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 그런가요?
너희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심정적 속상함을 토로했던 어느 날, 의외의 통찰력을 발휘한 한 녀석이 물었다.
선생님은 말 잘 들으세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꽤 유명한 말 중에
사람이 서른다섯(?)이 넘으면 후져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서른다섯쯤 되면 다들 어른이라 인정해 줘서 그런지
옷차림이고 예의범절이고 이래라저래라 조언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살던 그대로 살게 되면서 낡아간다는 의미였다.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는(그땐 서른다섯은커녕 삼십 대도 되지 않았었고)
그게 뭐 어떻다고, 자기 방식대로 살면 되지! 했다.
그게 나쁜 거냐고.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하면
응. 좀 나쁠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아주 나쁠 수 있는 일.
Y가 무려 중학생 때부터 친했던 친구에게 손절당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것도 같이 어울리던 무리 모두에게 연락을 끊었다는 거다.
어떻게 하다 그랬냐 물으니
오래전 헤어진 애인을 잊지 못해 힘들어하는 그 이에게
이제 그만 정리하고 네 삶을 살아야 하지 않냐는 쓴소리를 했다가
하루아침에 20년 넘는 세월의 관계를 정리당했단다.
참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족도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 연애사에 대해
분위기 나빠질걸 알면서도 정신 차려라 이야기하는 일이 쉬웠을 리가 있나.
듣는 사람은 자기를 공격한다고 여겼을지 몰라도
쓴소리를 한 사람들은 당사자에게 깊은 신뢰와 애정이 있었을 거다.
당사자에게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없었을 뿐.
저를 위한다고 해준 말에 저렇게 반응하니 허무하고 속상하다는 Y에게
어쩌겠니, 시절인연인가 보다 하는 말을 건넸다.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라고 친구들의 조언이 맞는 말이라는 걸 몰랐을까 싶다.
그냥, 듣기가 싫었던 거지.
여기까지 생각하니 약간 찔리는 데가 있다.
남의 말 듣기 싫은 기분. 나도 너무 잘 알거든.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진짜로 남의 말 듣기가 싫다.
삶의 태도든 일하는 방식이든.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전부다.
나도 이만큼 살았는데 내 방식이 있다 싶고
저렇게 잔소리 안 해도 알아서 잘할 수 있거든 싶고
어쩌면, 알면서 행하지 못하는 일을 누가 콕 집어 이야기하면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또 사실, 타인의 말을 듣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기엔 일상이 지치기도 하고.
나부터 되돌아보자.
부끄러운 일들을 고백하자면
너 너무 집순이라 밖을 좀 다녀야 돼,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 하는 친구의 말에
속으로 네가 날 잘 몰라서 그래! 하며 반발했고
수업할 때 새로 나온 도구를 사용해 보는 건 어때? 하는 조언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충 보고 뭐 별다를 것도 없는데 귀찮기만 하네 생각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뭘 먹고 눕지 마라, 커피 너무 많이 마시면 큰일 난다 하는 엄마의 말에도
내가 알아서 해! 하고 반응했던 것이다. (엄마 미안해...)
고백하고 보니 애들에게 왜 이렇게 선생님 말을 안 듣니, 말할 자격도 없다 싶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든 걸 잘 알고 늘 현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내가 내 마음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피지 못해서 실수하거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있던 자리에 고여버릴 수 있는 가능성은 더 커진다.
어느 정도 고정된 삶의 사이클을 가지게 된 성인이
매번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지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알아서 변화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위에 귀 닫고 '살던 대로' 살다 간 말 그대로 고인 물이 되기 십상이다.
내가 잘 모르는 걸 알려주는 '남의 말'이라면 감사한 일이고
내가 잘 알면서도 이상하게 행동할 때 일깨워주는 '남의 말'이라면 더욱더 감사한 일이다.
그 타인들도 꺼내기 되게 어려웠고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이었지만
나에 대한 애정과 신뢰로 조심스럽게 건넨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찬찬히 들어보는 겸손을 길러보려고 한다.
당장 듣기 싫고 꺼려지는 말일수록 더욱더.
혹시 내가 나중에 이상한 소리 하거나 말도 안 되는 짓하면
가차 없이 쓴소리 해줘.
근데 내가 너네가 해 주는 말 듣기 싫어하고 연락 끊으려고 하면
나를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줘. 알겠지?
하는 Y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도. 나도 그렇게 해줘. 하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