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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시 Oct 03. 2023

내가 '일코해제'를 무릅쓰고 만화 에세이를 쓰는 이유

<더 퍼스트 슬램덩크>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망했다’는 것을 느꼈다. 자는 동안 꼭 누가 밟고 지나간 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렸고 사지에 힘이 영 안 들어갔다. 삐질삐질 땀은 나는데 으슬으슬 추워서 몸이 덜덜 떨렸다. 이 정도면 너무나 분명히 '몸살 당첨'이었다. 전날부터 불안 불안하더라니.     


하지만 오후엔 몸살이어도 절대 취소할 수 없는 스케줄이 잡혀있었다. 바로, 천안 영화관에서 하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응원 상영'(영화 관람 중에 자유롭게 소리 지르며 응원할 수 있는 이벤트성 영화 상영)이었다. 나는 오후 한 시의 '송태섭관'과 오후 네 시의 '정대만관'을 예매해둔 상태였다.(관마다 캐릭터 이름을 따로 부여했지만 팬 들은 상관하지 않고 등장인물 모두를 응원한다.) 천안 영화관에 한시 전에 도착하려면 집에서는 오전 아홉 시에 출발해야 했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가, 금방 털썩 누워버렸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눈물을 머금고 한 시 송태섭관의 예매를 취소했다.    

 

'흑흑, 태섭아 미안.. 오전 푹 쉬고 회복해서 오후 대만이관만큼은 꼭 갈게!'          




올해 1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했다. 20여 년 전 연재되었던 스포츠만화 ‘슬램덩크’의 극장판이다.

나는 1월부터 4월까지, 약 세 달간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미쳐 살았다. 영화표 값이 기본 만 오천 원을 웃도는 요즘 시대에 같은 영화를 자막판 더빙판을 번갈아 가며 7차 관람을 찍고, 극장판을 기념하여 새로 발매된 20권짜리 슬램덩크 ‘신장재편판’을 구매하여 정주행 하고, 하루 종일 ‘슬램덩크’를 검색하며 사람들의 관람 후기와 분석 글을 샅샅이 찾아 읽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응원 상영'이라는 오타쿠를 위한 신식 문화를 접하기 위해 한껏 기대를 품고 천안(충청도에서 응원 상영을 하는 곳은 천안이 유일했다.)으로 향할 참이었다. 그런데 하필 당일 몸살에 걸려 버렸다.    

 

몸살이 단단히 난 건지, 두어 시간 쉬어도 몸 상태가 영 나아지지 않았지만 나는 12시가 되자마자 부리나케 일어났다. 응원 상영은 이벤트성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영화관은 차로 직접 가면 한 시간도 안 걸릴 거리였지만, 천안까지 바로 가는 직통버스가 없어서 두 시간 넘게 빙빙 도는 시외버스로 겨우 천안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고 나니 도저히 큰 소리를 낼만큼의 기운이 없어서 기껏 일부러 온 이유인 ‘응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말 오후, 바글바글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일행도 없이 혼자 서있으려니 슬슬 후회되기 시작했다. 영화 시작 전 불 꺼진 극장 안에서 생각했다. 나는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짓을 하고 있지? 

그리고 그때, 영화가 시작됐다.     



둥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     


오프닝 ost의 베이스기타 소리, 슥삭슥삭 날카로운 스케치 소리, 빠르고 거친 선들로 완성되어 한 명 한 명 앞으로 걸어 나오는 주인공들, 마구 쏟아지는 함성과 박수 소리.     


‘아니야, 진짜 진짜 오길 잘했어!’     



