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제 일인가요
이런 생각이 들면 내가 속 좁은 걸까?
올해 한 부서의 장을 맡게 되었는데
처음이 아닌데도 낯선 경험이 많다.
내게 결재받는 분들의 수가 왕왕 늘었다던가,
직접적인 내 업무가 아니더라도 협의할 일이 생긴다던가.
최근 아주 큰 예산으로 진행해야 하는 사업 때문에 분주하다.
담당자도 처음 해보고 나도 처음 해보는 사업이라 정신이 없다.
여기저기 물어야 하고, 위아래로 일정도 조율해야 하고, 동시에 외부 업체와도 컨택해야 하고.
내가 의문을 품게 된 것은 바로 이 지점부터다.
어디까지 내가 하고, 어디까지 분배해서 담당자에게 줘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이 분배를 내가 하는 게 맡긴 한가?
어렵사리 일정을 조율하고 나서
다음엔 뭘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가 준비해야 할 일이 있을까요? 하는 담당자의 연락을 받았다.
리스트를 작성해서 보내고 난 뒤에야 어라?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뭐지 이 주객전도는.
생각하니 다른 일들도 있었다.
계획서 작성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자료가 없다고 해서 결국 내가 작성했다던지
안내를 맡겼더니 행사 날짜가 다가오도록 감감무소식이라 내가 했다던지
관련 업무로 필요한 서류 작업을 하다 연락을 했더니 담당자는 조퇴로 나가고 없다던지.
그래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겼는데
주말에 온 연락에 아악- 뭐야! 하는 소리를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당일 행사에 필요한 기타 준비는 내가 할 테니
간단한 서류만 인쇄해오라는 지시(?)를 지난주에 주었었는데
갑자기 당일 자신이 늦게 출근할 예정이라 인쇄를 못하겠다는 거다.
그러면서 행사는 참석하겠다는 연락.
누가 참석을 해주는 거고 누가 일을 돕는 건데 지금?
그러니까 이 일의 주체가 누구냐고!
갑자기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내가 작성했던 수많은 문서들, 조율을 위해 대화했던 수많은 사람들.
정작 담당자는 없이 야근했던 며칠과 행사 준비를 한다며 온 학교를 돌아다녔던 마지막날까지 스쳐갔다.
게다가
담당자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어서
(그 와중에 큰 일까지 하는 게 안쓰러워서) 보냈던 기프티콘과 격려문자까지 떠올랐다.
뭔데, 지금.
하기 싫어서 미루는 거야?
이거 누가 해야 하는 건데?
누가 실무자이고 누가 돕는 건데?
왜 고마운 줄 모르고 일을 미루지?
나 호구 잡힌 거야?
별스럽지도 않은 '장'을 맡으면서 생각했던 건
어쨌거나 직책을 맡았으니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하자, 였다.
그게 순수하게 내 일이어서라기보다는
누가 하던지 일이 진행되는 게 중요하고
그 진행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과정에서 내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게 리더십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담당자를 도와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뭔가
그 사람의 업무를 내가 덤터기 쓰듯 다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같은 월급 받으며 내가 왜 이렇게 까지 해줘야 하며
부서의 다른 그 어떤 분들의 업무도 나는 이만큼이나 해준 적이 없고
그럼에도 일이 많다고 울상을 하며 주변에게 하소연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 것까지 생각하면
화가 났다.
한 마디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불쑥 들었다.
일을 실컷 하고 있으면서도 고맙다 소리도 듣지 못한 게 억울하고
경력도, 나이도 한참 뒤인 후배에게 당한 것 같기도 하고
속된 말로 이게 진짜- 하는 마음까지 들고.
담당자가 보낸 '그' 연락을 붙들고 한참이나 씩씩거렸다.
어떻게 해결했냐고? 해결하지 못했다.
어떤 방식을 취해야 상대도 기분 상하지 않으면서 내 기분도 달랠 수 있을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기분이 드는 내가 조금 꼰대 같기도 했다.
아 뭐 그 정도 호의로 해줄 수도 있는 일에 내가 예민한가 싶기도 하고.
나도 피곤하고 힘이 들지만 담당자가 힘든 것도 한편 이해가 되는데
그에게도 그 나름대로 애쓴 부분이 있을 텐데
또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일단은 업무를 무사히 처리하고 일이 진행되게 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아니 어떻게 담당자가 이럴 수 있어! 하고 곱씹는 것보다
그 일이 눈에 띄고 할 수도 있는 내가 하는 것이 덜 피곤하기 때문이다.
잘잘못을 따지거나 사사로운 감정싸움을 하는 것보다
직장인만큼, 목적에 집중하는 게 맞다 - 싶다.
가만, 이게 호구 잡힌 건가?
어디까지가 리더로서 갖춰야 할 부분이고 어디부터는 꼰대가 되는 건지 참 구분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