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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May 30. 2023

학교 가는 길

스코틀랜드 초등학교

최근에 아들의 학교를 옮겼다. 집에서 걸으면 오분이었던 학교를 이제는 차를 타고 12분 정도 달려야 나오는 '마컷'이라는 마을에 있다. 초등 1학년에서 7학년까지 학생과 선생님 수를 다 합쳐도 사십 명 남짓된다.(스코틀랜드의 초등교육은 7년 제)  다른 일 때문에 전에도 그곳을 몇 번 지나쳤지만 단층 건물 몇 채가 연결되어 있어서 학교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학교 옆으로 작은 도로가 있어 급할 때는 거기다 주차를 하고 아이를 등하교시키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마컷' 마을 센터 앞에다 주차를 하고 학교길(School Road)을 따라 10-20분 정도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오고 가는 학교 길은 항상 고요하다. 내 발에 밟히는 모래, 돌, 나무 막대기 소리로 시작해서 높은 나무 위로 올라 선 새들의 하모니가 더해진다. 치르치르 소프라노처럼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츠르츠르 알토처럼 굵고 낮은 목소리가 있다. 자연의 합창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엄마를 쫓아가는 새끼양의 목소리와 나란히 한 줄을 서서 봄 구경을 하는 오리 가족까지 자연의 소리는 조급 했던 나의 아침을 반 박자 느리게 만들어 준다. 가만히 보면 새끼양과 엄마양의 보실보실한 흰 털 위로 같은 색깔이나 번호가 적혀 있다. 새끼양도 학교를 가는 것 마냥 엄마 옆을 바짝 따라붙었다. 


초등학교 등교시간은 8시 45분에서 9시 15분 사이에 있다. 그전에 학교 문은 열리지 않는다. 두 명의 보조교사가 아이들을 보고 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들은 학교 옆 조그만 운동장에서 시작종이 울릴 때까지 논다. 비가 많이 오는 스코틀랜드에서 비옷과 장화는 필수 준비물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은 20분 코스를 선택했다. 골프장이 옆에 있어 간간히 골프 하는 사람들도 보이지만 그걸 구경하고 있는 듯 맞은편에는 블랙양들이 여유 있게 앉아 있다. 어째 여길 가도 양이고 저길 가도 양이다. 이 동네는 사람 보다 양이 훨씬 많음이 분명하다.


"The painted lady butterfly has a thorax."

아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thorax이 뭐야?" 

"If you chopped the thorax, the legs will come out because they are connected!"

 'thorax'을 자르면 다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리가 나온단다. 'chopping(자르기)을 해야 한다고?

 아들의 설명에 'thorax'이 더 헷갈렸다. 바보같은 내 얼굴을 눈치채고는 지렁이한테는 thorax이 없고 다리가 달린 곤충에게는 있는 거라며 부연 설명을 해줬다. 아하. 이제야 감이 왔다. 

"곤충의 가슴부위를 말하는 거구나." 

"엄마, 만약에 번데기가 나무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근데 번데기가 왜 떨어져?"

"바람 때문에 떨어질 수도 있지."

"아.. 그러네. 번데기가 바닥에 떨어지면 글쎄.." 

1초도 참지 못하고 아들이 대답했다. 

"종이나 숟가락으로 번데기를 나무 밑에다 다시 갖다 줘. 그럼 번데기 안에 있는 애벌레가 알아서 다시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근데 왜 손으로 옮기면 안 돼? 왜 종이를 써야 해?"

"손에 균이 있으니까 안 돼. 종이는 사람들이 번데기가 여기 있으니까 밟지 말라는 걸 알려주는 거야."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 방법은 한국에서 통하지 않을 테니까. 번데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차마 의뭉스러운 내 생각을 순진 무궁한 아들에게 전달하고 싶진 않았다.  

 학교길 20분을 걸으면서 차 타고 집으로 올 때까지 교실에 있던 애벌레가 작은멋쟁이 나비(painted lady butterfly)가 되어 날아간 것과 학교 운동장 옆으로 구멍을 송송 뚫어 집을 만든 ringed wasps(말벌)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됐다. 솔직히 어느 자연다큐보다 더 재밌는 얘기였다. 팝콘처럼 참지 못할 질문을 팡팡 내던지면 아들은 내 질문에 콧방귀를 뀌거나 비웃지도 않고 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어릴 적 이런 자연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난 100점을 맞았을 테다. 

오늘은 공룡 얘기를 안 해서 다행이다. 공룡은 이름부터 벌써 제2외국어다. 들어도 들어도 귓가에서부터 튕겨 나온다. 이 공룡의 무게는 어른 6천 명과 맞먹는다느니 이 공룡은 250년을 살 수 있다느니... 이야기 자체가 심오할뿐더러 아들의 공룡 세계엔 질문이 많다. 틀린 대답만 매일 반복하는 게 무지 난처하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부엌으로 달려 들어가 물을 한 컵 마시고 뒤돌아서며 말한다. 

"테리지노사우루스(Therizinosaurus)의 발톱이 몇 센티지? 엄마, 이제는 알죠?

어째 오늘은 조용히 넘어가나 싶더니만. 


 




왼: 학교 정문     중앙: 도로 옆 학교     오른: 20분 코스 걷기


왼: 학교 운동장   중앙 & 오른: 10분 코스 걷기. 'Daddy & Son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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