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온달과의 만남
온달과 평강공주의 러브스토리를 찾아서
온달과의 만남
그는 어느 초여름 보슬비가 내리는 날 온달성을 찾았다. 초입에는 사극영화 촬영세트장이 자리 잡고 있어 아마 온달성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소백산과 남한강을 경계로 고구려와 신라가 대립하고 있었으니 온달성은 고구려의 요충지가 맞는 것 같았다. 신라가 영토확장을 위한 북진으로 끊임없이 고구려의 후방을 들쑤셔 대중원으로 진출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한 국가가 번창하려면 어쩔 수 없이 진로에 있는 장애물을 돌파하여야 하니 운명적인 것이기도 하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온달산성을 답사하려고 하였는데 그날은 비가 내려 산성까지 올라가는데 장애가 되었다. 어찌하랴, 장애를 넘어서야 나아갈 수 있으니 예나 제나 장애를 돌파하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그날 날씨는 보슬비가 내리고 안개까지 끼어 전망이 탁 트이지 않아 온달산성을 오르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산중턱으로 올라갈수록 미끄러운 암반이 있어 조심해야만 했다. 중턱에는 남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으니 사모정이었다. 거기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한 후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가 온달성을 답사하려는 목적은 있었으나 험하고 미끄러운 산길을 오르다 보니 그 목적 자체를 잠시 잊어버렸다. 어서 빨리 빗길을 뚫고 산성에 도착하는 게 급선무이었고 주변의 풍광은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조망할 수가 없었다. 보슬비와 안갯속의 음산한 분위기는 올라갈수록 더해지고 빗줄기도 굵어져 갔다. 산성을 오르는 중간에 있는 평바위에 비를 맞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두꺼비 한 마리가 보였다. 아마 그를 반겨주려고 마중 나온 것은 아닐 테고 무슨 애틋한 사연을 전해주려는 전령처럼 보였다.
다시 비를 맞고 오르니 안갯속에 희미하게 산성이 보였다. 오르는 중간에서 보았던 비에 젖어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두꺼비의 형상을 닮은 산성이 형체를 드러내었다. 굳게 잠긴 성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우회하여 무너져 내린 석성의 틈으로 해서 성안으로 들어섰다. 성문 안 넓은 터에는 개망초꽃을 비롯한 야생화가 수없이 피어있어 무너진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장군님, 지금 신라군사들이 국망봉을 넘어서 이리로 쳐들어 오고 있습니다. 정찰병의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공격한 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엄청난 숫자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빼앗긴 죽령산성이 없다 보니 이곳에서 방어하기가 힘들겠습니다.”
“어허, 전투의 판세는 수시로 변하거늘 어찌 겁을 먹고 우왕좌왕하는가. 내가 숱하게 전장에서 싸워보았듯이 이기겠다는 마음이 강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야. 그러니 병력을 적군들이 오는 길목 곳곳에 매복시켜 적의 예봉을 꺾어야 하네. 병력의 숫자보다는 임전무퇴의 정신이 더 중한 법이야.”
“장군님, 지금 병력숫자도 그렇지만 식량은 물론이고 화살도 동이 나서 실로 난감합니다. 후원군은 소식도 없고 정보에 의하면 영월 쪽도 이미 패퇴하여 퇴로도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껏 겨우 싸워왔지만 중과부적으로 대세를 뒤엎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이보게, 부장이 지금 무슨 경망한 말을 하는가. 싸움은 끝까지 해봐야 아는 거고 적들도 우리 고구려 군사들의 용맹을 잘 알아 함부로 덤비지 않을 테니 작전을 잘 짜보세. 국망봉에서 내려오는 곳곳의 바위를 엄폐물로 하여 궁수들을 배치하고, 이곳저곳에서 징이나 북을 두드려 적을 교란하도록 하게나.”
“예, 장군님. 이미 저희들은 죽음을 각오하였으니까 죽더라도 이곳 온달산성에서 죽고 적들이 더 이상 진격을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장군께서는 부디 목숨을 부지하셔서 중국대륙으로 나가는 대원정에 다시 참전하셔야 않겠습니까.”이렇게 온달장군과 부장과의 대화는 이루어졌다.
