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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n 03. 2024

달달한 것이 오고 있다

돌보는 사람을 위한 돌봄

선물이 도착했어요

수락 기간 내에 선물을 받아주세요


이어 친구의 카톡.


  하나 보냈어.

 


수제 캐러멜. 지난번에 마카롱이더니 이번엔 수제 캐러멜이다. 엄마 집 주소를 입력하면서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디저트 공급원은 사실상 첫 직장에서 만난 선배다. 나이가 나보다 위인 건 알고 있지만 정확한 나이를 몰라 한국식 서열 정리가 말끔하게 되지 못한 탓에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아직 못 찾고 있다. 둘 다 퇴사한 전 직장의 직책으로 부르기도 뭣하고, 나이가 나보다 위인 것을 알아 이름을 부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언니라고 부르기에는 이상하게 낯 간지럽고. 친구는 내 이름을 부르지만 나는 마땅한 호칭을 찾지 못해 아예 부르지 않는다. 그래도 딱히 불편함은 없는데, 말하다가 2인칭 호칭이 반드시 필요할 때는 ‘그대가’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애매하고 서로가 잘 모르는 것이 한둘이 아닌데 오래도록 인연이 이어지고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된 것은 오로지 ‘그녀’ 덕분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잘 안 하는 편이다. 왜 그런지 잘 모른 채 오랜 시간 그래왔다. 상대방을 귀찮게 하기 싫다는 생각도 있고, 내가 연락해야지 생각하기 전에 먼저 연락을 받는다. 얼마 전에 뭘 봤는데 거기 보니까 먼저 연락을 안 하는 나 같은 유형은 외로움을 덜 타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 같더구먼, 그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외로움을 안 타는 건 아니고 외로움을 잘 견딘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외롭지만 먼저 누군가를 귀찮게 하면서까지 외로움을 해소하고 싶지는 않고, 대개 내가 친구들보다 느긋하다 보니 늘 먼저 연락을 받는 입장이다. 그래도 연락이 오면 열심히 받고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구들은 죄다 나의 불성실함을 이해하거나 그것조차 매력으로 알고 열심히 연락을 하는 고맙고 귀한 친구들이다.


그런데 엄마 집에 와서 집에서 24시간 엄마를 간병하는,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어 보니 친구에게 전화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날이 좋아지기는커녕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엄마를 보면 속상하고, 엄마 몸이 나를 덮칠 때 이러다 둘 다 쓰러져 죽을 거 같아 두렵고, 그냥 뭔가 꽉 막혀 속이 답답하고 우울해 미칠 것 같은데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기는 싫고, 지나가는 사람 아무라도 잡고 울고 싶을 때가 많다. 그때 친구들에게 전화하고 싶은데, 이제껏 그렇게 살아오지 않아서 그것도 쉽지가 않다. 그때 먼저 연락을 주는 친구들 덕분에 숨통이 트인다.


아주 죽을 것 같아. 온몸이 쑤셔.

이러다 엄마를 죽일까 봐 두려워.

냉정하게 말하면 엄마는 죽어가고 있어.


가족들에게 못하는 투정도 부리고, 가족들과는 못하는 솔직한 이야기를 친구들에게는 한다. 그냥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고마운데, 선물은 말해 뭣해.  


캐러멜은 오로지 나를 위한 선물이다. 보통 친척들이 엄마 맛있는 거 해 드려라, 아빠 맛있는 거 사드려라, 하면서 돈을 보내주긴 한다. 그 마음도 고맙고, 살림에 보탬이 된다. 하지만 친구들의 선물은 엄마가 아닌 나를 향한다. 엄마를 돌보는 나도 돌봄이 필요한데 친구들의 연락과 선물이 나에게 큰 격려와 위로가 된다.  


드디어 캐러멜이 왔고, 언박싱을 했다. 박스조차 고급스럽다. 평소 지나치게 화려한 포장을 좋아하지 않지만 엄마를 간병하는 초라한 신세여서 그런가, 다소 과한 포장조차 나를 감동시킨다. 성냥갑처럼 상자를 열어 정성스럽게 담긴 캐러멜을 쳐다본다. 무슨 맛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이 즐겁다. 모든 선택의 중심은 엄마인데, 무슨 캐러멜을 먹을까는 나를 위한 선택이다. 엄마를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거라니 황송한 기분이 든다. 가장 눈에 띄는 캐러멜을 입에 넣는다. 두어 번 깨물어주니 입안에 침이 가득하고, 캐러멜이 살살 녹는다. 캐러멜이 그간의 나의 고생과 외로움과 답답함을 녹일 기세로 녹는다.


캐러멜 상자를 냉장고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 당뇨가 있지만 단 것을 좋아해서 호시탐탐 단 것을 먹으려고 하는 아빠를 피해서다.


엄마를 돌보면서 몸과 마음의 한계가 올 때

잘 안 맞는 아빠 때문에 답답할 때

앞날이 막막할 때

그냥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을 때

그냥 조금은 달달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을 때


엄마 몰래, 아빠 몰래 하나씩 빼먹을 거다. 냉장고에 힘들 때 빼먹을 게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든든하다. 일어나자마자 아빠 몰래 캐러멜을 하나 꺼내 물었다. 하나도 달달할 게 없는 간병인의 하루가 조금은 달달하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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