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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맘의 가족동화

<백이동씨 움직이는 가족상점> - 3화

by 글쓰는 맘

-3화-


".... 쪽팔렸어."


아빠의 표정에 생각이 많아 보였다.

어른들이 쓰는 단어가 낯설었지만, 아빠의 마음이 조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더 할 것 같은 아빠의 입은 잠시 조용했다.

나는 잠깐 아빠의 생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생각이 끝났는지 아빠는 말을 이어갔다.


"... 진짜 무능력했으니까."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


아빠는 애써 쿨한 척 표정으로 말을 이으셨다.


"사람들은 정곡을 찔리면 원래 발끈하거든. 진짜 못난 사람들이 막 더 화내고 그래."


못 난 사람들이 더 화를 내며 발끈한다는 말에.


순간 "이것도 못해? 넌 꼭 이렇게 하더라. 아휴 답답해." 절친 다혜의 말이 떠올랐다.

가끔 다혜가 솔직하게 표현하는 말들 중에 나를 화나게 하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발끈했다.


“참견 마. 그냥 가. 나 너랑 이제 친구 안 할 거야.”


참으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다혜에게 상처되는 말을 해버렸다.

그 뒤로 절친이었던 다혜와 멀어졌다.

나도 모르게 툭 내뱉은 말에 후회가 들기도 했다.

'됐어. 다혜가 먼저 심하게 말했어. 치!'

애써 나를 위로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고민하던 나에게 보통의 초등학생들은 솔직한 편이라며 엄마가 알려주셨다.


"근데 소현아. 솔직한 건 나쁜 건 아니야. 내 마음이 이렇다고 알려주는 거니까. 때로는 그 친구가 너무 편해서 솔직하게 말해주는 걸 수도 있어. 하지만 지나친 솔직함에 상대는 상처를 받을 수 있지. 엄마는 우리 소현이의 마음을 이해해."

“그래? “

엄마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둘 다 너무 솔직했고 둘 다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그럼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

“음... 근데 생각이 끝나면?”

“소현이가 먼저 가서 다정하게 말을 걸어 볼까?”

“내가 먼저... 왜?”

"고민이 길어지는 것보다 좋잖아. 그리고 절친인데 진짜 이렇게 끝낼 거야?"


그렇게 말하고 나서 엄마는 어른이 되면서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다정하게 다루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엄마의 위로가 뭔지 모르게 섭섭하기도 하고 “이렇게 끝낼 거야?”라는 말에 마음이 복잡하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먼저 다정하게 다가가는 건 어렵다.


시간이 지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엄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먼저 다가가는 걸 해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아빠도 그때 나랑 비슷한 마음인 걸까?


“미안하면 엄마한테 아빠가 먼저 사과하면 되잖아.”


아빠는 내 말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당황해하셨다.


“너무 늦였잖아. 이제 와서 어떻게...”

“이제라도 말하면 되지. 맨날 아빠가 하는 말이잖아. 다시 안 볼 친구도 아니고...”


아빠는 갑자기 논길을 따라서 튀어나온 강아지를 보고 급정거를 했다.

아빠의 차가 '끼~'하며 멈췄다.

순간 트럭 안이 조용해졌다.

놀란 나와 멍해진 아빠는 한참 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

"..."


말없이 먼 산만 바라보며 한참 동안 운전을 하는 아빠의 얼굴에 노을이 드리워졌다.

아빠의 표정에서 왠지 모르게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동백아가씨에 나오는 단어 중에 내가 정말 이해 못 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외로움'이라는 단어다.

아빠가 '혼자 있는 심심함'과 비슷하다고 설명해 주셨는데 뭔가 더 깊은 울림이 있는 단어 같았다.


아빠의 눈이 노을빛에 반짝여서 그런가, 살짝 그렁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순간 나는 아빠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이제 보니, 엄마가 너무 했네. 아빠 맘도 몰라주고.”

아빠는 나한테 미소를 지으셨다.


“근데 아빠, 말을 안 하면 몰라. 아빠도 맨날 나한테 그러잖아. 울지 말고 말로 하라고. 아마 엄마도 몰랐을 거야.”


아빠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


말이 없어진 아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한참의 정적 뒤에 구슬프게 흥얼거리는 아빠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오늘따라 <동백 아가씨> 노래의 가사가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울고 또 울다가 꽃잎이 멍든 거처럼 아빠의 목소리가 외롭게 들렸다.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아빠가 트럭을 몰고 시골에 가시면 가끔 2박 3일 동안 다녀오시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근처 사는 덕희 이모가 나를 돌봐주기 위해 집에 오신다.

어떤 날은 덕희 이모 대신 아빠 몰래 엄마가 오시기도 한다.

엄마가 오시는 걸 아빠에겐 비밀로 했다.


“이건 엄마와 나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알지 엄마? “

“우리 소현이가 밝아져서 엄마는 너무 좋다.”


엄마가 집에 오시면, 가장 먼저 아빠를 물어보신다.

그러면 나는 자연스럽게 아빠의 근황을 전하는 오작교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빠 요즘 시골 다니면서 많이 밝아졌어. 시골 어르신들이 아빠 엄청 좋아해. 마지막 날은 동네 이장 님하고 꼭 한잔씩 하시는데, 그날마다 <동백 아가씨> 노래를 부르더라.”


엄마는 <동백 아가씨> 노래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엄마가 제일 좋아했던 노래래. 아빠가 이 노래 부르면서 엄마한테 고백했다고 하더라.”


엄마는 고개를 떨구고 그렁그렁한 눈물을 몰래 닦았다.


“엄마, 아빠가 쪽팔려서 그랬데.”

“뭐가?”

“맨날 화내고 술 마신 거. 쪽팔려서 그런 거래.”


엄마는 살짝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너희 아빠는 애 앞에서 쪽팔리다가 뭐니. 그런 건 비속어야 나쁜 말인 거 알지? “

“알지. 난 그런 말 안 쓰지. 걱정 마. 엄마.”

“아빠 또 취해서 한 말이지? 하여튼 평소에는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 술만 취하면 말버릇이...”

“아빠 요즘 술 안 마셔. 마셔도 아주 조금 마시고 취해도 화 안 내. 더 잘 웃고 노래도 불러줘.”

"진짜 네 아빠가? 요즘 그래? 진짜 별일이네."


이상하게 엄마의 말에서 투정보다는 애정이 느껴졌다.

나는 엄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데. 우리 아빠도 진짜 말주변은 없어.”


엄마의 눈에 눈물이 또 그렁그렁했다.

“너희 아빠가 원래 그래. 연애 때는 그렇게 순진하게 말주변이 없는 게 좋았는데, 결혼하니까...”


그때, 밖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났다.

엄마랑 나는 놀라서 서로를 쳐다봤다.


“누구지?”

“엄마, 도둑인가 봐.”

“아니야. 훔쳐갈 것도 없는 집에 무슨 도둑이 들겠어. “

“무서워 엄마.”

“괜찮아. 엄마가 나가 볼게.”


엄마는 나를 안심시키고 핸드폰을 쥐어주며 혹시 무슨 일 있으면 119에 전화하라고 말하고는 일어났다.

담담한 척했지만 엄마도 떨고 있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엄마를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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