 해에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겨우 하나 둘 씩 희망의 끈을 잡고 억지로 나를 끌어올렸다. 책을 좀 더 많이 읽었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가는 건 뭐라도 배워보고, 건강에도 신경쓰고, 그리고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다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당장 마법처럼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과거에 가졌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것, 그리고 현재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에서 눈길을 떼고 미래를 보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숨이 좀 쉬어지는 것 같았다.




나이 들었다, 늙었다라고 느끼는 기준은 사람마다, 직업마다, 연령대별로 모두 다를 것이다. 프로게이머나 아이돌에게는 20대 중반도 이미 나이 들었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인 반면, 60대 어르신이 볼 때는 마흔도 아직 너무 창창한 나이일 수 있다. (실제로 나도 시어머니에게 "어휴 내가 네 나이 때는 날아다녔다"는 말을 곧잘 듣고, 귀촌한 우리 아빠는 올해 칠순이 되시는데도 동네 어르신들에게 막내야 소리를 들으신다;;)


나에게는 그 기준점이 마흔이었던 것 같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내가 더 이상 젊지 않다, 나이 들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년에서 중년으로 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공포심을 느낀다. 중년인 나의 다음 정류장은 '노년'이 아닌가! 


막연히 중년을 바라보던 젊은 시절에도 결코 젊음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당장 눈앞의 학업, 취업을 두고 달리기만 하던 어린 시절보다는 뭔가 좀더 안정적인 삶의 기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 마음의 여유 같은 것에 대한 기대가 함께 있어서 마냥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노년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은 어쩌면 충분하지 못할 수 있는 노후자금, 생각만해도 좌절스러운 외모의 노화, 암이나 치매같은 치명적인 병에 대한 두려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혼자 두고 떠나게 될 슬픔 등등 도무지 희망적인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내가 스스로 나이 들었다는 걸 가장 직접적으로 실감하는 순간을 몇 개 생각해 보았다.



"돌아서면 잊어버려"

순간 치매인가? 싶을 정도로 방금까지 분명 머리속에 있었던 것이 순식간에 증발하는 순간이 점점 많아진다. 집안에서 핸드폰 찾아다니는 건 이미 일상이고, 냉장고 문 열고 내가 뭘 꺼내려고 했는지 생각이 안 나 한참 서있는 경우도, 구글 검색창 띄웠는데 뭘 검색하려고 했는지 생각이 안 나 황당한 순간도 종종 있다. 회사에서 다른 사람을 불러놓고 무슨 말 하려고 했는지 갑자기 생각이 안 나 등에 식은 땀이 날 때도 있다. 마트에 장보러 갈 때는 꼭 필요한 소비를 하기 위한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꼭 사야할 것을 까먹지 않기 위해 장볼 목록을 적은 수첩을 들고간다. 브런치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번뜩 떠오를 때가 종종 있는데, 생각이 떠오른 그 즉시 메모해놓지 않으면 열에 아홉은 1분 내로 증발해버리기 때문에 주변에 뭐가 됐던 집어들고 바로 적어놔야 한다.



"비가 오려나..."

코미디 프로그램의 단골 대사였던 이 말을 내가 진지하게 할 줄이야...; 

비가 오기 전에는 정말 귀신같이 무릎이 쑤신다. 전반적으로 관절이 예전같지 않은건 어렴풋이 느끼지만, 무릎 관절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이다. 일기예보가 필요 없을 정도로 비오기 직전이나 하루 전에는 어김없이 쿡쿡 쑤시기 시작한다. 어릴 때는 다이어트 한다고 아파트 20층 계단을 몇 번씩 오르내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계단이 다섯 칸만 넘어도, 경사가 조금만 높아도 한숨이 나오고, 누운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끙~ 하는 신음소리가 찐으로 나온다. 아들이 아직 어렸을 때 줄넘기 가르쳐준다고 아무 생각없이 몇 번 뛰었다가 일주일 동안 파스붙이고 뒤뚱거렸던게 생각난다...;;



"하루 밤새면 회복하는데 사흘"

친구들이랑 몇 날 며칠을 밤을 새며 노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대학교 시험 기간에는 박카스 마셔가며 일주일도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무리해도 하루 정도만 푹 자고 쉬어주면 다시 쌩쌩하게 체력이 원상복구 되었는데,  이제는 어쩌다 야근하느라, 아니면 밀린 넷플릭스 보느라 하루만 밤을 새면 체력 회복에 최소 사흘이 걸리고, 길게는 일주일간 내내 피곤을 달고 있기도 한다. 각종 비타민과 영양제를 챙겨먹고, 삼계탕이나 고기같은 보양식도 푸짐하게 먹어줘야 겨우 일상생활에 가능한 체력을 간신히 유지하는 것이 꼭 수명 다 한 배터리 같은 느낌이다. 완충까지 한세월, 방전은 순간.



"영화는 영화일 뿐?"

