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남매 인증 시간
그들이 온다. 누나를 만나러 동생들이 온다. 첫째 외삼촌은 돌아가셨고, 둘째부터 셋째, 막내까지 삼 형제는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가 시집오기 전까지 업어 키운 동생들이다.
엄마에겐 자식 같은 동생이지만 나는 거리감이 있다. 일단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살기도 했고, 자주 만나지 못하는 만큼 아무래도 정서적으로도 가깝게 느껴지는 존재는 아니다. 나 살기 바쁘다고 외가 경조사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엄마도 나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아빠랑 둘이서 조용히 외가 경조사를 다니곤 했다.
사실 가깝거나 멀거나 손님은 손님이다. 집으로 손님을 맞는 일은 어려운 일이어서 며칠 전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하필 온다는 때기 김장 때였고, 김장 끝나고 오시면 좋겠다고 전했으나 삼형제가 맞는 일정이 그날뿐이라고 하니 더 말릴 수가 없었다. 오시면 엄마랑 말이라도 한마디 나눌 수 있으면 좋은데 요즘 엄마의 컨디션으로 봐서는 어려울 것 같은
것도 신경 쓰였고 또 멀리서 오시면 따뜻한 밥은 한 끼 차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반찬 생각에 마음이 분주했다. 일단 아픈 엄마를 간병하고 있으니 반찬 가지고 뭐라 하시지는 않을 테니 잘 차려내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기로 했다. 그래도 역시나 부담스러웠다.
봄보다 안 좋아진 엄마를 보고 마음들이 착잡해진 외삼촌들이 엄마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번갈아 가며 엄마 손만 만지작거렸다. 엄마가 기운이 없고 말을 못 하니 누구의 말도 이어지지 못하고 자꾸 끊어졌다. 게다가 하루에 세 마디 한다는 경상도 남자들이다. 형제 지간에 만나면 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유머도 구사하던 엄마가 말을 못 하니 서로 멀뚱거리기만 했다. 고요함을 참지 못한 둘째 외삼촌이 얼굴 봤으니까 됐다, 가자고 하고 막내 외삼촌은 오랜만에 왔는데 좀 더 있다 가자고 했다. 심심해진 둘째 외삼촌이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논에서 일하다가 아버지, 그러니까 나에게는 외할아버지에게 대들었다가 외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볏짚단으로 외삼촌 뒤통수를 후려갈겼고, 골 때기(사투리인 거 같은데 대체어가 생각 안 남)가 나서... 그때였다. 한 마디도 안(못)하고 있던 엄마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 동생이 맞아서 아프다는데 그게 웃겨? 누나가 뭐 이래…
내 말에 엄마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웃었고 동생들도 엄마를 보고 따라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나도 좀 알 것 같다. 둘째 외삼촌과 엄마는 외모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하고 처지도 비슷했다. 둘은 집안에서 제일 똑똑한데 외할아버지가 농사일 시키느라고 학교도 못 가게 했다. 마음속에 그 원망이 응어리져 있고, 그 응어리가 지금 이렇게 웃음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형제지간이란 무엇인가, 왜 만나면 못 살고 힘들고 슬픈 기억을 꺼내게 되는가. 우리 남매도 나중에 지금 엄마를 간병하는 이 시간을 두고두고 기억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