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봉 어머니의 현대 버젼
책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7시부터 9시는 가족이 모여서 다같이 공부하는 시간으로 정했다.'
차분한 분위기 속 부모와 자녀가 책상에 모여 앉아 공부하는 분위기는 어떨까? 머리속으로 그려보았다. 물론 이미 성장한 어른이 학생처럼 앉아 책을 읽거나 쓰기를 하는 등 골똘히 머리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고역일 수도 있겠다. 안그래도 풀어야 할 복잡한 인생 문제와 집안일이 널렸는데 느긋하게 책상 앞에 앉을 여유가 있을런지 확신할 수도 없다. 특히 고된 직장생활을 하고 온 부모라면 쇼파에 편안히 앉아 TV 시청하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아이들이 공부를 한다고 책상에 앉아 있을 때, 엄마로서 옆에서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1번, 장난치고 떠들 때마다 '집중해' 라고 잔소리 하는 것.
2번,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는 것.
3번, 공부하는 아이들을 감시하다가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보는 것.
4번, 아이들이 문제 푸는 데 스킨쉽하고 말을 거는 것.(우리 아들 착하네, 열심히 하네, 집중 하네....)
5번, 아이들은 공부하고 엄마는 설거지나 요리 등 다른 일을 하는 것
6번,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는 것.
1번, 2번, 3번은 내가 주로 하는 방법이다. 5분에 한 번은 집중하라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지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일기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옆에서 도와준다. 그러다가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에 온 알림을 확인한다. 이 점은 고쳐야 할 점이다.
4번은 우리 남편의 전매 특허이다. 아이들이 겨우 집중해서 공부 시작하려고 하면 꼭 방에 들어와서 볼을 부벼대며 뽀뽀를 한다. "첫째, 기특하네." "둘째, 아빠 아들이네." 라며 시간과 장소에 걸맞지 않는 애정표현을 하고 사라진다.
5번은 몇 번 시도해 보았으나 공부할 때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고 문제 읽기를 귀찮아 하는 그들이 엄마를 끊임없이 불러대기 때문에 다른 일을 쉽사리 할 수가 없었다.
6번. 최근 우리집의 모습이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모자라는 부분을 독서로 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사를 하고 싶은 책은 자꾸 생겨났고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책에 있는 지식과 지혜들을 나의 것으로 더 많이 소화시키고자 하는 열정이 오히려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하릴없이 아이들을 지켜보며 숙제를 도와주고 집중하도록 감시하는 시간을 활용하면 어떨까? 엄마도 옆에 앉아 책을 읽으며 수첩에 필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이 '우리 엄마도 책을 읽는구나.' 라 생각할 수 있겠지? 엄마가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해 할수도 있지 않을까? 책을 열심히 읽고 필기하는 모습을 대놓고 아이들에게 광고해보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책에 몰두하려 하면 목마르다, 지우개가 없다, 다리가 간지럽다, 공부가 힘들다, 뭔 말인지 모르겠다.....아이들의 요구사항이 어찌나 많은지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내가 책을 보는 건지, 필사를 하긴 하는 건지 싶다. 하지만 엄마가 펜을 들고 옆에서 공부하는 행동을 보여줄 때에는 같은 말이라도 더 '먹힌다'. 노래를 부르며 수학문제를 푸는 아이에게 '강준아' 라고 낮게 읖조리기만 해도 아이는 바로 멈추고 하던 일에 집중한다. 엄마도 같이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상깊은 구절, 놓치고 싶지 않은 문장, 소설에서 감탄할 만한 표현, 깨달음을 주는 지혜와 지식들을 공책에 옮겨 적는다. 글을 읽고 나에게 하나라도 더 도움이 될 만한 것, 머리에 집어 넣고 싶은 지식을 조그만 수첩에 꾹꾹 눌러 적는다. 작은 돈을 차곡차곡 저금하듯이, 이렇게 하면 하나라도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교육심리학 이론 중 <사회학습이론>이 있다. 사람의 행동은 다른사람의 행동이나 상황을 관찰하거나 모방한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이다. 캐나다 출신의 교육심리학자 반두라가 주창했다. 이 모방학습이론이 '집중해라'라는 잔소리보다 효과적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스마트폰 한번 보고 싶은 유혹을 참는다. 뜨개질 하고 싶은 생각도 뒤로 미룬다. 커피 한모금 마시고 아이들을 한번 쳐다본 후 다시 필사에 몰두한다. 이 행동과 실천이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는 일석이조의 희망을 갖고.
얘들아, 너희는 숙제를 하거라, 어미는 필사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