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고 싶지 않아서
콩밥을 했다. 나도 콩을 싫어하고, 딸도 싫어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좋아하고 아빠가 매일 아침 밭에서 콩을 가져오니 먹어야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걸 딸에게 강요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딸 밥그릇에 콩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서 밥을 펐다.
어, 콩 나왔다.
조심해서 밥 펐는데 들어갔나 보네.
할아버지 콩 좋아하지? 내 콩도 먹어줘.
딸아 아빠 밥그릇에 콩을 골라 놓는다. 할아버지도 콩 먹으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었으면 좋겠나 보다.
콩을 왜 안 먹어? 맛있는데.
콩 맛없어. 엄마도 안 먹잖아.
학교 급식에 콩밥 안 나와?
뭐, 가끔 나오지.
그럼 그때도 콩 골라내고 안 먹어?
아니야, 그땐 꿀꺽 삼켜.
희철이가 보리밥을 안 먹어. 보리밥 집에 간다고 하면 자긴 보리밥 안 먹는다고 안 가.
누구 희철 씨? 희철 씨가 누군데?
아빠와 눈 감고 앉아있던 엄마가 동시에 웃는다. 손녀가 할아버지 친구 이름을 자기 친구처럼 부르는 게 웃겼나 보다.
할아버지 친구 있어. 저기 강제리 사는.
어, 저는 여기 사람이 아니라서요. 그렇게 말하시면 저는 모르죠. 그런데 일단 거기에 희철 씨가 있다고 치고, 희철 씨는 왜 보리밥을 안 먹는데? 맛이 없어서 안 먹는 거야? 아니면 어릴 때 너무 많이 먹어서 질려서 안 먹는 거야?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 이 할아버지 보게? 할아버지가 말을 꺼냈잖아. 그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귀한 아들이라 어릴 때 쌀밥만 먹었대. 그래서 보리밥을 안 먹어봐서 안 먹는대.
그래, 그렇게 말하면 되지 왜 모른 척 해유? 어쨌든 어른 중에도 잡곡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콩 안 먹어도 이해한다,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대답 없음)
우리를 키울 때도 그랬듯이 아빠(+엄마)는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없어서 딸이 할아버지를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자칫 버릇없어 보이는 딸의 말버릇에 대해서도 아빠는 관대하다. 아주 가끔 존댓말까지는 아니어도 어른들에게 말할 때는 예의 바르게(그렇게 보이도록) 가르치고, 어른 앞에서는 삼가야 할 것을 가르쳐야 하나 고민할 때도 있다. 가령 어른들 앞에서는 편식하지 마라, 할아버지 밥그릇에 콩을 골라 놓는 건 예의 없는 행동이다, 할아버지 친구 이름 함부로 부르는 거 아니다 등등. 그런데 아직까지는 일일이 교정하기보다는 그냥 두고 보는 편이다. 일단 웬만한 것은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스스로 교정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딸이 할아버지에게 말을 편하게 해도 예의와 존중이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고 싶지 않다. 조심해야 할 것이 많아지면 할아버지를 어려워하고,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버릇없이 말하는 것보다 더 싫다. 지금처럼 할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냈으면 좋겠다. 딸이 아빠와 말 상대가 되어주면 나는 너무 편하고 기분 좋고, 아빠도 그럴 것이다. 남이 보면 좀 버릇없다고 생각할 테지만 뭐 어때, 그냥 막돼먹은 집안으로 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