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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Jul 25. 2024

막돼먹은 집안이 되기로 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고 싶지 않아서

콩밥을 했다. 나도 콩을 싫어하고, 딸도 싫어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좋아하고 아빠가 매일 아침 밭에서 콩을 가져오니 먹어야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딸에게 강요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밥그릇에 콩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서 밥을 펐다.


어, 콩 나왔다.

조심해서 밥 펐는데 들어갔나 보네.

할아버지 콩 좋아하지? 내 콩도 먹어줘.


딸아 아빠 밥그릇에 콩을 골라 놓는다. 할아버지도 콩 먹으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었으면 좋겠나 보다.


콩을   먹어? 맛있는데.

콩 맛없어. 엄마도 안 먹잖아.

학교 급식에 콩밥 안 나와?

뭐, 가끔 나오지.

그럼 그때도 콩 골라내고 안 먹어?

아니야, 그땐 꿀꺽 삼켜.

희철이가 보리밥을 안 먹어. 보리밥 집에 간다고 하면 자긴 보리밥 안 먹는다고 안 가.

누구 희철 씨? 희철 씨가 누군데?


아빠와 눈 감고 앉아있던 엄마가 동시에 웃는다. 손녀가 할아버지 친구 이름을 자기 친구처럼 부르는 게 웃겼나 보다.


할아버지 친구 있어. 저기 강제리 사는.

어, 저는 여기 사람이 아니라서요. 그렇게 말하시면 저는 모르죠. 그런데 일단 거기에 희철 씨가 있다고 치고, 희철 씨는 왜 보리밥을 안 먹는데? 맛이 없어서 안 먹는 거야? 아니면 어릴 때 너무 많이 먹어서 질려서 안 먹는 거야?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 이 할아버지 보게? 할아버지가 말을 꺼냈잖아. 그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귀한 아들이라 어릴 때 쌀밥만 먹었대. 그래서 보리밥을 안 먹어봐서 안 먹는대.

그래, 그렇게 말하면 되지 왜 모른 척 해유? 어쨌든 어른 중에도 잡곡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콩 안 먹어도 이해한다,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대답 없음)


우리를 키울 때도 그랬듯이 아빠(+엄마) 이래라, 저래라, 하는  없어서 딸이 할아버지를 편하게 생각하는  같다. 자칫 버릇없어 보이는 딸의 말버릇에 대해서도 아빠는 관대하다. 아주 가끔 존댓말까지는 아니어도 어른들에게 말할 때는 예의 바르게(그렇게 보이도록) 가르치고, 어른 앞에서는 삼가야  것을 가르쳐야 하나 고민할 때도 있다. 가령 어른들 앞에서는 편식하지 마라, 할아버지 밥그릇에 콩을 골라 놓는  예의 없는 행동이다, 할아버지 친구 이름 함부로 부르는  아니다 등등. 그런데 아직까지는 일일이 교정하기보다는 그냥 두고 보는 편이다. 일단 웬만한 것은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스스로 교정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딸이 할아버지에게 말을 편하게 해도 예의와 존중이 없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엇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고 싶지 않다. 조심해야 할 것이 많아지면 할아버지를 어려워하고,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버릇없이 말하는 것보다 더 싫다. 지금처럼 할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냈으면 좋겠다. 딸이 아빠와 말 상대가 되어주면 나는 너무 편하고 기분 좋고, 아빠도 그럴 것이다. 남이 보면 좀 버릇없다고 생각할 테지만 뭐 어때, 그냥 막돼먹은 집안으로 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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