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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버틴 육아, 꿈으로 나아가며

<마흔에게> 기시미 이치로

by 글쓰는 맘


나의 마흔을 응원하며 읽어 내려가는 책.


마흔을 불혹이라고 한다.

‘불혹’은 미혹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가 마흔 살부터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네이버 어학사전

어느 유튜브 방송에서 진행자와 게스트가 불혹의 뜻을 말하면서.

"미혹되지 않는 다고요?" 오히려 불혹이 “불같이 혹독하다.” 그래서 불혹인 거 같다며 우스갯소리로 한 말에 공감 가면서 빵 터졌다.


마흔이 꺾기고 오십을 바라보면서 불같이 혹독했던 시간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마흔이 된 순간부터 혼란스러웠던 거 같다.

해놓은 건 없는데 벌써 마흔이 되었다.

아이들은 너무 어리고 끝나지 않을 거 같은 육아의 지옥이 무섭기도 했다.

무언가 시작하긴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라는 여건에서 쉽게 찾아지지 않는데. 뭔가 해야 할 거 같았다.

아무것도 안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오십이 돼버릴 거 같았다.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이것저것 되는대로 했던 것 같다.

사실 제정신으로 했다기 보단 해야 할 것 같은 압박.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지금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방향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오십을 앞두고 이제 겨우 시작할 방향을 찾았다니. 한심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도 용기를 주는 말들을 찾아서 스스로를 응원하고 있다.


기시미 이치로의 <마흔에게>라는 책이 그런 용기를 준 책이다.

나의 마흔을 응원하며 읽어 내려갔다.


책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작가의 경험을 기반으로 쓰여 있어서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라서 작가의 생을 애정하며 읽었다.

기시미 이치로는 <미움받을 용기>의 작가이며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한다.

작가의 많은 책들이 명상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서. 마음이 복잡할 때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책들이 많다.



“할 수 있는 일” 찾기!!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Alfed Adler)는 말합니다.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많은 일들을 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와도 할 수 있는 일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많습니다. - p8,9


나이가 들면 너무 늦었어. 못할 거야라는 포기가 빠르다.

특히 아이가 생기고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육아와 가족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가족의 일원이며 부모 된 도리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마흔이 넘으면 보통 가족이 있고 그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정체성을 잃는 거 같다.

나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족보다 나를 먼저 생각할 때 '죄책감'이 든다.

부모들은 왜 맨날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까?


그런 죄책감을 갖고 있는 나에게.

<마흔에게>라는 책은 ‘나의 오십 앞에’ 용기를 주는 내용이 많아서 좋았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되새기며 생각해 본다.

"나는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까?"




나이 듦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면 후반생은 훨씬 즐거워질 겁니다. 나이 듦의 긍정적인 면을 체감하기 위해, 젊은 시절에 했던 일을 다시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해보고 싶었는데 여태까지 해보지 못한 일에 도전하거나 전혀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어 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p35


나도 이 내용처럼 마흔이 넘어서 젊은 시절 해보지 못했던 일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20대 때 해보지 못한 꿈을 마흔이 넘어서 시작한다니, 20대 들이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20대에도 못 했는데 40대에는 도대체 어떻게 시작하지?'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마흔이 되니 알 수 없는 아쉬움과 미련이 오히려 무식한 용기를 주었다


지금 나는 늦은 나이에 영유아교육학 공부와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부터 그 일에 꽤 많은 힘을 쓰고 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힘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늦은 나이 앞에서 “쓸 때 없는 노력인가?”

두려움으로 바뀔 때가 많다.

나는 아직 나이 듦의 가치를 인정하기보다는 나이 듦 앞에 두려움이 더 많은 것 같다.


<마흔에게> 이 책에 나 온 말이 있다.

“나이 듦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면 후반생은 훨씬 즐거워질 겁니다.”


나의 무모할 수 있는 꿈과 도전에 용기와 위로를 주는 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사람에게 받은 것을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다음 세대를 짊어질 젊은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p242


“경험한 것, 배운 것,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행복을, 뭔가의 형태로 직접 건네주고, 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이 든 사람의 사명이며, 나이 들어 맛보는 행복이 아닐까요?” -p243


나이가 들어서 할 수 있는 것 중에.

작가는 그동안 경험한 것, 배운 것,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행복을 '전달하는 사명'이 있다고 말한다.

그 말에 깊은 공감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요즘 오십이 되어도 제법 살았다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수명이 길다.

나도 경험할 만큼 경험했으니 뭔가 할 말이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막상 경험했던 과거보다 지금부터 경험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은.

앞으로 경험할 것들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물론 개인차가 있긴 하겠지만.

사회 경험이 부족한 아줌마는.

과거의 얕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부터 경험할 것들을 전하는 전달자'가 되려 한다.


앞으로 건강을 잘 관리하면. 100세는 기본이고 120살을 살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 시대에 <마흔에게> 과거의 경험을 들려줄 사명은 조금 시대착오적인 내용 같지만.

구시대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나에겐 공감 가는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시대가 변한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현실로 경험하고 있지만,

여전히 70-80세를 살던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에 조심스러운 '나'다.

그래서 오십을 바라보는 내 나이 앞에 두려움이 많나 보다.


혼란스러운 변화에 적응하며.

100세의 절반에서 용기 내 터닝포인트 하려 한다.




창피하지만 늙어버린 내 나이를 13년의 결혼 탓, 육아 탓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100세를 살아가는 시간의 중간쯤.

13년의 결혼과 육아는 오히려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시간.

공부와 글쓰기에 다시 도전하고 시작하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나의 지난 마흔에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은 시간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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