사람들이 폭포같이 쏟아내던 함성에 왜 내 가슴이 뛰고 내가 뿌듯해지던지. 신난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 입 꾹 닫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이 장면에서는 꼭 소리를 지르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순간마다 다른 사람들이 열렬히 소리쳐줘서 대리만족이 됐다. 말로만 듣던 ‘응원 상영’을 나도 드디어 겪어봤다는 성취감도 충만했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극장 안에 있었던 그 많은 사람이 나와 똑같은 열정으로 이 만화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것은 정말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힘들었어도, 무모했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덕분에, 나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했다. 낮에는 퇴근 후 집에 돌아가 만화책을 볼 생각에 설렜고, 주중엔 주말에 영화관 가서 극장판을 볼 생각으로 들떴다. 세 달간 ‘슬램덩크’는 내 삶의 ‘낙’이었다. 그동안 취직하고 먹고사느라 바빠 덮어놓고 살았던 내 정체성이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오타쿠’다.     


‘오타쿠’란 한 분야에 심취한 마니아, 또는 전문가를 이른다. 지금은 이 단어가 적용되는 분야의 범위가 다양해지고 그 뜻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지만, 처음 단어가 생겨나 유행했을 적에는 훨씬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다.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중심으로 일본 문화에 심취한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

사실 나는 그 처음의 의미에 들어맞는 오타쿠다.     


‘오타쿠’는 보통 혐오의 표적이 됐다. 오타쿠 본인들도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숨기는 분위기여서 대부분 ‘일코’를 한다. 일코는 '일반인 코스프레'의 줄임말로, 오타쿠가 아니라 일반인인 척한다는 뜻이다.     


만화에 대해서 에세이를 쓰는 것은 ‘일코해제’를 하는 행위다. 나는 에세이를 쓰기로 결심하고 나서 그 주제를 ‘만화’로 정하기까지 꽤 긴 시간을 고민했다. 

그 고민의 이유가 ‘오타쿠’인 것을 밝히기 부끄러워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일코해제’를 하기에 좀 더 ‘제대로 된’, 더 ‘딥(deep)한’ 오타쿠가 아닌 것이 부끄러워서였다.     


나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 치고, 읽은 만화책의 권수가 적은 편이다. ‘명작’이라 불리는 유명한 만화 중에 안 읽어 본 것들이 수두룩했다. 읽은 만화들도 좋아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만화의 대사라든지 디테일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니 만화에 대해 엄청 잘 아는 척, 대단히 심취한 척 책을 쓰기에는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 정도도 못 되는 애송이라 하겠다.     


웬만큼 유명한 만화는 안 읽어 본 게 없고, 만화 대사까지 줄줄 꿰는 엄청난 오타쿠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확고한 취향과 고집이 있고, 그 분야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전문적인 식견이 있고, 실질적인 이득 없이도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 있는 순수한 열정도 있으며, 한번 시작하면 제대로 끝장을 보는 집요함이 있는 사람들. 취향도 흐릿하고 끈기도 부족해 영 밋밋한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진짜’인.     


그런 ‘진짜’들이 내 글을 읽고 비웃거나, 만화에 대한 묘사나 해석이 틀렸다고 지적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다. 또, 그것뿐 아니라 내가 목차 열다섯 꼭지, 책 한 권 분량을 채울 만큼의 만화에 대한 에피소드와 지식이 충분할지도 자신이 없었다.

과연 내가 ‘만화’를 주제로 글을 써도 될까?     


      

“에세이는 너 정도만 좋아하는 사람이 쓰면 안 되는 거야? 나는 너무 전문적인 사람이 쓴 것보단 ‘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 쓴 에세이가 더 읽고 싶을 것 같아. 그게 더 공감이 잘될 것 같아.”  

   

내 고민을 들은 친구 J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툭, 단칼에 해결해 주었다.  

그렇네, 나는 논문을 쓰려는 게 아닌데! 에세이는 나 정도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당장 지금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고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은 만화인데, 만화 말고 다른 주제로 글을 쓰겠다는 것도 웃긴 노릇이다. 나는 J의 한마디 덕분에 먹구름이 개인 것처럼 기분이 말끔해졌다. 갑자기 자신감이 생기고 힘이 솟았다.


나는 ‘만화’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솔직히, 이미 7번이나 본 영화를 또 보자고 몸살 난 몸으로 천안까지 가는 사람이 '적당한' 오타쿠인지도 잘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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