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달라는 말이 중요한 이유
엄마의 간병인으로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은 엄마를 씻기는 일이다. 엄마가 혼자 씻을 수 없게 되면서 엄마를 씻기는 일은 자연스럽게 딸인 나의 몫이 되었다. 누가 봐도 딸인 내가 엄마를 씻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딸인 나조차 엄마를 씻기는 일이 점점 버거워졌다. 엄마의 몸에 강직이 점점 심해지면서 한 손으로 엄마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엄마를 씻는 일을 동시에 하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에게 가기 싫어졌다. 예전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 하고 달려갔지만 이제는 일어나고도 침대에서 한참을 빈둥거리다가 억지로 간다. 내 방에서 엄마 방까지 그 길이 천리만리길이라도 되듯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고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래도 가야 하니까 가긴 갔다. 엄마를 보면 한숨부터 나왔다. 그래도 해야 하니까 하긴 했다. 하지만 점점 손목에 무리가 생기고, 발목이 아파왔다. 장비가 늘어났다. 허리 보호대에 이어 손목 보호대, 발목 보호대까지 착용한다. 이제는 전장에 나가기라도 하듯이 무장을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간다.
그렇게 힘든데도 아빠에게 또는 주말에 와 있는 동생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차마 못 했다. 욕실에 둘이 함께 들어가면 비좁기도 하거니와 아무리 가족이라도 성별이 다른 둘이 씻기는 일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색하느니 조금 힘들어도 혼자 씻긴다는 생각이 강했던 탓이다. 손목에 보호대를 하고 끝나면 보란듯이 파스를 붙이고, 한숨도 짜증도 늘어갔지만 아빠는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를 욕실에 데려가서 목욕의자에 앉혀놓고는 나가서 아빠는 신문을 봤다. 아빠가 신문 보는 시간을 확보해주고 싶었지만 내 의지와 달리 아빠의 신문 넘기는 소리는 나를 점점 자극했다. 그리고 아빠가 미워졌다. 몸이 아픈 것에 욕실 안에서는 혼자라는 외로움과 내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서러움까지 겹쳐졌다. 속에서는 욕이 올라왔고 엄마를 다루는 손길이 점점 거칠어졌다. 이러다가 엄마를 학대할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이미 나의 거친 손길이 엄마를 학대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내 속의 악마가 자꾸 튀어나왔고, 악몽도 꾸었다. 엄마와 나 둘 다 위험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빈 속에 하면 허기져서 힘들까 봐 엄마를 씻기기 전에 든든하게 먹어보기도 했고, 혹시 달달함이 나를 달래줄까 싶어서 입안에 사탕을 물고도 해보았고, 음악이 나를 부드럽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음악을 틀어놓고도 해보았다. 심호흡, 복식호흡, 마인드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다. 잠시 효과가 있는 듯도 했으나 잠시 뿐이었다. 이것이 본질이 아니었다. 이제는 혼자 할 수 없고 도움이 필요했다. 짜증과 화가 극에 달했을 때, 아빠에게 고백했다. 이제 나 혼자 씻기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엄마 씻길 때 나를 도와줘야 한다고.
오늘부터 아빠는 내가 엄마를 씻길 때 잡아주고 엄마의 몸을 함께 씻긴다. 내가 엄마 양치를 하는 동안 아빠는 족욕 물을 받아 엄마 몸을 담가준다. 내가 어마 몸을 닦는 동안 아빠는 발을 닦아준다. 옷을 함께 입히고 함께 일으켜세워서 데리고 나온다. 오랜만에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동안의 짜증과 분노는 눈 녹듯 사라졌다.
도와달라는 말은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왜 악마에게 쫓기고 악몽을 꾸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도와달라는 말이 습관이 안 된 탓이다. 간병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니라. 육아나 간병과 같은 돌봄에서 독박은 외롭고 힘든 것을 넘어 위험하다. 함께 해야 한다. 나처럼 도와줄 가족이 옆에 있다면 당연히 도와달라고 해야 하고, 도와줄 가족이 없다면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주위에 혼자 돌봄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려야 한다. 괜찮아 보여도, 괜찮다고 해도 혼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