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반 만의 한국 방문

모든 것은 그 자리에 그대로

by 한 번 더 안아주기

코로나 상황의 악화와 격리 기간 연장, 싱가포르 정부의 new entry 금지 등으로 인한 몇 번의 좌절 끝에 드디어 1년 반 만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한창 오미크론 변이와 급증하는 환자 수로 방역 당국이 정신이 없을 무렵이라 그동안 고취되었던 애국심이 인천공항을 빠져나오면서 다시 제자리로 오긴 했으나 역시나 내 나라, 내 언어, 내 사람이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영하의 차가운 바람이 먼저 느껴진다. 그리웠던 겨울 냄새다. 사계절이 인생을 한결 dynamic 하게 해 준다는 사실을 싱가포르에 머물면서 처음 느꼈다. 일 년 내내 초록빛 땅과 청명한 하늘을 보면서 행복했지만, 지루하고 심심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추운 거라면 딱 질색이던 사람인 나도 이번엔 추위가 싫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보일러를 가장 높은 온도로 맞추어 두고,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엎드려 누워 있으니.. 아.. 천국이 따로 없구나!


오랜만에 내가 일하던 사무실에 갔었다. 버스정류장, 횡단보도, 1층 커피숍.. 모든 게 그대로인데 나만 잠깐 타임머신을 타고 1년 반 동안 사라졌다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렇게 모든 게 그대로인 것을, 왜 그토록 이곳을 그리워하고 한국에 오고 싶어 했을까? 코로나 때문에 오려고 해도 올 수가 없으니 그리움이 뭉치고 굴러 점점 큰 눈덩이가 되었었나 보다.


싱가포르로 relocation 한 후 처음 한국 방문이라 아주 완벽한 준비는 못되었지만 몇 가지 깨달은 점을 공유할까 한다.


우선 일정. 한국에 머무는 동안의 일정은 무조건 여유 있게 계획하길 바란다. 특히 처음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 군대 갔다 첫 휴가 나오는 군인처럼 갈 곳도 만나야 할 사람도 많기 마련. 양가 부모님 방문이나 국내 여행 등 한국에 도착해서의 일정을 너무 촘촘하게 짜는 경우 어른도 아이도 지치기 마련이니 중간중간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날을 꼭 넣길 바란다. 싱가포르-한국도 6시간 비행이 필요한 긴 여행임을 잊지 말자.


아이들과 함께 온 경우라면 숙소는 예전에 살던 동네의 에어비앤비를 고려해 보길 권하고 싶다. 우리는 중간중간 지방에 가야 하는 일정이 있어서 세 곳의 숙소에 나누어 묵었는데, 다음에는 가능한 한 곳에 쭉 머무를 것 같다. 장기 여행에 맞춘 짐의 양이 많기도 하지만, 가장 조절이 어려운 건 냉장고 안의 음식들이었다. 예전에 살던 동네가 주는 이점은 명확하다. 엄마 아빠가 매번 동행하지 않아도 집 앞 놀이터나 마트, 문방구 정도는 아이들끼리도 다녀올 수 있고, 아무래도 주변에 사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친했던 친구들과 만남도 훨씬 수월해진다. 우리 아이들은 싱가포르 생활에 대체로 잘 적응하는 편이었는데, 단 한 가지 채워지지 않는 것이 '친구'였다. 아무래도 pool이 적을 수밖에 없으니까. 한국을 방문한 기간 동안만이라도 절친들을 가능한 많이 만나게 해 준다면 그 기억만으로 한 동안은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은행, 보험, 병원, 미용실 등 한국에 오면 해야겠다 생각한 일들은 미리 list up 해두고 필요하면 예약을 해두자. 생각보다 시간은 금방 가고, 병원 등은 예약 날짜가 늦게 잡히는 경우도 있으니 입국 초기에 일정을 확정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길게만 느껴졌던 한 달 반. 이제 며칠 뒤면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간다. 싱가포르에서 n년 살기 중 2년 차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펼쳐질 또 다른 세상. 한국에 두고 온 남편의 빈자리가 크겠지만 걱정보다는 셋이서 똘똘 뭉쳐 헤쳐나갈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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