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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맘의 가족동화

<그냥... 우리 집은 그래> - 2화

by 글쓰는 맘



-2화-


교실 안에서 엄마와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어요.

아마도 오늘 시상식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어요.


그런데...

엄마가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엄마보다 나이가 지긋한 담임 선생님은 엄마의 손을 잡으셨고, 엄마는 더 슬프게 울었어요.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본 건 나에게 충격이었어요.


엄마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내 앞에서는 절대로 울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 엄마가 담임 선생님 앞에서 울고 계신 걸 보자, 심장에서 알 수 없는 뭔가가 ‘쿵’하고 내려앉았어요.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랐어요.

'미혼모'라는 말을 한 건 가?

뭔가 가슴에서 엄청 큰 뭔가가 다시 '쿵쾅'하고 내려앉았어요.


그러더니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선생님이 나를 우리 반에서 제일 불쌍한 아이로 볼 것만 같았거든요.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나은이 엄마는 미혼모란다. 그러니 우리가 나은이를 좀 특별히 대해주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상상까지 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난 뒷걸음질 치며 도서관으로 뛰어갔어요.

도서관에 들어서자, 손에 들고 있던 상장을 바닥에 툭 내려놓았죠.

그리고 아무 책이나 잡고 읽는 척을 했어요.

하지만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머릿속에 '배신자'라는 말만 맴돌았어요.


'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너무했어. 치!'

내 마음이 단단히 삐져 있었어요.

엄마에게 왜 이렇게 서운하고 화가 나는 걸까요?




엄마가 상담을 끝내고 도서관으로 들어오셨어요.

엄마는 언제 울었냐는 듯 미소를 짓고 계셨죠.

“백희나 작가 책 읽는구나. 우리 나은이가 좋아하는 작가잖아. “


내 손에 백희나 작가의 책이 들려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백희나 작가의 <이상한 엄마>라는 책을 들었나 봐요.

엄마는 평소보다 더 밝았고 더 친절하게 미소 지으셨어요.

“뭐 먹을래? 오늘 우리 나은이 상 탔으니까 나은이 좋아하는 짜장면 먹을까?”


‘배신자 엄마’의 행동이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마음속의 화를 참느냐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수가 없었죠.

"짜장면은 무슨... 귀찮아. 집에 가서 할머니랑 밥 먹자."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어두운 그림자가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 어두운 그림자가 점점 커지더니 어느 순간 커다란 물음표가 되었어요.

'앞으로 난 2학년 3반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가 되면 어쩌죠?'

‘엄마는 이렇게 슬프게 울 거면서 왜 미혼모를 선택했을까요?’

‘엄마의 선택이 나에게 이런 큰 물음표를 줄 거라는 건 알았을 까요?’


마음에 알 수 없는 커다란 물음표가 커지기 시작했어요.

떼어내고 싶었던 그림자 씨앗이 다시 내 마음속 깊숙이 커다란 물음표로 자리 잡으려고 해요.




집에 오니 할머니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우리 나은이 상 탔다며? 어디 이 할미가 한번 보자."


난 가방에 쑤셔 넣었던 상장을 꺼내서 할머니에게 보여 드렸어요.

할머니는 잘했다며 짜장면을 시켜 주셨죠.


“역시 내 할머니가 최고야!”

난 사실 아까부터 짜장면이 먹고 싶었거든요.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한숨을 길게 내쉬셨어요.

오늘따라 엄마가 많이 힘들어 보였어요.

난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짜장면을 먹었어요.

식탁에서 엄마와 할머니가 조용히 나누는 대화가 들렸어요.

“그러게 애가 애를 키우느냐 힘들지. 에휴~”


엄마는 23살 대학교 4학년 때 나를 임신하고 24살에 나를 낳았데요.

또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어요.

순간, ‘엄마가 나 때문에 우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까 배신자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미안함으로 바뀌었어요.

엄마를 생각하면, 복잡한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어요.




며칠 뒤, 학교 미술 시간에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그림 그리기를 했어요.

나는 순간 멍해졌어요.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혼자만 시간이 멈추어 버렸죠.


도화지 위에 쏟아지는 연필 소리를 듣고 있는데, 내 머릿속만 멍하게 멈춰버린 거 같았어요.

옆 친구가 아빠와 엄마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색칠하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도화지를 보며 괜히 지우개만 만졌죠.

이상하게 ‘내 이야기’를 숨겨야 할 것만 같았어요.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는 모르겠어요.


왠지 모르게 뱃속에서 뭔가 계속 쿡쿡 찔르는 것 같이 아팠어요.

담임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고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죠.

“괜찮아. 꼭 가족이 아니어도 우리 집에서 가족처럼 생각하는 걸 소개해도 돼.”


담임 선생님은 교단에 서서 가족이 아니라 가족 같은 동물이나 식물을 소개해도 좋다고 하셨어요.

그 말이 꼭 나를 향해하는 말 같았어요.

선생님 말이 끝나자 나는 창피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무척 상했어요.

갑자기 배가 더 아팠어요.

왜 그런지 모르지만 식은땀이 날 정도로 배가 아팠어요.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고, 마치 커다란 물음표가 내 배를 마구 쑤시는 기분이었어요.

너무 아파하는 나에게 선생님이 보건실에 가도 좋다고 하셨어요.

보건실에 누워서 어떻게 거짓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던 거 같아요.




하교하는 길.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리는데 고민이 점점 커졌어요.

‘나는 왜 내 가족을 소개하는 게 창피하고 숨기고 싶은 걸까?’


엄마는 시무룩한 내 얼굴을 보며 물었죠.

"나은아,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못했어요.

퇴근한 엄마는 오늘도 힘든 표정이었 거든요.

"괜찮아..."


잠들기 전에 할머니 방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고민을 얘기했어요.

“할머니... 우리 가족을 소개해야 하는 데요. 나는 우리 가족을 소개하는 게 싫어요."

"나은이가 왜 그런 마음이 들까?"

"창피하고... 숨기고 싶어요. 이런 내 마음이 이상한 건 가요?”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어요.

“나은아, 네 마음이 이상한 게 아니란다. 그런 맘이 드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거야."

"... 하지만..."


할머니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셨어요.

"세상에는 정말 많고, 다양한 모습의 가족이 있단다. 음... 하늘의 구름도 매 시간 모양이 바뀌지? 세상의 모습도 그래. 하지만 그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구름은 없어. 모두 소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지.”

“구름 이요? 구름...”


나는 잠시 구름 모양을 떠올려 봤어요.

어떤 구름이 더 아름다울까?

잠시 멍하게 구름 모양을 하나씩 떠올리고 있는 데 할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어요.


“나은아. 너는 그냥 나은이고, 우리 집도 그냥 우리 집일 뿐이야.”

“그냥 나은이?"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면서 따뜻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냥 나은이'라는 말이 너무 맘에 들었어요.

왠지 귀여운 고양이 구름 모양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어요.

할머니는 미소 짓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셨어요.

조금 전까지 걱정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렸어요.


그날 밤, 잠자리에서 계속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어요.

“너는 그냥 나은이고, 우리 집도 그냥 우리 집일 뿐이야.”


할머니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어요.

마치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마음을 간지럽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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