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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두 Jan 09. 2024

놀면 뭐 하니?

초등1학년 겨울 방학 생존기

 "초등 1학년부터 너무 스파르타 아니야? 매일매일이 강, 강, 강인 것 같은데?"

오늘 나에게 던진 남편의 말이다. 예비 초등 2학년인 아이들이 불쌍해 보였나 보다. 물론 진지하게 말한 것은 아니고 웃으면서 말하긴 했다. 그렇긴 하지만 뼈가 있는 말이기에 다시금 방학 생활을 되돌아보았다. '애들'의 방학생활이 아닌 '나'의 방학생활을.


 지난 여름 방학에는 나 편하자고 방학 중 돌봄 교실을 보냈다. 맞벌이 가정 대상 자녀를 우선적으로 신청받는 돌봄 교실의 특성상 엄마가 휴직 중인 우리 가정의 아이들은 우선 신청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혹은 방학 때만이라도 돌봄을 보내겠다는 알량한 생각으로 휴직 직전 재직 당시 재직증명서를 제출한 결과, 돌봄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얄팍하고 이기적인 나의 생각대로 된 때문일까, 작년 여름에 달콤한 휴식을 맛보았다. 방학이어서 매일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요리하는 엄마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나 이래도 되나?' 하는 물음표가 생겼다. “왜 방학인데 학교에 가야 해?” 아이들의 아우성을 들으면서 '나 나쁜 엄마인가?' 하는 일말의 죄책감이 생겼다. 하지만 아침에 9시까지 학교에 애들을 맡기면 점심식사와 식후 간식까지 해결하고 오는 일정은 나에게 너무 유혹적이고 매력적이었다. 돌봄 교실 보내기를 끊을  래야 끊을 수가 없었다. 나만의 시간이 없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애들에게나 나에게나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합리화로 아이들을 보낸 후 뜨개질을 하고, 필라테스를 가고, 애 없는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 했다.      


 그렇게 엄마가 원하는 대로 아이들은 여름방학을 지냈고, 시간은 빨리 흘러 벌써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주저 없이 방학 중 돌봄 교실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였다. '이번엔 내가 데리고 있어 볼까?'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고작 1학년이지만 방학 동안 교사인 엄마가 실력발휘를 해보고 싶었다.


1. 하루에 매일 문장 성분과 구조 익히고 세줄 글쓰기

2. 시간에 쫓겨 한 두 권 급하게 패스트푸드처럼 책을 읽어대는 것 말고 천천히, 슬로 리딩 하기

3. 영어 학원 숙제 봐주기

4. 수학 학원 숙제 봐주기

학기 중 학교와 학원 다니느라 못했던 것들(1,2번), 그리고 겨울방학을 맞아 새로이 시작하는 것(3번, 4번).


 애들이 아닌 나의 생활을 돌아보자면, 여름 때보다 일을 더 많이 벌리고 있었다. 부엌 창문 커튼을 뜨개질로 만들고 있는 상태였으며 운동 소모임 방장의 역할이 추가되었다. 소중한 독자분들에게 브런치 월, 수, 금 글을 쓰겠다고 공언도 했고 독서도 새롭게 생긴 나의 취미생활이었다. 만약 방학 돌봄 교실을 간다면 나는 여유로울 것이고, 자아실현(?)의 꿈을 맛보아 행복할 것이었다.


 나에게 유혹하며 손짓하는 취미생활을 뒤로하고 방학 10일 전, 과감하게 돌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강준이, 이준이 엄마입니다. 이번 겨울 방학에는 돌봄 신청을 하지 않을게요."

언제까지 방학 때마다 아이들을 내맡기듯 학교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애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짬짬이 자아실현을 조금씩 달성하는 요령이 필요했다. 초등교사로서 방학 집중 트레이닝도 한 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오전 내내 내복을 입고 편하게 집에 있을 아이들의 특별한 권리를 빼앗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 까짓 거 방학 때 애들 한번 데리고 있어 보자, 하늘이 두 쪽이야 나겠냐.' 라며 결심했고 지금까지는 무탈하게 도전의 시간들을 지내고 있는 듯하다.            


1. 하루에 매일 문장 성분과 구조 익히고 세 줄 쓰기

2학기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일기 숙제가 있었다. 1학년은 학교 국어 시간에 생각을 문장으로 쓰는 방법을 배운다. 한글을 갓 뗀 아이들이기에 문장 성분의 호응이 맞지 않게 쓰거나 뜻을 정확지 못하게 쓰는 경우가 많다. 문장의 구성 성분을 정확하게 익히고 문장을 완성해 보는 문제집과 매일 다른 주제로 세 줄 쓰기를 할 수 있는 문제집을 주문했다. 글을 쓰는 브런치 작가로서 자주, 되도록이면 조금이라도 매일 쓰는 것이 글쓰기와 친해지고 글쓰기를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인 듯하여 아이들도 매일 세 줄 쓰기를 잘 실천 중이다. 구체적이거나 자세하고 생생한 묘사를 못하는, '나는 ~했다.', '나는 ~하고 싶다.'와 같은 문장들을 보면 성에 차지 않지만 그래도 1학년이니 매일 쓰는 게 어디냐며 눈 질끈 감고 책을 덮는다. 특히 글은 지적할수록 쓰기 싫어지는 습성이 있기에 고쳐쓰기는 다음번에 배우기로 한다.


