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마음을 지배한다

마음과 인사 나누기 (Feat. MacRitchie Reservoir)

by 한 번 더 안아주기

코로나로 2021년 한 해는 lockdown의 시작과 완화의 반복이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한 없이 높고 맑지만, 하루 종일 back to back meeting을 하다 보면 정작 바깥공기를 쐴 수 있는 날은 별로 없었다. 출장이 너무 많으면 아이들도 그렇고 여러모로 부담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집에만 있다 보니 에너지도 낮아지고 자존감도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지하철에서 사람 구경도 하고, 출근한다는 핑계로 멋도 부리고, 동료들도 직접 만나 수다도 떨고 그래야 삶의 활력이 생길 텐데 1년이 넘게 virtual로 일을 하려니 그럴 수밖에.


막연히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콘도 안에 gym이 있지만 여유롭게 기구들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고, 딱히 좋아하거나 할 줄 아는 스포츠도 없다 보니 결국 제자리걸음이었다.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참에 Kate님이 추천했었던 맥리치 저수지가 생각이 났다.


일요일 오후 5시. 싱가포르는 햇빛이 너무 강해서 낮 시간 외부 활동은 무리다. 그래서 선택한 시간이 해 지기 직전. 버스에 내려 주차장을 지나니 넓게 펼쳐진 저수지가 보인다. 마치 거울을 내려놓은 듯 나무와 구름이 반사되어 비친다.


오길 정말 잘했다.


맥리치 저수지 근처 산책로는 여러 가지 코스가 있는데, 등산보다는 산책에 가까운 무난한 난이도이지만 제대로 한 바퀴 돌려면 시간이 넉넉히 있어야 한다. 구간을 끊어서 이동한다고 해도 최소 2시간 정도는 생각하는 것이 안전하다. 한 번은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해가 진 다음에 산책로를 빠져나왔는데, 깜깜한 길에서 혼자 원숭이라도 마주할까 봐 어찌나 겁이 나던지. 휴우~


실제로 맥리치 저수지 산책로를 걷다 보면 원숭이나 거북이 같은 동물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바로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도 대수롭지 않게 본인들 할 일을 하는 사람 친화적인 원숭이이지만, 먹을 것을 들고 가는 경우 갑자기 와서 확 낚아채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간식은 들고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돌고 나면, 땀도 적당히 나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진 느낌이 든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고,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할 수 있다는 얘기를 흔히들 한다. 혹자는 한 발 더 나아가 몸이 마음을 지배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종종, 특히 불안이 찾아와 안녕하고 인사할 때, 화나는 일이 있는데 영어로 제대로 화를 내지 못해 더 화가 날 때, 몸의 도움을 받아 마음을 다스리고 싶을 때 맥리치 저수지를 찾게 될 것 같다.


맥리치 저수지 산책로에서 본 풍경. 이른 아침이나 해질녘이 가장 걷기 좋은 시간이다.


산책 중에 운이 좋으면 다양한 동물들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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