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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n 04. 2024

집 가고 싶다

엄마 집 말고 우리 집

집 가고 싶다. 딸과 남편이 기다리는 집에 가고 싶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반려견과 두서없이 막 심어놓은 꽃과 나무가 자라는 집에 가고 싶다. 내가 엄마 집에 와 있는 사이 매화, 서부 해당화, 황매화, 앵두, 라일락, 모과나무에 꽃이 피고 졌다. 지금은 앵두와 보리수 열매가 열렸고, 자두와 포도가 익어가는 중이다. 아이 키우다 만난 친구들과 한 동네에 어울려 살겠다고 함께 집을 지었다가 인간관계 파탄 나고 정말 꼴도 보기 싫었던 집, 오만 정이 다 떨어져 팔아버리고 싶었던 그 집에 가고 싶다.   


처음에 올 땐 한 달 생각하고 왔다. 한 달 안에 엄마가 회복되는 걸 바란 건 아니었고, 열심히 재활해서 아빠 혼자 간병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 정도의 목표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오만했고 무지했다. 병이라는 게, 특히 병원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병이라는 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집에 온 이후로 엄마는 더 안 좋아졌고, 나는 반 년째 집에 못 가고 엄마 집에 있다.


엄마 집에 오기 싫었다. 엄마가 쓰러지기 전까지 엄마 집에 잘 오지 않았다. 대학 가면서 집을 떠났고, 그 이후로 집에 잘 오지 않았다. 오더라도 볼일만 보고 금방 떠나곤 했다. 딸을 낳고 나서는 내가 엄마 집에 오는 날보다 엄마, 아빠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이 더 많았다. 최근 명절에도 엄마, 아빠가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지냈다.  


내가 엄마 집이라고 부르는 집은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이다. 낡고 작은 복도식 아파트로 내가 중학교 가면서 이사온 집이다. 원래 우리는 시장통 가게 딸린 집에서 살았는데, 그 자리에 상가아파트가 생기면서 우리도 아파트로 이사 왔다. 처음엔 새 아파트여서 좋았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일이 시급해서 집 가꾸는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고, 둘 다 집 가꾸는 일에 취미가 없었다. 그러다 둘째 동생이 죽고 그 충격으로 엄마가 시력을 완전히 상실, 1급 시각장애인이 되면서 집은 더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막내 동생이 결혼할 무렵 신부가 인사온다고 급하게 리모델링을 했었지만, 집은 빠르게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엄마 집에 오면 모든 것이 불편했다. 좁은 집, 하나 뿐인 화장실, 이사 오면서 들였던 푹 꺼진 침대, 삐그덕거리는 식탁부터 꽃무늬벽지, 어두운 가구, 오래된 가전제품, 정리되지 않은(엄마 식으로 정리된) 너저분한 살림살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가난한 부모를 부끄러웠던 기억, 죽은 동생과의 추억과 아픔이 모두 서려있는 곳이라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엄마 집에 있으면 나의 사고 흐름, 루틴과 생활리듬이 마구 헝클어지곤 했다. 공간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


엄마 간병하겠다고 짐 싸서 엄마 집에 왔을 때 미칠 것만 같았다. 엄마는 점점 안 좋아지지, 매일 머물러 있어야 하는 집구석은 마음에 안 들지 숨이 턱턱 막혔다. 잠도 잘 안 오고, 밥맛도 없어서 끼니를 대충 때우거나 거르는 때도 많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변화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엄마 집에 있게 될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은 내 식대로 살자. 엄마 집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우선 주방 살림을 정리했다. 싱크대를 내가 쓰기 좋게 정리하고, 엄마 그릇 중에 그나마 내 취향에 맞는 그릇들을 꺼내 쓰고 있다. 동생이 가져다 준새 책상과 노트북과 모니터로 내가 쓰고 있는 안방 한 구석을 내 방처럼 내 취향껏 꾸몄다. 엄마가 창고처럼 막 쓰던 베란다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집에서 캠핑 의자를 갖다 놓고 짬이 날 때마다 나가서 책도 읽고 멍 때리고 있다. 가끔 고등어도 굽고 라면도 끓여 먹고 더 더워지면 맥주도 마실 거다.


엄마 집을 내가 쓰기 편한 공간으로 바꾸고 나니 조금은 살 것 같다. 이제는 숨이 쉬어지고, 잠도 잘 오고, 밥도 잘 먹는다. 공간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이 공간을 만드는 법인가 보다.


그래도 집 가고 싶다. 철없는 행동이지만 엄마에게 집 가고 싶다고, 내 딸과 남편이 있는 집 가고 싶다고 투정을 부린 적도 있다. 엄마가 너무 안 좋을 땐 차라리 엄마 빨리 보내드리고 집에 가서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시간을 지나 지금은 조금 편해지고 있다. 그렇게 싫었던 엄마 집에도 정이 들었나 보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싶지만, 그래도 집에 가고 싶다. 특히 주말마다 군대 면회오듯 엄마 집에 다녀가는 딸과 남편이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마다 미치겠다. 나도 같이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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