2. 시간에 쫓겨 한 두 권 급하게 패스트푸드처럼 책을 읽어대는 것 말고 천천히, 슬로 리딩 하기.

책을 읽지 않는 우리 아이들이다. 활자는 싫은지 그림만 보고 휙휙 넘긴다. 그나마 독서와 유사한, 글을 읽기보다는 듣는 유일무이한 시간이 잠자리 독서시간이다. 학기 중에는 취침 시간에 쫓겨 책을 후다닥 읽어댔다. 아이들의 반응은 묻지도 않고. 입을 닫고 귀만 열어라, 엄마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단어와 문장들을 너희의 뇌 속으로 투입시켜 주리라,라는 비장한 각오로 하루에 다섯 권씩 책을 읽어 줬다. 장르 별로 위인전, 이야기 책, 지식 기반 이야기 책, 영어책.

 방학의 특징은 남아도는 시간 아니던가, 그 시간을 이용하면 쫓기듯이 읽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책을 음미하듯 여러 각도에서 보고, 상상하고, 마음껏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공부머리 독서법> 카페를 찾았다. '슬로 리딩'으로 익히 유명한, 독서교육 전문가 최승필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온라인 카페이다. 슬로 리딩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맛을 보려고 <책 먹는 여우> 슬로 리딩을 찾아봤다. 과연, 책 표지를 탐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지는 한쪽도 읽지 않는다. 여우 아저씨가 어떤 책을 먹어치우고 있는지 책 표지를 그려 보는 것이 첫 주의 미션이다. 이제껏 책 표지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나의 독서 습관을 반성했다. 어른 책이야 그렇다 쳐도, 그림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이들 책은 표지부터 찬찬히 들여다보면 좋은 것을 알면서도 패스트푸드 먹듯이 허겁지겁 내지 속 글자만 읽어주기 바빴던 것이다.

 표지만 일주일 보고 이야기 나누니 "엄마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넘어가자."라고 말하는 아이들, 그들도 나의 패스트 리딩에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럴수록 표지에 더욱 집착한다.

책 표지를 보고 우리 셋은 여우의 식탁에 놓여 있는 책뿐 아니라, 털모자 끝에 걸쳐져 있는 'ㅌ'자에 주목했다. 뒷 표지를 보니 'ㅍ'과 'ㅎ'과 포크가 그려져 있었다. 이 자음들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왜 하필 이 자음들일까? 책을 펼치니 처음 보이는 것은 알파벳들이었다. 조합해 보니 'The fox who ate books'이었다. 아이들은 뜻밖의 발견으로 재미있어했다. 똑같은 책이었지만 전에는 책 표지는 신경도 안 쓰고 넘어간 부분이었다. 조만간 여우가 먹어치우고 있는 책 표지를 그려볼 예정이다.


3. 영어학원, 수학 학원 숙제 봐주기

 영어학원 본문을 매일 읽고 5번 녹음하기. 이것은 일전에 썼던 것처럼 상당한 효과가 있다.. 침이 마르고 닳도록 녹음을 하는 모습을 보고 오늘 남편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애들 영어 랩 하는 것 같아, 나보다 빨리 말해."

이번 주 본문의 제목은 <Alice's dream>이었다. Alice라는 공주가 성에 살고 있는데 두 명의 남자가 와서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와 은 목걸이를 주며 청혼하고, Alice는 그 둘 중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 장애가 온다는 내용이다. 오늘 잠자려고 불을 끄고 셋이 누웠는데 Alice에 엄마를 대입하고, 두 명의 남자에 본인들을 대입하여 문장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Mom sleeps. Mom dreams. Mom lives in a big castle....... Prince Minny is first. He gives Alice a diamond ring........ Prince Sonny is second. He gives Alice a silver necklace........"

아이들의 뇌는 역시 스펀지이다.


수학학원도 겨울 방학 들어서 새롭게 시작하는 과제이자 도전이다. 나는 옆에서 필사를 하며 같이 배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엄마가 필사를 하며 무언가를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롤 모델로 작용하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도 아이들을 돌봄 교실에 보내지 않은 것은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나의 뜨개질 진도는 멈춰있지만, 운동할 때 반려견이 와서 방해하듯 조그만 강아지 두 마리가 나의 운동을 방해하지만, 애들 재우고 난 다음 겨우 브런치를 발행하고 있지만, 독서는 애들 공부할 때 짬짬이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로서의 투철한 사명감이 빛을 발하는, 그리하여 그것으로 알 수 없는 힘을 얻는 그런 24년의 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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