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소년이 온다를 읽으려고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읽지 못하고 반납을 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25년의 나는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다시 한번 읽고자 책을 구입했다.
'소년이 온다'는 독자를 80년 5월의 광주 금남로 한 가운데로 데려간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의 장면들이 내 눈으로 직접 본 듯 책을 다 읽은 나에게 너무나 선하다.
책에서 나오는 전남도청, 그리고 도청 앞 분수대, 상무대가 아직까지도 광주광역시에 남아있다. 일부분은 시간이 지나며 사라진 부분도 있지만 최대한 보존시키려고 노력하는 광주의 모습이 인상 깊다.
사실 광주로 대학교를 진학하기 전에 나에게 5.18은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민주화운동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2017년 광주 소재의 대학을 진학하고 총학생회 인원들과 함께 5.18 전야제를 참석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5.18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광주에 대해서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광주에 있는 대학교들은 학교 축제를 가을에 한다. 다른 수도권의 대학들은 4~5월에 보통 대학교 축제를 여는데 광주의 5월은 그럴 수 없다.
예전에 대학교 선배인 한선이형과 옛 전남도청 부근인 문화전당역을 지나가다가 전일빌딩을 보면서 나눴던 대화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앞에 보이는 거리가 금남로이고 옆 건물이 전일빌딩이다. 전일빌딩에는 아래의 사진과 같이 신군부가 헬기를 타고 시민들을 향해 총을 쐈다는 증거인 총탄들이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대학생 때의 나는 한선이형에게 "형, 저런 역사적으로 기록하고 남겨야 하는 건물에 가게 임대를 줘도 되는 것인가요?" 실제로 전일빌딩 상가에는 가게가 들어와 있었다.
한선이형은 "건물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손이 가지 않으면 오히려 더 망가진다."라고 말해줬다. 참 기억에 많이 남는 말이다. 차라리 사람들이 들어가서 있는 것이 이 건물을 오래 보존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된다는 것이 놀랍다.
'소년이 온다' 책이 얼마나 팔렸을까? 하고 책 앞부분을 봤다.
24년 12월 18일 기준 181쇄가 발행되었다.
한강 작가는 광주 5.18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왜' 80년 5월 광주를 잊어서는 안 될까?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그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80년 5월 광주 금남로에 나왔던 사람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오늘날 그 상황이 똑같이 일어난다고 해도 과연 앞장서서 금남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대학 시절 망월동에 있는 5.18 국립 민주묘지에 방문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정말 컸다. 수많은 묘 앞에 나는 더 작아져 갔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니.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인이 시민들에게 총을 쏘고
구타, 고문하고 잡아가는지.
결국 이것을 명령한 사람은 제대로 된 반성조차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영원히 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오늘날 '계엄'이 반복될 줄은 몰랐다.
관련하여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말을 아끼도록 하겠다.
인상 깊었던 문단을 몇 개 기록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양심.
양심만으로 그날의 금남로와 전남도청에 남을 수 있었을까?
본 책의 주인공 문재학 열사는 그날 어떤 마음으로 남았을까
고등학생 나이에 말이다.
양심만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감사하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에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5월 광주를 겪은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큰 상처를 가지고 있다.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갖고 괴로워하는 이들도 많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이들은 5월마다 그날이 떠오를 것이다.
5월 광주를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은 '책임'이다.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도록 늘 생각하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