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있는 사람을 찾아온 삶.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기대고 싶고 믿고 싶은 자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글쎄. 완벽한 사람 혹은 상황은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교사라면, 학생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목사라면,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방법 혹은 중심은 무엇일까?
경찰이라면, 깨끗하고 청결하며 범죄를 막아주고 시민을 보호해 주는 길은 무엇일까?
마케터라면, 제품의 가치를 진정성 있게 거품 없이 전달할 수 있는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정치인이라면, 나라를 진심으로 위하여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부모라면, 아이를 정말로 사랑하는 방법과 기준은 무엇일까?
다소 꽉 막힌 어린아이의 시선 같으나, 당연한 진정성이 요구되는 현실 가운데 위 질문들을 늘 점검하며 지키려는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 조차도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우선순위지, 거기서 진정성을 논한다면 끝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저마다의 기준과 허용선이 다르기에 진정성의 기준은 사람마다의 차이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어릴 적 나는 어른들에게 기대가 많은 만큼 실망이 많았다. 학생들에게 애정조차 없고 무관심한 교사, 학교폭력과 괴롭힘을 보더라도 전반적 평화를 위해 가해자들의 편에서 피해자를 설득하던 교사, 성적에만 관심 있는 교사, 뇌물을 받고 사건을 무마하는 경찰, 돈에만 눈이 멀어 다투는 어른들, 서로 속고 속이며 손해 보지 않으려는 관계, 앞에서의 모습과 뒤가 다른 친구들 등, 내가 어른이 되면 저런 사람은 되지 않을 거야, 다짐했던 여러 삶의 조각들 가운데 나이를 먹고 현실적인 삶을 바라보며 그들의 선택과 판단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굽히고 싶지 않은 나의 어린 시절의 순수한 시선, 그리고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반면교사들을 용서하고 이해하게 되는 데에서 오는 간극은 나로 하여금 나의 진정성에 대하여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과연 나는 매 순간을 진정성 있게 살아왔을까? 내가 생각했던 진정성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그 기준은 누가 세웠는가?
사람이 아닌 상황을 보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람은 불완전하고 상황에 따라 겁을 먹기도,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저 그런 연약한 사람들이지 않았을까? 과연 나는 순수한 그 중심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