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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n Chang Sep 28. 2021

커피를 구독(購讀) 한다고?

구독 경제와 소비자 행동

어느샌가 우리가 늘 쓰던 단어의 뜻이 희한하게 바뀌었습니다. ‘구독’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전에 정의된 그대로 ‘(신문이나 잡지 따위를 정기적으로) 사서 읽다’라는 뜻이었지요. 하지만 요즘에는 커피도, 꽃도, 화장품, 건강식품, 이유식까지 모든 걸 ‘사서 읽어’ 대고 있으니 곧 ‘샐러드 어떤 거 먹어?’라는 말 대신 ‘샐러드 뭐 구독해?’라는 말이 더욱 익숙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천 년도 넘게 사용된 ‘읽을 독(讀)’이라는 한자의 뜻까지 바꿔버린 유행, 바로 구독(Subscription)입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구독이라는 말은 신문이나 잡지, 잘해봐야 우유 정도에나 통용되는 말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최근 ‘구독 경제’ 붐을 타고 늘어난 다양한 구독 서비스는 마치 시대를 앞서가는 새로운 사업모델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통칭 ‘구독’이라고 부르는 이 사업 모델은, 사실 정기적으로 일정 대금을 지불하기로 약속하고 상품 혹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꽤나 전통적인 모델입니다. 전화 혹은 휴대폰 같은 통신 서비스, 자동차 리스나 장기 렌트, 피트니스 센터 등, 잘 생각해 보면 이러한 사업모델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단지 최근의 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결재 수단 및 물류 체계 발달에 힘입어 여러 가지 제한사항이 없어지며, 이 모델이 적용될 수 있는 상품군이 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해진 것이지요. 이러한 발전 덕택에 우리는 이제 커피를 집에서 쉽게 구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0년 전 사람들이 이 광고를 본다면 외국계 기업의 잘못된 한국어 사용 예로 유머 게시판에 퍼 나를지도 모를 일입니다.


소비자에게서 생각할 기회를 빼앗으라

그렇다면 대체 왜 수많은 회사들이 앞다투어 이런 구독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모델이 딱히 기존에 없었던 신박한 사업모델도 아닌데 말입니다. 게다가 구독을 하면 추가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배송비를 할인 해주기까지 하니, 비용이 더 들어갈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어차피 살 사람은 자기가 나가서 똑같은 물건을 제 손으로 사 올 것인데, 왜 추가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소비자를 구독으로 끌어들이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수요 예측의 용이성, 안정적인 매출 예측, 이로 인한 재무 리스크의 최소화 등, 회사의 입장에서 구독 모델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마케팅의 관점에서 구독 모델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소비자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케팅의 한 분야인 소비자 행동이론에서 자주 소개되는 소비자 행동모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커스토머 저니(Customer Journey)라고도 많이 불리는 이 모델은, 소비자가 상품을 인지하고 구매에 이르기까지의 행동방식을 분석하여 적절한 전략을 짜는데 도움을 주는 툴이지요. 회사 혹은 업계에 따라 다양한 모델이 존재하지만, 어느 모델이든 공통적인 목표는 구매 고려, 구매 결정, 실제 구매에 이르기까지의 소비자 행동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커피 좀 마실까?’라는 생각이 든 고객이 ‘그래, 마시자’라고 결정을 하고 실제로 커피를 살 때까지의 시간 및 과정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과정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소비자는 도중에 ‘아 커피 사러 가기 귀찮으니 커피 말고 편의점에서 녹차나 마셔야겠다’ 등의 생각을 하고 구매를 포기하게 됩니다. 구독 모델은 이러한 소비자의 행동모델을 극적으로 단축시킵니다. 즉,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매번 재구매를 할 때마다 ‘이번에는 다른 회사의 커피를 사볼까’, ‘요즘 너무 커피를 많이 마시니 좀 줄여볼까’하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었던 고객들이지만, 정기적으로 배송되어 오는 구독 상품 앞에서는 딴 생각을 품을 기회조차 없습니다.


잡은 물고기가 더 중요한 구독 경제

때문에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소비자가 절실하게 구독을 그만두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반드시 재구매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새로운 고객들을 불러올 수 있다면 성장이 가능한 다른 사업모델과는 달리, 구독 모델은 한 명의 기존 고객을 잃으면 반드시 한 명의 신규 고객을 얻어야만 같은 매출 규모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경우를 찾기 힘들 정도이지요.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TV 서비스(OTT)가 많은 투자를 하여 지속적으로 신규 콘텐츠를 추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존 고객들이 콘텐츠에 식상함을 느끼고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비즈니스에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구독 모델을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회사 중 하나가 엉뚱하게도 코스트코입니다. 코스트코의 사업 모델은 동종업계를 생각하면 쉽게 떠올리게 되는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의 다른 유통업체와는 달리 전형적인 구독 모델을 따르고 있지요. 코스트코의 주 수익은 상품 판매에서 나오는 유통 마진이 아닌 소비자, 즉 회원들이 매년 납부하고 있는 연회비입니다. 당연하게도 비즈니스 활동의 모든 포커스는 일반적인 유통회사처럼 ‘물건을 싸게 들여와 최대한 비싸게 많이 판매’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하면 내년에도 손님들이 탈퇴하지 않고 멤버십을 유지하게 할까’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 매력적인 상품 라인업, 훌륭한 퀄리티나 무조건적인 반품이 가능한 품질보증 등은 모두 고객들이 불만을 품지 않고 내년에도 멤버십을 갱신하게 하기 위한 장치들이지요. 코스트코에 방문해 본 경험이 있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코스트코의 매장 디자인은 일반적인 유통업체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 하나라도 물건을 더 팔기 위해 디자인된 매대를 갖추고 다양한 프로모션을 실시하는 일반 마트와는 달리, 코스트코는 창고처럼 물건을 쌓아둘 뿐 추가 판매에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회원 갱신이나 업그레이드에 대해서는 대단히 공격적으로 고객들을 모집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 역시 비즈니스의 목표가 바로 구독을 유지하게 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코스트코가 팔고 있는 상품은 저렴한 TV도 맛있는 와인도 아닌, 바로 이 네 장의 회원 카드입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구독이 되었든 아니면 평범한 구매가 되었든 어찌 보면 그다지 다를 일도 없는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결국 소비자가 필요한 것은 커피이고 그것을 어떻게 손에 넣든지 간에, 맛있는 커피만 마실 수 있다면 상관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마케터가 보는 구독 모델과 구매 모델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커피라도 판매 모델에 따라 소비자의 행동이 달라지고 우리의 비즈니스 목표가 달라지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커스토머 저니의 어떤 부분에서 어떤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야 하는지도 달라집니다. 지금 구매하고 소비될 커피도 중요하지만 다음 달에 배달될 커피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구독 경제의 도래는 우리가 단순히 상품을 잘 파는 마케터에 머물지 않고 고객을 더욱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케터가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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