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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맘의 가족동화

<백이동씨 움직이는 가족상점> - 1화

by 글쓰는 맘



아빠의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동백 아가씨> 노래와 과자 냄새는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동~백~ 아가씨~~”


흥얼거리는 아빠의 목소리는 이제 나에게 자장가가 되었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시골길을 달리는 아빠의 트럭에서 스르륵 잠이 든다.


아빠는 주말마다 나를 트럭에 태워 지방을 돌아다니는 게 늘 마음에 걸리시는 것 같다.

못 배우고 못난 아빠라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지만. 난 트럭을 운전하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좋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한지. 아빠의 이동 트럭에 앉아 있는 나에게 바람과 풀잎이 속삭인다.


“동~백~ 아가씨~~”



- 1화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는 아빠 트럭 안에서 나는 과자 냄새다.

우리 아빠는 트럭을 운전하신다.

아빠의 트럭에는 갖가지 생필품들이 가득 실려있는데, 그중에서도 과자랑 군것질 거리가 많다.

이건 어르신들이 심심할 때 즐겨 드시는 메뉴라고 하는데 나와 입맛이 비슷한 거 같다.

그래서일까, 트럭 문을 열면 과자 냄새가 늘 코를 찔렀다.

그 냄새가 좋아서, 난 아빠의 트럭이 너무 좋다.

게다가 트럭의 운전석에서 흘러나오는 <동백 아가씨> 노래도 너무 좋다.

처음에는 뭔가 지루한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가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를 때 표정과 미소가 왠지 귀엽다.


아빠는 젊었을 때 밴드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엄마와 처음 만난 날, <동백 아가씨>를 부르던 아빠의 목소리에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반했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살 때, 난 아빠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빠가 노래하는 모습은 아주 어린 시절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아빠가 처음 이 멋진 트럭을 운전하게 된 건. 엄마가 떠난 ‘그날’ 이후다.

그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이 트럭을 운명처럼 만났다.

트럭을 만난 날은 신비로운 달빛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그날’을 다시 떠올리려니 멍한 슬픔이 밀려온다.

왜냐하면 ‘그날’ 이후로 우리 집에는 나와 아빠만 남게 됐다.


엄마는 아빠와 꽤 오래 싸움을 하다가 결국 집을 떠났다.

엄마가 집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아빠를 향해 온몸을 부르르 떨며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이젠 무능력한 당신에게 진절머리가 나!”

‘무능력’이라는 단어는 엄마가 자주 썼던 말이다.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인 나는 '무능력'이라는 단어를 작년 3학년 때 엄마에게 처음 들었다.


아빠가 다니시던 작은 공장이 부도가 난 후로 문을 닫았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빠는 정신을 못 차리고 매일 술을 마셨다.

엄마는 한숨을 쉬며 혼잣말로 중얼거리셨다.


“저런 무능력한 인간...”


그 후로, 1년 정도 아빠는 술에 취해 살았던 거 같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의 싸움은 점점 커졌다.


그리고 엄마가 집을 떠나던 마지막 날.

술에 취한 아빠는 엄마를 때렸다.


“이 여편네가, 그렇게 꼴 보기 싫으면 나가!”

엄마는 나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고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한마디로 멍하다.

아무런 느낌도 특별한 감정도 없이.

그날 엄마 아빠의 대화와 엄마의 슬픈 표정, 아빠의 화난 모습만 머릿속에 생생하게 박혀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나에게는, 너무 벅차고 감당할 수 없는 날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결국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처음 듣는 ‘이혼’이라는 단어가 낯설고 무서웠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지금도 내 가슴을 너무 슬프게 울린다.

그렇게 ‘그날’ ‘이혼’이라는 단어로 내 가슴에 먹먹하게 남아있다.


그 후로, 엄마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아빠는 문 앞에 서서 매일 엄마를 기다리셨던 거 같다.

그러다가 답답하셨는지, 집 근처에 사는 덕희 이모를 찾아가셨다.

한참 동안 덕희 이모와 아빠가 긴 대화를 나누셨다.

그때가 엄마가 떠난 후 3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덕희 이모랑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 까?

'화'로 가득했던 아빠의 표정이 '슬픔'으로 가득하게 변했다.

그날, 아빠는 내 손을 잡고 포장마차로 가셨다.

나에게 우동을 시켜 주셨고 아빠는 소주를 한 병 시켰다.

난 술병을 보고 또 술에 취한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무서움이 밀려왔다.

무서워하는 나를 빤히 보시더니.


“반 병만 마실 거야. 그리고 이젠 술 안 마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동만 후루룩 먹었다.

오늘 아빠는 술에 취하지 않으셨다.

대신 다른 날과 다르게 생각이 많은 표정이었다.

아빠는 계산을 하다가 포장마차 아주머니를 보더니 물었다.


“사장님 이런 포장마차 하나 차리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요?”

“왜? 백 씨 포장마차 하려고?”


아빠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그건 아니고...”


아빠와 집까지 걸어가는 골목길이 오늘따라 더 길게 느껴졌다.

아빠는 여전히 무슨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빠, 포장마차 생각해?”

“아니야.”

“그럼?”


아빠는 잠시 긴 한숨을 몰아 쉬셨다.

“앞으로 뭘 해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이지.”


아빠는 다시 크게 한숨을 내 쉬었다.

집까지 걸어가는 내내 어색한 한숨만 흘렀다.

뭔가 고민이 많은 아빠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그때였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지나가는 골목에 세워진 트럭이 보였다.

트럭에는 “이동 상점”이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트럭을 가리켰다.


“저기 봐. ‘아빠 트럭’이네.”


아빠는 내가 가리킨 트럭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빠 트럭?”

“응. 아빠 백이동 씨잖아. 이동 상점, 아빠랑 딱이네!”


나는 아빠를 보며 웃었다.

아빠도 나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셨다.


우리 아빠 이름은 백이동이다.

시골 큰아버지 이름은 일동. 작은 아버지는 삼동이다.

아마 넷째가 아들로 태어났으면 사동이었을 거라고 하지만 넷째 고모 이름은 백명자이다.

넷째가 뿔이 나서 여자로 태어났다며 큰아버지가 명절 때 웃으며 말씀해 주셨다.

어색했던 아빠와 나의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다음 날,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집 앞에 어제 그 트럭이 있었다.

난 놀라서 집 안으로 들어가 아빠에게 물어봤다.

“아빠, 이동 상점이 왜 우리 집 앞에 있어?”

“아빠가 샀어.”

“진짜? 완전 대박! 신난다.”

아빠는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는 나를 보더니.

“아직 우리 거는 아냐. 대금 완납을 못 했어.”


난 아빠가 말한 어려운 단어를 가끔 이해하지 못한다.

“대금 완납이 뭐야?”

“돈이 좀 부족해서 계산을 다 못했다는 뜻이야.”


나는 재빨리 방으로 가서 엄마가 주고 간 통장을 들고 나왔다.


“걱정하지 마. 나 돈 많아.”


아빠는 크게 놀라지 않고 어디서 났는지 묻지도 않고 통장을 받으셨다.

잠시 통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금세 눈가가 슬픔으로 차올랐다.

그리고는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아이고 시간이 이렇게... 밥 차려야겠다."




이 통장은 엄마가 ‘그날’ 나에게 주고 간 거다.

엄마는 우리에게 이렇게 돈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 줄 아셨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집을 떠나던 그날.

아빠가 술병을 집어던지며 소리치던 그날.

가슴 먹먹한 이혼이라는 단어를 알려준 그날.

이 통장에는 그날 엄마와 내가 함께 나눈 비밀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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