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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Jan 23. 2024

천사와 악마, 탕수육과 짜장면

예전에 친구들하고 했던 퀴즈가 생각났다. 아래 힌트에 해당하는 걸 맞추면 되는 간단한 퀴즈.


천사에겐 있지만 악마에겐 없는 것.

탕수육에는 있지만 짜장면에는 없는 것.


아마 이 힌트만으로는 부족할 테니 더 드리자면.


사랑에는 있지만 우정에는 없는 것

엘리베이터에는 있지만 계단에는 없는 것

산삼에는 있지만 더덕에는 없는 것

오리에겐 있지만 거위에겐 없는 것

아이폰에는 있지만 갤럭시에는 없는 것

일본에는 있지만 미국에는 없는 것

친구에겐 있지만 연인에겐 없는 것

팔꿈치에는 있지만 발목에는 없는 것

바이올린에는 있지만 피아노에는 없는 것

사막에는 있지만 정글에는 없는 것

내일엔 있지만 어제엔 없는 것

라디오에는 있지만 텔레비전엔 없는 것

칠판에는 있지만 분필에는 없는 것

회사에는 있지만 학교에는 없는 것

평일엔 있지만 주말엔 없는 것

근육에는 있지만 지방에는 없는 것

봉사활동에는 있지만 취미생활에는 없는 것

사유에는 있지만 고찰에는 없는 것


정답을 아시겠나요? 이 문단 끝에 적을 정답의 스포 방지를 위해 사설을 붙여보자면, 이 퀴즈는 보통 그룹에서 진행하는 게임으로 나는 1:N 퀴즈라 부른다. 먼저 한 명(나)만 알고 N 명은 모른 상태로 게임이 시작된다. 아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힌트를 계속 하나씩 던져준다. 그러다 보면 정답을 알아채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답을 알겠는 사람이 정답을 그대로 말하면 안 된다. 정답을 알 것 같으면, 힌트를 만들어 보라고 한다. 정답을 그대로 말해버리면 곧바로 모두가 알게 되고 그러면 게임이 재미없게 끝나기 때문이다. 만든 힌트를 듣고 실제로 정답에 맞는지 말해주면 된다. 그러면 이제 두 명이서 N-1 명에게 힌트를 던지기 시작하면 된다. 이렇게 점점 아는 사람이 늘어나서 종국에는 N명이 신나게 힌트를 내고 마지막 1명이 답답해하는 게 이 게임의 피날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힌트는 거의 무한정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정답을 아는 사람들끼리도 얼마나 재치 있는 힌트를 만드는지 겨루는 재미가 있다. 내가 봤던 가장 멋진 힌트는 '누구나에게 있지만 아무나에겐 없는 것'이었다. 아, 그래서 정답은. 정답은 숫자다. 천'사', 탕수'육'.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는 단어의 의미에 집중하면 안 된다. 의미를 버리고 글자 자체를 보아야 답을 맞힐 수 있다. 그리고 그렇기에, 한글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할 수 없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세계적인 문호가 되어보자는 거창한 꿈을 한 번쯤은 생각해 봤다. 우리나라엔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으니 어쩌면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점점 글을 쓰다 보니 한글 자체에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재개그, 펀치라인, 언어유희. 아직도 이 셋이 왜 다른지 모르겠다. 아저씨가 하면 아재개그고 래퍼가 하면 펀치라인이고 작가가 하면 언어유희인가? 아무튼, 발음 가지고 하는 말장난을 좋아한다. 처음 글을 쓸 땐 전하고 싶은 의미를 어떻게든 담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요즘은 그래도 짬이 좀 찼다고 이런 말장난을 섞어 넣을 여유가 조금씩 생기기도 한다. 특히 발음이 비슷하면서도 뜻이 반대인 단어들로 대조를 이루는 것이 재밌다. <의미의 의미>에서 '살아지는'과 '사라지는'을 대조시킨 것이나, <2023 연말 회고록>에서 사용한 '불확실한 미래가 내가 바라는 대로 되길 마냥 두는 것이나, 불확실하더라도 내가 바라는 미래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나' 같은 문장들. 아예 이런 문장들로만 쓴 시 <짝사랑>도 있다. 이런 표현들이 재밌고 좋아하고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짜릿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한다. 번역으로는 이 맛을 살릴 수 없을 텐데. 안 그래도 유럽권 문자와 멀어서 노벨 문학상을 따기 어렵다는 한글인데, 이런 표현들을 사용할수록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게 아닐까. 주석이 주렁주렁 달려야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긴 싫은데.


글을 쓰면서 여러 번은 되물었을, 그리고 대답도 수십 번은 바뀌었을 질문.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라는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나는 과연 세계적인 문호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글을 쓰는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 반대였다. 안 그래도 편식을 하는 편인데 거기에 커팅까지 하면서 극도로 먹는 음식 가짓수를 줄였을 때, 팀원분이 '나중에 창작 칵테일로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충족시켜주려면 싫어도 이것저것 먹어보고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한 적 있다. '전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제너럴리스트가 될 생각은 없어요. 세상 어딘가에는 저랑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 있을 테고, 그들을 위한 완벽한 경험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라고 답했다. 요즘 결, 결이 맞는다는 표현이 정말 좋다. 요즘 내게 글쓰기는, 결이 맞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나의 결을 먼저 표현하는 의미로써의 글쓰기가 가장 크다.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더 좁고 내밀한 관심을, 그 안에서 (보통은 공감대라는 표현을 쓰지만 공감 능력은 부족한지라) 영감대와 사유의 땅을 형성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렇기에 내 글은 대중적이지 못해도, 번역하기 어렵다 해도 상관없다. 이 또한 나의 결이기에. 나 자신이기에. 쓰고 싶은 글을 쓸 뿐이다.


여담으로, 외국인이 한국어에 대해 재밌게 얘기한 글을 본 적 있다. '후추'가 재채기 같은 발음이라 기억하기 쉬웠다거나, '부부'가 두 사람의 나란히 있는 한 쌍처럼 보여서 귀엽다거나, '옷'이 사람처럼 생겨서 이 글자가 어떤 옷을 입을지 궁금하다는 말들. 한글이 조합형 글자이기에 만들 수 있는 모양들이었을까. 조합형 문자라는 것은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가끔씩 이상한 예외 처리를 하게 만드는 문자기도 하지만, 때로는 모아키처럼 이런 한글의 특성을 200% 활용한 결과물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글을 완벽하게 활용하는 모아키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아이폰이 아닌 갤럭시를 사용하고 있다. 광고는 아닙니다. 하지만 모아키 한 번쯤은 사용해 보세요. 정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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