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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맘의 가족동화

<그냥... 우리 집은 그래> - 1화

by 글쓰는 맘


- 1화 -


“엄마, 미혼모라는 게 뭐야?”


내가 물었을 때, 엄마는 컴퓨터 앞에서 타자를 두드리던 손을 멈췄어요.

그리고 잠시 뒤 화가 섞인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하셨죠.

“엄마 바쁜 거 안 보여? 나중에 얘기하자. 너 학원 숙제하고 노는 거지? “


엄마는 일주일에 두 번 재택근무를 해요.

재택근무는 집에서 일을 하는 거예요.

나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사장님에게 부탁을 하셨데요.

하지만 회사에 출근을 하는 날은 밤 늦게까지 야근을 하기도 해요.

그런 날이 제일 싫어요.


엄마가 오길 기다리다가 꾸벅꾸벅 졸면서 소파에서 잠이 들어요.

꿈결에 퇴근한 엄마의 차가운 손이 느껴지고 따뜻한 음성이 들려요.

“방에서 자야지. 또 여기서 잠들었네."

엄마는 나를 침대로 옮겨 주시고는 꼭 안아주세요.

"사랑하는 내 딸. 잘 자."

나는 그제야 안심을 하고 깊은 잠에 들어요.


재택근무 하는 날엔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좋긴 하지만, 하루 종일 날카로우세요.

엄마 근처에서 잠깐이라도 말을 걸면 오늘처럼 혼날 때가 많죠.


혼이 난 나는 할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 품에 안겼어요.

할머니는 푹 안기는 나를 토닥이며 물으세요.

“왜 또 네 엄마한테 잔소리 들었어?”


난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어요.

“네. 엄마 나빠요. 치.

근데... 할머니, 미혼모가 뭐예요?”


할머니는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나를 꼭 안으며 조용히 물으셨어요.

"누가 네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하디?”


그날부터였어요.

'미혼모'라는 말이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그 말을 꺼내면 한순간에 우리 집 공기가 멈춰버리는 것 같았거든요.

그날 이후 ‘미혼모’라는 말이 내 마음속에서 그림자를 만들었어요.


그 단어는 어느 날, 민들레 씨앗처럼 내 마음에 툭 날아와 앉았죠.

원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날아와서 내 마음 안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려 해요.

그게 싫었고... 좀 슬프기도 했어요.




우리 가족엔 아빠가 없어요.

내 기억을 천천히 더듬어 봐도 처음부터 없었어요.


유치원 보배반 때 친구들이 말했어요.

"아기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대!"


그 말에 나는 두 눈이 커질 정도로 놀랐어요.

일곱 살이 되도록 한 번도 '우리 가족이 이상한가?'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 뒤로 알게 됐어요.

내 주변 사람들이 내가 상처받을까 봐 다들 숨기고 있었다는 걸요.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할머니랑 엄마는 솔직하게 말해주셨어요.

"나은아, 이제는 네가 알아도 될 것 같구나."


나는 그 말을 듣고 밤새 이불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어요.

우리 집이 다른 집과 조금 다르다는 걸 알게 되자 머릿속도 복잡해졌어요.


그 뒤로 세상에는 생각보다 힘든 일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할머니에게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놨죠.

할머니는 다정하게 알려주셨어요.

“조금 다르다는 건 특별하다는 뜻일 수도 있단다.”


그리고 작은 비법도 알려주셨죠.

“나은아 인생이란, 힘든 일이 있어도 그 속에서 작은 기쁨을 찾아가는 즐거운 여행이란다. “


정확한 뜻은 모르겠지만, 왠지 비밀스러운 비법을 하나 알게 된 거처럼 뿌듯했어요.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나니 예전보다 미혼모라는 단어가 덜 무서워졌어요.

하지만 ‘미혼모’라는 단어는 아직도 내 안에 그림자처럼 자라나고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예요.

어느 날 갑자기 내려와 앉은 민들레 씨앗이 내 마음에 예쁜 꽃을 피우려 하거든요.





우리 엄마는... 미혼모예요.

이제는 조금 당당히 말할 수 있어요.

왜냐면 나도 초등학생이 됐고, 이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니까요.


초등학생이 되면서 달라진 점이 많이 있어요.

그중에서 엄마가 나에게 믿고 맡기는 것들이 많아졌다는 게 좋아요.

이제 나를 어른으로 인정하기 시작하셨거든요.


“나은아, 혼자 할 수 있지? 이제 너도 2학년이야. 아기가 아니야. 알지?”

이렇게 말하고 믿고 맡겨주실 땐 내가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 들어요.


특히 일찍 출근하시는 엄마와 헤어지고 혼자 등교하는 아침 시간이 좋아요.

화단에 앉아 개미를 구경하는 날도 있고,

지렁이를 만나는 날도 있고,

민들레가 피어있는 날도 있어요.


그중에서도 민들레가 하얀 털북숭이로 변해있을 때가 제일 좋아요.

살짝 숨을 모아 후~ 하고 불어서 날리면 씨앗이 춤을 추듯 하늘을 날아가요.

그때 마음이 살짝 간질거려요.

'작은 기쁨'이라는 게 이런 걸까요?

아마도 나는 지금,

할머니가 알려주신 ‘즐거운 여행 중’에 있는 것 같아요.


"야호, 비법 하나 찾았다!"


하지만 이 시간을 그렇게 오래 즐길 수는 없어요.

나에게 주어지는 고작 30분의 여유거든요.

정신없이 등교하는 아이들의 틈을 지나 2학년 3반 교실로 들어가요.


교실로 들어서면 담임 선생님이 큰 웃음으로 나를 반기세요.

조금 과할 만큼요.

그 웃음에는 왠지 모르게 ‘걱정’이 섞여 있는 거 같아요.

그런 느낌 때문인지 모르지만, 다정한 마음과 함께 부담스럽기도 해요.

실제로 담임 선생님이 부담스럽게 느껴진 사건이 있었어요.


글쓰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던 날이에요.

그날 엄마가 학교에 오셨죠.

나는 상을 타는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를 보며 나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죠.


시상식 후, 엄마는

"나은아, 도서관에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궁금증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몰래 2학년 3반 교실로 갔어요.


그런데...


엄마가 울고 있었어요.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완전히 멈춰버렸어요.

내 안에 있던 그림자가 '훅'하고 더 길어진 것만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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