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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n Chang Sep 07. 2021

한정판은 왜 무한정 나오는 걸까?

저관여 상품과 소비자 행동

늘 가던 편의점에서 무심코 집어 들던 음료수 병이 어느 날 갑자기 특이한 디자인으로 바뀌고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는 것을 한 번쯤은 보셨을 것입니다. 매일 같이 사던 상품이지만 왠지 새로운 느낌도 들고, ‘멋진 패키지인데 그냥 계속 이렇게 만들면 안 되나…’라고 생각해 본 적도 있겠지요. 비단 패키지뿐만이 아닙니다. 색다른 맛을 내놓거나 다양한 캐릭터와 콜라보를 하기도 하고, 사은품을 나눠주거나 한정판 아이템과 세트 판매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다채로운 한정판 상품들을 보고 있으면, ‘이게 다 물건 팔아보려는 상술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심코 하나씩 집어 들게 되지요.


특히, 옆 나라 일본은 ‘한정판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일 년 내내, 365일 쉴 새 없이 어딘가에서는 한정판 상품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계절, 특정 지역, 캐릭터 콜라보, 특이한 맛 등등 한정판을 내놓는 이유나 상품 장르도 다양하기 그지없지요. 한정판 출시가 가장 흔한 맥주 시장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매 계절마다 각 브랜드에서 계절 한정 상품을 출시합니다. 즉, 연중 어느 때나 슈퍼마켓을 찾아가면 적어도 서너 개 브랜드의 한정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자면, 프리미엄 몰츠와 아사히의 원래 버전(?)이 있고 가을 한정버전 프리미엄 몰츠와 아사히가 그 옆에 진열되어 있는 식입니다. 이 정도라면 사실 ‘한정판’이라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무한정 한정판을 출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게 다 물건을 팔아보려는 상술임은 분명하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렇게 특이한 상품을 만들어서 잠깐 동안만 팔고 만다면 비용이 상당할 것입니다. 원래 있는 상품을 더 잘 팔면 될 일이지 대체 왜 한정판을 출시하는 것일까요?


첫 수확한 보리라서, 슬슬 겨울이니까, 새로운 맛을 한번 개발해봐서 등 한정판을 내놓는 핑계마저도 매우 창의적이기 그지없습니다.


소비자의 습관을 깨부수고 생각하게 만들어라

물론 한정판을 만드는 업계도 자동차 회사에서부터 담배 회사까지 각양각색이다보니, 한정판을 만드는 이유나 전략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혹은 같은 회사, 같은 종류의 상품이라도 경우에 따라 한정판을 출시하는 전략이 다르기도 하지요. 정말 특이한 한정판을 만들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아 브랜드의 인지도 상승을 노리거나, 시장 테스트를 위하여 한정판이라는 포맷을 이용해 신상품을 출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전쟁이라고 할 만큼 한정판 출시가 자주 일어나는 업계는 대부분 소비자들이 ‘습관적인 구매’를 하고 있는 시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매일 아침 사 마시는 커피, 편의점에서 사는 담배, 퇴근길에 집어오는 캔맥주 같이 별 다른 고민 없이 늘 사던 상품을 집어 드는 소비자가 대부분인 업계이지요. 이런 상품군을 마케팅 용어로 ‘저관여 상품’이라고 칭합니다. 저관여 상품들은 대부분 가격이 저렴하고 상품 간의 기능적인 편차가 거의 없습니다. 즉, 이걸 사든 저걸 사든 소비자가 큰 손해를 볼 일은 거의 없고, 무엇이 됐든 그 상품 본연의 기능은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수행해내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상품들은 선택할 때는 가격, 소비자의 취향, 브랜드 등이 구매 결정 요인이 됩니다. 그리고 별 문제가 없는 이상, 보통 한 번 선택한 상품을 다음에도 다시 구매하게 되지요. 이 업계 마케터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여기서 생겨납니다. 소비자들이 경쟁사의 상품을 한 번 고르면 아무 생각 없이 계속 그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지요. 어차피 뭐가 됐든 별 상관도 없고 한번 써본 그 브랜드가 나쁘지도 않았으니 말입니다. 우리 상품을 써보고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억울하지는 않을 텐데, 투명인간처럼 바로 옆에 있는 상품임에도 거들떠보지조차 않고 늘 사는 것만 집어 드니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지요.


한정판으로 장군 멍군

그렇기 때문에 꺼내 드는 무기가 바로 한정판입니다. 지금 아니면 못 먹으니까, 가을도 돼가니 가을 기분을 만끽하라고, 혹은 좋아하는 캐릭터가 들어간 패키지니까. 이렇듯 희소성, 계절성, 타 브랜드와의 콜라보 등 시선을 끌기 좋은 소재를 들고 와서 소비자의 관심을 얻어보려 하는 것이지요. 앞서 말했듯 저관여 상품은 상품 선택에 실패하더라도 소비자가 지는 리스크가 크지 않습니다. 그저 맛없는 음료수 한 번 마시고 다시 안 사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이런 특이한 상품이 나오면 한번쯤 시험해 보려는 소비자들이 많아집니다. 습관이 깨지고 소비자들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몰랐던 상품을 알게 되고, 그 브랜드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며, 늘 이용하던 상품과 비교를 해보기도 합니다.


당연히 수비 쪽의 입장에서 보자면 상당히 불편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상품을 잘 사고 있던 고객들을 한정판이라는 미끼로 생각하게 만들어 다른 선택을 하게 유도하기 때문이지요. 자칫 잘못하면 우리 상품이 더 우수한데도 그저 처음 경험한 신선한 느낌이기 때문에 타사 상품으로 갈아타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당연히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안 되니 수비하는 입장에서도 고객이 새로운 것을 찾을 때, 이왕이면 우리 회사 상품을 사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도 역시 한정판은 아주 유효한 수단이 되겠지요.


겨울의 맛에 홀려 떠나간 고객들은 귀여운 캐릭터와 악세서리가 힘을 합치면 다시 돌아올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소비자가 무엇을 사든 잘 생각하여 상품을 고르고, 모든 회사들은 쓸데없는 한정판을 만드는 대신 늘 팔던 상품에 더욱 집중하면 이런 난리는 벌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은 중요하지 않은 판단에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도록 진화해 왔고, 그런 판단 메커니즘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을 이해한다면 한정판 전쟁은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겠지요. 어찌 되었든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마케터가 무슨 새로운 한정판을 들고 등장할까요? 매일매일 쇼핑몰로 향하는 발걸음이 흥겨움으로 가득 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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