영화나 드라마를 예전만큼 보이는대로 그냥 즐기는게 어려워졌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뭐? 저게 말이 돼?"하는 게 하나 눈에 들어오면 그 다음부터는 도무지 극의 진행에 몰입이 안 될 때가 많다. 아무리 리얼리티를 살린다 해도 영화, 드라마는 어차피 허구에 판타지, 픽션이니 현실에서는 말이 안되는 요소가 있는게 당연하다. 근데 그걸 머리로는 알아도 '말도 안돼'하고 팍! 꽂힌 순간 그 다음부터는 당췌 스토리에 이입이 안 된다. 왜 그게 말이 안되는지 근거가 머리속이 하나씩 퐁퐁 떠오르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인 설정 자체를 말하는건 아닌데, '쥬만지: 넥스트 레벨'의 경우를 예로 들면 사람이 게임 속으로 빨려들어간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문제가 아니라, 대학 가서 자신감 좀 잃었다고 -영화 설정상 실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그것도 이미 한 번 가 본 적이 있는- 위험한 게임의 세계로 가기로 결정한 스펜서가 말이 안되기 때문에 이후의 스토리 전개가 영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다.)

특히 내 일상에 가까운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이 허들이 더 높은데, 너무 말도 안되는 상황이나 상사, 사내 로맨스 같은 걸 보고 있노라면 어이상실의 콧방귀가 풍풍 나와서 도무지 재미있게 몰입해서 볼 수가 없다.



"신문물 무서워"

요즘 어르신들이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걸 어려워하는 등 디지털 문맹이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경력공백 끝에 올해 어렵게 풀타임 회사생활을 다시 시작한 나는 업무환경에도 그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매일같이 몸으로 느끼고 있는데, PM 포지션으로 일하면서 아사나, 지라, 컨플루언스 등 프로젝트 관리툴, 재플린, 피그마 같은 디자인툴, 루시드, 파이어베이스, 롤아웃, 브레이즈 같은 개발 관련 툴, GA, 크레이지에그, 스마트룩 같은 데이터 관련 툴까지, 너무나 많은 '신문물'을 새로 배우고 적응해야 했다. 예전에는 엑셀로 하거나, 기껏해야 한두개의 툴만 사용해서 일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업무환경이 되었고, 일 자체보다는 일을 하기 위한 환경과 도구를 익히는 것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실무를 하기 위해서는 나한테 익숙한 아날로그 방식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이 많은 '신문물'에 적응해야 하는데 현업에서 너무 오래 떠나있었던 탓인지 이 과정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새로운 뭔가를 (특히 IT 관련;;) 배우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이 확실하게 체감된다. 물론 배우려면 배울 수는 있다. 인터넷, 유튜브만 좀 뒤져도 필요한 정보는 얼마든지 넘치고, 좀 깊이있게 들어가려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일련의 과정이 예전처럼 빠르거나 쉽지 않고, 배우는 것 자체에 대한 피로감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게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끔 양가 부모님들의 부탁으로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해 드리거나,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거나, 인증서를 갱신하거나, 관공서 서류를 발급받아드릴 때가 있는데, 솔직히 마음 한 편으로는 귀찮다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머지 않은 미래의 나의 모습으로 오버랩 되면서 동병상련의 심정이 된다.



"둥글게 둥글게"

이건 좀 긍정적인 면이기는 한데, 확실히 성격적으로 예전보다 많이 둥글어짐을 느낀다.

가족이나 친구들한테 섭섭한 일이 생겨도, 회사에서 짜증나는 일이 생겨도 예전처럼 대번에 발끈하거나 반격(?)에 나서지 않게 되었다. 특히 업무적으로 뭔가 부조리하거나 덤터기 쓰는 듯한 상황이 생기면 예전같으면 분연히 일어나; 바로 대면하고 따박따박 따지고, 잘잘못을 명명백백하게 가리고자 했을텐데, 이제는 한숨 한 번 쉬고 왠만하면 좋게좋게 해결해 나가려고 한다. 회사에 좀 짜증나는 사람은 있어도, 예전처럼 극렬히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걸 보면 예전에 나의 모난 부분이 참 많이도 둥글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뷔페에서 예전만큼 많이 먹지 못할 때, 고기를 배터지게 먹으면 속이 부대낄 때, 죽어라 굶고 운동해도 도무지 살이 빠지지 않을 때, 톡톡 튀는 예쁜 컬러로 염색하기 위해서가 아닌 너무 많아진 흰머리 때문에 뿌리염색하러 갈 때 등등, 일상 속에서 내가 예전의 나와는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는 씁쓸한 순간은 정말 많다. 


너무 오랜만에 본 외할머니의 색이 거의 없어 회색에 가까운 눈동자를 봤을때는 너무 충격적이었고, 멀리 살아서 자주 보지 못하는 엄마, 아빠가 몇 달에 한 번 만날 때마다 눈에 띄게 주름이 늘고 머리가 하얗게 세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짠하고, 기저귀에 응가하고 응애응애 울던 아기가 이제 나보다 커져 신발장 윗칸에서 짐을 내려줄 때는 뭉클하다. 시간은 확실히 흐르고, 나도, 내 주변의 모든 이들도 변해간다.


100세 시대인 지금, 40대의 내가 나이 들었다고 하면 비웃음만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겠나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는데... 

나는 매일매일 노년으로 확실히 가까워지고 있고, 어떻게 포장해도 도저히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게 명백한 현실이다. 그것이 거스를 수 없는 삶의 섭리이니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확실히 조금, 아니 사실 많이 무섭다. 


내가 50대, 60대가 되면 이 두려움에 조금은 초연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름답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늙어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덤으로 그때에도 "어머,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여요"라고, 빈말이라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신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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