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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시 May 20. 2023

방석을 겹쳐 깔고 누워 잠들던 밤들과 엄마

<그린빌에서 만나요>


참 이상한 만화가 있다. 이렇다 할 사건도 갈등도 없고 내내 주인공의 내면만 보여주는 심심한 만화. 온도에 비유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미적지근하다. 만화의 ‘드라마’적인 측면에서 화려하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 만화를 처음 읽은 날, 나는 이 만화를 바로 내 인생만화에 등극시켰다. 유시진 작가의 [그린빌에서 만나요]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사이언, 사이비 남매가 그린빌에 이사 오면서 시작된다. 그들의 윗집엔 주인공 김도윤이 산다. 이언과 이비는 인간의 미각과 시각을 빼앗아 먹고사는 외계인이고 다음 먹이로 김도윤을 노린다. 부모의 이혼으로 사랑을 불신하게 된 고독한 소년 도윤은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외계인 남매에게 점점 마음의 문을 연다.

 


이 만화를 읽을 당시, 우리 가족은 투룸 월세방에 살았다. 가족 네 명이 누우면 꽉 차버리는 좁은 방이었다. 그 옆 건물 1층은 엄마의 식당이었다. 우리 집은 원래 아버지 외벌이였는데,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부터 엄마가 칼국수 식당을 개업해 맞벌이가 되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시기 우리 집 형편이 굉장히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이런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우리 부모님은 아주 과묵하신 분들이었고, 나는 사춘기답게 내 일 외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물욕이 없는 우리 남매는 딱히 생활에서 불편함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이 좁아졌다는 사실은 우리 남매보다 오히려 엄마를 더 힘들게 했다. 종종 엄마는 장사를 마치면 집이 답답하다며 나에게 오늘은 가게에서 자고 가자고 했다. 그런 날 우리 모녀는 문 닫은 식당에서 방석을 겹쳐 깔고 누워 잠들었다. 사실 나는 그 시간을 좀 기다렸다.

 


김도윤을 잡아먹기 위한 외계인 남매의 음모와 술수로 진행될 것 같았던 이야기는 의외로 도윤의 트라우마 극복에 포커스를 맞춰 진행된다. 도윤은 엄마에게 적절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서 타인과 관계가 깊어지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트라우마가 있다. 도윤은 외계인 남매에게 엄마로 인한 상처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고백한다. 외계인 남매는 특별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저 도윤의 사연을 들어줄 뿐이다.

 

도윤의 엄마는 자식에게 기대를 걸지 않는 사람이었다. 도윤이 맘에 들지 않으면 엄마는 아예 관심을 끄고 도윤을 없는 사람처럼 무시했다. 그래서 도윤은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애정과 관심을 포기하고, 받지도 주지도 않는 아이로 자라난다. 자신은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우리 엄마는 누가 봐도 모성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자식들을 유난스러울 정도로 챙기는 ‘극성맘’이었다. 아빠는 엄마를 두고 ‘자식에게 절절매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나는 별로 내가 엄마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무언가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엄마가 우리 남매를 위해 굉장히 애쓰신다는 것은 알았다. 나쁜 엄마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다 알지만, 엄마에 대한 내 마음속 골은 계속 깊어 가고 있었다. 나조차도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고,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이언, 이비 남매를 만난 뒤 도윤은 자신의 마음을 진지하게 마주한다. 아주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적나라한 마음을 표현한다. 도윤은 계속 생각을 거듭하며 스스로 치유하고, 깨달음을 얻고, 성장한다.

그뿐이다. 도윤은 엄마에게 찾아가 따지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싸우고 화해하고 사과를 받아내고 용서를 하는, 그런 과정이 이 만화에는 없다. 만화는 그저 흘러가는 도윤의 생각들을 계속 보여주기만 한다.

 

이 만화는 그것만으로 위로를 준다. 도윤의 입을 빌려 마음속에 정리되지 않은 우울한 마음들을 아주 명확한 표현으로 늘어놓은 것만으로. ‘내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이런 부분이 아팠던 거구나.’ 깨닫게 하고,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이런 기분을 느끼는구나.’ 짐작하게 하는 것만으로.

 


이 만화는 나에게 이런 식으로 위로를 줬다.

내가 엄마에게 서운했던 건 사람마다 각자 '표현하는 방식'과 '원하는 방식'이 다른 탓이었다. 엄마와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너무나 달라서, 엄마의 사랑은 내게 간섭이기도 하고 때로는 폭력이기도 했다. 그걸 나는 아주 서서히 깨달았다.

 


문 닫은 식당에서 함께 잠들던 엄마는 평소와 달랐다. 많이 지쳐서 기운이 없는 것 같기도 했고, 맞벌이가 되면서 전만큼 많이 신경 써주지 못한다는 것에 부채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엄마는 식당에서 보내는 그 하룻밤만큼은 평가도 비교도 꾸짖음도 없이 가만히 내 얘기를 들어주셨다. 그 순간의 나는 어떤 얘기든 다 할 수 있었다. 둘이서 한참을 얘기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들곤 했다.

나를 부정하지 않는 엄마와 안온한 상태에서 그저 오래오래 시간을 보내는 것, 내가 원하던 애정의 방식이었다. 싸움이나 화해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오직 그 시간이면 충분했다.

 


이야기의 끝에, 외계인 남매는 도윤을 잡아먹는 것을 포기하고 허무하게 사라진다. 도윤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를 너무 사랑하게 되어 차마 그 무엇도 뺏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라지기 전, 그들은 너도 우리를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바로 대답할 수 없었던 도윤은 오랜 고민과 망설임 끝에서야 고백한다. ‘사랑한다’고.

 

이 잔잔한 만화 속 유일한 변화다. 사랑을 믿지 않는 소년이 사랑을 말하게 된 것.

사랑을 믿게 된 소년은 단단해진다. 정들었던 외계인 남매가 갑자기 사라져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좌절하지 않고 담담히 일상을 살아내며 언젠가 그들이 다시 돌아오길 기다린다. 기다리는 도윤의 모습으로 만화는 끝이 난다.

 


엄마와 나눴던 이야기들은 지금 와선 그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에 별 대단한 내용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대로 기억나는 것들은 고작 이런 감각들이다. 방석을 깔아도 등허리와 엉덩이에 딱딱히 배기던 타일의 감촉, 바닥은 따뜻해도 공기는 차가워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속이 시큰하던 느낌, 그리고 쥐가 갉아먹어 피복이 벗겨진 전선에서 튄 스파크 때문에 소스라치며 잠 속에서 끌려 나오던 기분. 하지만 그럼에도 만족스러웠던 그때의 기분만은 뚜렷하다. 오롯이 엄마와 나만 함께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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