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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n Chang Sep 14. 2021

유록스가 대체 뭐길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나?

커뮤니케이션과 정보량

시원한 옷차림의 늘씬한 치어리더들이 15초간 신나게 춤을 추며 하나의 단어만을 주문 외우듯 노래합니다. 배경은 세차장 같기도 하고 자동차들이 서 있기도 하니 무언가 자동차와 관련된 상품일 것 같긴 하지만, 대체 뭘 팔려는지, 그게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 물건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란한 춤사위를 정신 놓고 쳐다보고 있으면, 어느샌가 마음속 깊이 하나의 단어가 자리 잡습니다. 무엇에 쓰는 건지 언제 어떻게 쓰이는 것인지 알지도 못하는 그 이름, ‘유록스’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광고는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상품에 관한 설명을 하거나 좋은 점을 알리기보다는 브랜드명만을 줄창 주문처럼 외워대는 광고들이지요. 잠깐만 생각해봐도 온몸에 타이어를 휘감고 ‘타이어 픽!’만 주구장창 외쳐대는 광고나, 괴상한 춤을 추며 ‘헤이, 딜러’만 신나게 찾아대는 아저씨가 금세 떠오릅니다. 상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좋은지를 알아야 사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 이 회사들은 왜 주문처럼 브랜드명만 쉴 새 없이 외치고 있는 것일까요? 세상에는 눈물을 뚝뚝 흘리게 하는 감동적인 광고들도 많이 있는데 말입니다. 혹시라도 실력 없는 마케터들의 엉성한 첫 작품인 것일까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치어리더들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으니 좋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친숙한 브랜드를 선택하는 저관여 상품 시장

물론 이런 광고는 브랜드의 인지도를 극적으로 높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브랜드명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소비자에게 자사의 브랜드를 각인시키고자 하는 것이지요. 브랜드 인지도라는 것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회사라면 어느 회사에게나 중요하겠지만, 특히 브랜드를 주문처럼 외워댈 정도로 중요한 회사들이 있으니, 바로 저관여 상품을 판매하는 회사들입니다. 저관여 상품이란 소비자가 상품 구매 결정을 내릴 때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 상품들을 이야기합니다. 유록스의 예로 돌아가보면, 디젤차에 사용되는 '요소수'라는 상품 자체가 이미 소비자에게는 매우 생소한 상품입니다. 게다가 어느 요소수가 좋은 요소수인지를 알아보려면 화학 전공이라도 해야 이해할 법한 복잡하기 짝이 없는 정보들을 습득하여야 하지요. 문제는 이러한 노력을 들여서 어떤 요소수가 좋은지 알아냈다 하더라도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것입니다. 요소수 때문에 차의 성능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체감하기도 힘들 뿐더러, 싸고 좋은 요소수를 알아냈다 한들 가격차이는 논문이라도 읽은 듯한 공부 내용에 비교하면 미미하기 짝이 없지요. 즉, 소비자로서는 요소수가 필요하긴 하지만 불량품이 아닌 이상 A사의 요소수와 B사의 요소수를 특별히 구분해서 구매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셈입니다. 이럴 때 특정 상품을 구매하는 강력한 구매 결정의 이유로 작용하는 것이 가격, 상품의 구비 여부, 전문가(요소수 판매상)의 조언,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숙한 브랜드’인 것이지요. 유록스가 다른 요소수보다 좋은지 어떤지 알지 못하더라도, 들어본 적 있는 브랜드가 주는 친숙감과 TV에 광고를 하는 브랜드라는 신뢰도를 바탕으로 경쟁 상품보다는 유록스를 구매하게 되는 것입니다. 늘씬한 치어리더들이 유록스를 주구장창 외쳐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소비자가 필요한 가장 중요한 정보만을 전달하라

사실 이렇게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만을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광고 전술입니다. 앞서 예로 든 ‘타이어 픽’도 유록스와 비슷한 예이지요. 소비자에게 타이어 취급점이라는 것은 단순히 타이어를 바꾸어주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딱히 독점적으로 판매를 하고 있는 타이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제조사에서 나온 같은 상품을 취급하는 점포들이니 어떤 타이어 취급점이건 그저 가깝거나 싼 것이 가장 중요한 선택의 이유가 되겠지요. 타이어 픽 광고는 바로 ‘저렴한 가격은 타이어 픽입니다’라는 메시지를 계속적으로 강조하여, 고객들이 타이어 교환 점포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와 브랜드를 같이 연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언젠가 타이어를 바꿀 필요가 생겼을 때 '아, 타이어 픽이 싸다고 했지!' 하며 타이어 픽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면 성공한 광고가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당연히 짧고 간결한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15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가지 메시지를 한꺼번에 집어넣으며 소비자가 그것을 다 기억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지요. 메시지를 쉽게 기억하게 하기 위해 보통은 재미있고 중독성 있는 징글송이 따라붙고, 흥미를 끌기 위해 화려한 영상이 준비되는 것도 이러한 광고들의 특성입니다. 메시지가 아주 짧고 간결하기 때문에 이러한 여러 가지 장치를 활용하더라도 정확하게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지요.


창조, 추억, 순수, 어린이, 즐거움, 꿈…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지만, 사실 좋은 커뮤니케이션에는 아무런 말이 필요 없을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커뮤니케이션 내의 정보량입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하는 주된 이유는 대부분 정보의 부족이 아닌 과다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마케터들은 자신의 상품을 사랑하고, 그 상품의 장점을 되도록 자세히 고객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냉정하기 그지없는 소비자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광고를 정성스레 보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만약 유록스 마케터가 과학적 증거를 동원해 자사 상품의 우월성을 이야기했다면 소비자가 유록스를 기억할 수 있었을까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의도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반드시 많은 정보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한 메시지만을 골라 명확하게 전달해야만 고객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이 만들고 있는 광고, 혹은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어떤 정보가 소비자에게 전달되면 그 목적이 달성됩니까? 여러분들이 원하는 소비자의 행동 변화는 무엇입니까? 마케터의 일은 상품의 장점을 400자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목적한 소비자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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