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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아 Apr 22. 2024

느리고 깊게, 천천히 숨쉬기

호흡하는 식물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오늘의 기분'을 살핀다. 우울함은 어느 정도인지, 불안감은 얼마나 느끼는지 스스로 묻고 답한다. 꽤 건강한 마음 챙김처럼 보이지만 내 사용법은 어딘가 삐뚤어 있다. 전날에 비해 나아진 게 없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면 기분이 팍 상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분명 컨디션 좋았는데 오늘 갑자기 왜 이래?" 조급해진 나는 기운을 끌어올리기 위해 충동적으로 선택하고 움직인다. 이유 없이 기분이 나쁘면 깊은 수렁에 빠졌던 지난날이 슬며시 떠오르고. 손바닥 뒤집듯이 순식간에 그날로 돌아갈까 봐 불안에 떤다.


  우울증을 겪으면서 시도 때도 없이 한숨을 쉬는 게 버릇이 되었다. 땅이 꺼질세라 크게 쉬는 건 아니고 남들이 모를 만큼 빠르고 짧게 내뱉는다. 긴장해서, 미래가 두려워서, 하루가 너무 길어서,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아서, 숨 쉬는 게 벅차서 같은 이유들 때문에. 이런 습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병원 진료를 볼 때 내 상태를 설명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한숨을 느리고 깊게, 천천히 쉬어 보라고 말했다. 그러면 그게 심호흡이 된다고. 한숨과 심호흡은 한 끗 차이였다. 우리는 숨을 잘 쉬는 것만으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조절할 수 있다!




  얼마 전, 엄마가 덥석 새끼 선인장을 내밀었다. 가시 없이 매끈하고 미역처럼 구불구불 생긴 그것('피쉬본')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아주 작은 식물이었다.

"이걸 어떻게 키워."

"한번 키워 봐. 조금씩 자라는 거 보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아니?"

나는 엉겁결에 화분을 들고 집에 돌아왔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흙속에 실처럼 얇은 뿌리를 내리고 우뚝 서 있는 모양이 묘하게 용기를 주었다. 가만 보자,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곳이 어디더라.


  식물에 관심이 생기니 주변의 꽃집들이 눈에 띄었다. 가게를 기웃거리며 꽃구경을 많이 했다. 그러다 내가 돌보고 싶은 식물이 있으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차곡차곡 식물 식구가 늘어나는 만큼 책임감이 커졌다. 식물마다 생장 계절, 일조량, 물 주기, 분갈이 시기가 달라서 소홀히 관리했다가는 모두 초록별(식물이 죽어서 가는 곳)로 떠나고 말 것이다.


  잭과 콩나무도 아니고 하룻밤만에 식물이 자랄 리 없는데 혼자 발을 동동 굴린다. 워낙 성장 변화가 없으니 이쯤 되면 조화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식물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잎을 살짝 구부려 본다. 이파리가 툭 부러질 거 같지만 팽팽하게 버티는 게 느껴진다. 기분 좋은 힘이다. 다행히 내가 널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리고 있구나.


  식물은 몸으로 말한다. 잎이 축 늘어지거나 쪼글쪼글하면 물이 부족한 것이고, 누렇게 뜨면 물을 너무 많이 준 것이다. 잎이 윤기 나고 색이 선명해지려면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 꽃이 피고 시들면 꽃대를 잘라주고 또다시 피어오를 꽃을 기대하면 된다.


  식물은 호흡하는 생물이다. 환기가 잘 되는 곳이라야 축축한 토양을 적당히 말려 뿌리의 통풍을 돕고 이산화탄소 농도와 습도가 적절히 유지된다. 물도 빛도 중요하지만 주기적으로 바람을 맞아야 건강하게 산다.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똑같을지라도. 내일도 오늘과 비슷할 테지만. 그런 날이 모여서 꽃망울이 차츰 여물고 새순을 밀어 올려 반짝이는 잎을 펼치는 것일 테다.


  손을 내밀어 공기의 움직임을 느껴본다. 간질간질하고 부드러운 감각 때문에 마음이 들뜬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잎사귀처럼. 어느 날은 비가 내려 햇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어떤 날은 땡볕 아래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도 느긋하고 침착하게. 그래,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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