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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버틴 육아, 꿈으로 나아가며

사랑의 기술이 필요한 시대.

by 글쓰는 맘



사랑이라는 뻔한 주제로 이렇게 두 번에 나눠서 지루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걱정이 든다.

사람들이 가볍게 생각하기 쉬운 뻔한 사랑 타령, 사랑 설교가 될 것 같은 조심스러움이 있다.


이 책에서도 프롬은 이것은 '사랑의 설교'가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어쩌면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설교가 될까 봐 걱정하면서도 이 내용은 현대인들에게 꼭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지로 써 내려가지 않았을까?

내가 이렇게 좋은 책의 독후감을 쓰면서 이런 조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게 아쉽다.


지난주에도 말했지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은 “사랑”이라는 우리가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주제를 철학적이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이번 주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나오는 ‘사랑의 실천’ 부분을 살펴보려 한다.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것이냐를 살펴보기에 앞서서 “현대인의 사랑과 특성”을 살펴보겠다.

현대인의 특성을 통해 실천의 방향을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현대인의 사랑과 특성


“현대인은 깊은 내면의 불안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으려 한다. 그러나 사랑 없는 관계는 더 큰 공허를 남긴다.


진정한 사랑이 아닌 불안과 공허를 덮기 위한 사랑은. 지난주에 살펴본 자본주의와 대기업이 만든 소비문화에 익숙한 습관처럼. 사랑도 소비하는 행위로 변질되고 있다고 말한다.


“자동 기계는 ‘퍼스널리티라는 상품’을 교환할 수 있고 공정한 거래를 희망할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소외된 구조를 가진 사랑, 특히 결혼의 가장 중요한 표현의 하나는 ‘팀’이라는 개념이다.” - p128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러한 개념에서 중요한 강조점은 참아낼 수 없는 고독감으로부터 피난처를 찾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에서 마침내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안식처를 찾아낸다. 사람들은 세계에 대항하는 두 사람 사이의 동맹을 형성하고, 두 사람만의 이기주의는 사랑과 친밀감으로 오해된다.” -p129


너무 공감되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외로움과 고독의 피난처로 결혼을 선택하고 가족이라는 팀을 이루어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세상에 대항하며 열심히 돈을 벌고 모으며 경쟁적으로 버티며 살아낸다.

그러다가 우리 팀의 일원을 더 만들기 위해 경쟁적으로 출산하고 다시 또 경쟁적으로 육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쟁적인 나의 모습을 뒤돌아봐도 답이 없다.


철저하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롬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찾는 것이 가능할까?

책을 읽어 내려가면 현실에서 어떻게 방법을 찾아갈지가 막막했다.




“두 사람이 서로 그들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사귈 때, 그러므로 그들이 각기 자신의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경험할 때 비로소 사랑은 가능하다. 오직 이러한 '핵심적 경험‘에만 인간의 진실이 있고 오직 여기에만 생기가 있고 오직 여기에만 사랑의 기반이 있다.” -p147


에리히 프롬의 이 구절은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닌 ‘실존적 만남’으로 정의한다. 진정한 사랑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데서 출발한다.

남을 통해 부족한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인식한 이후에 만남이 진정한 사랑이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비로소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라는 실존에 대한 성찰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프롬이 실존주의로 설명하는 ‘’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다. 자신의 한계와 고독을 인정하면서도 타자와 관계 맺기를 선택하는 존재이다.


어쩌면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가 사랑의 출발점이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익숙하고 쉬운 말이지만, 정확히 내가 “나”라는 실존적인 존재를 깨달으며 살고 있나를 판단하는 게 쉽지는 않다.


사실 실존주의에 대해 깊이 공부해 본 적이 없어서,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이처럼 철학적인 논의까지 다루게 될 줄은 몰랐다.

읽을수록 어렵고, 복잡하고, 묘한 울림이 남았다.


사랑의 실천과 사회적 조건의 한계


프롬은 “사랑은 능동적인 활동이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능동성은 결국 실존주의 철학과 연결된다.

인간은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다.

그렇기에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책임과 선택이 동반된 적극적인 행위인 것이다.


자기 자신을 능동적으로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고독, 결핍, 불완전함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태도다.

프롬은 이런 실천적 태도는 결국 ‘진정성(authenticity)’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나 역시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삶 전반에 진정성 있게 살아가는 태도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삶에서 진정성을 찾을 때, 비로소 삶이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진정성’은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같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결코 쉽지 않다.


프롬은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훈련과 노력의 결과이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인생을 배우는 일과 같다.”


사랑의 기술은 타고나는 감정이 아니라, 의식적인 훈련과 실천이 필요하다.

그 훈련의 세 가지 방법으로 ‘긴장을 푸는 것‘(p157) ’ 정신 집중‘(p157) ’ 인내‘(p158)를 설명한다.

그리고 세 가지 훈련의 연습 방법에 대한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프롬은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 어려움으로 사회적 조건을 연결시켜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에서 현대인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의 한계점을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회는, 인간의 사회적이고 사랑할 줄 아는 본성이 그 사회적 존재와 분리되지 않고 일체를 이루는 방식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 p188


“사랑의 본성을 분석하는 것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랑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밝혀내고, 이러한 결여 상태에 책임이 있는 사회적 조건을 비판하는 것이다.” - p188


결국 현대인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는 사회적 조건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현대 사회라는 시스템은 사랑을 원하지 않는 거처럼 보인다.

효율과 경쟁, 소비와 성취만을 강조하는 구조 속에서, 사랑은 가장 비생산적인 가치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안에 속한 개인이 어떻게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현대인이 살고 있는 사화 속에서 ‘사랑의 실천’을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사랑을 실천을 해내야 하는 사회 시스템은 사랑을 방해한다.

이처럼 역설적인 사회 시스템을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의 기술을 실천하는 것은 ‘고도의 훈련’에 가깝다.


인간은 순수했던 시절 진정한 사랑의 기술을 알고 태어났지만 사회 시스템을 통해 그 방법을 점차 까먹었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다시 사랑의 기술을 하나씩 배워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누가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까?


진정한 사랑을 원하지 않는 시스템 속에 살면서, 사랑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이미 거대한 도전인지도 모른다.



‘사랑의 실천’에 대해 정리해 보려고 노력은 했지만, 실천은 글보다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책으로 공부하고 고민해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공부하고 있지만.

책 보다 ‘현실 사랑의 경험‘을 통해서 깨닫고 스스로 알아가는 것의 가치를 더 존중하는 입장이다.


지난주에도 말했지만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서 내용을 잘 담아내고 싶었지만.

글재주가 미흡하여 아쉬운 독후감이 되었다.

읽기 전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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