온달장군은 남한강 유역을 사수하고 죽령이북의 땅을 회복하라는 평원왕의 명령을 받았다. 그간 대륙진출을 위한 선봉에 서서 중원을 공략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런데 신라가 한강을 넘어서 지속적으로 후방을 공략해 오니 배후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온달은 잃어버린 땅을 되찾지 않으며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왕에게 맹세를 하였다. 고구려는 전체적인 전력은 신라와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강했지만 대중원의 막강한 당나라와 대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병력을 후방으로 보내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용맹스럽고 명령을 내리면 죽음을 불사하는 온달이 적격이어서 파견한 모양이었다. 평원왕이 온달과 나눈 대화가 있었다.
“온달장군, 내가 어려운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괜찮겠소. 그대는 나의 사위이기에 그 위험한 전장으로 보내려니 마음이 아프오. 배후에서 신라가 괴롭히니 그 화근을 자르지 않으면 북쪽과 남쪽에 끼여 꼼짝달싹을 할 수가 없으니 말이오.”
“전하, 소장이 어찌 그 뜻을 모르겠사옵니까. 나라의 녹을 먹는 군인으로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고토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절대로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저는 언제 죽더라도 나라와 임금님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없을 정도로 그간 행복했습니다.”하고 온달과 평원왕이 나눈 대화였다.
이윽고 신라군대 가 국망봉을 넘어와서 온달산성 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고구려 군사는 여기저기에 매복하여 활을 쏘고 또 육박전을 펼쳤다. 그 기세에 밀려 신라군대 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였다. 또 온달장군이 산성을 지키고 있다니 겁이 나기도 하여 상당기간 관망하였다. 문제는 고구려군의 병참지원이 단절되어 성안에 있는 비상식량으로 견뎌내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적들에게 그런 낌새를 내비출수도 없고 또 무작정 지구전을 펼칠 수도 없었다. 후원군이 오지 않는 게 확실한 이상 적에게 최대의 타격을 입히고 산화하거나 야음을 틈타 후퇴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온달은 맹세한 대로 그곳에서 죽기로 작정하였다. 눈앞에는 아내인 평강공주의 얼굴이 어리고 자식들이 걱정이 되지만 군인의 길은 오직 한길뿐이었다. 죽음, 투항, 자결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이었다. 그는 죽음을 택하기로 하였다. 그가 부하들을 모아놓고 한 말이 있다.
“모두들 잘 들어라. 우리는 이제 포위되었고 밑에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어 후퇴도 할 수 없다. 퇴로가 막혔으니 성문을 나가면 바로 죽음의 길이니, 결사항전하여 싸워야 한다. 성안에서 방어만 한다면 단 며칠을 더 살 뿐 죽음은 정해진 것이니 성문을 박차고 나가 육박전을 하여야 한다.”
“장군, 그러면 숫적으로 열세인데 승리할 수가 있겠습니까. 야음을 틈타서 장군께서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가 후일을 도모하셔야지요. 저희들이 남아서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겠습니다. 장군은 더 큰일을 하셔야 하기에 부끄러워 마시고 소장의 말을 들어주십시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단 말인고. 내가 어찌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려고 한단 말인고. 그것은 고구려군의 수치요 왕명을 거역한 대역죄이고 또 군인은 전장에서 죽는 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길이라 하지 않던가. 대낮 싸움은 불리하니 내일 그믐달밤을 이용하여 적들과 결전을 벌이도록 하세. 그들이 후퇴하도록 끈질기게 하고 1차, 2차, 3차 대기조를 편성하여 내보내도록 하세.”하고 온달은 부장의 간절한 청도 거절하고 비장하게 말했다.
온달은 역시 전장에서 잔뼈가 굵어서 탁월한 전략을 세웠다. 산성을 방어만 한다면 후원군이 없는 상황에서 언제 가는 항복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찌 고구려군이 적군에게 항복을 할 수 있으며 그것도 단 며칠을 연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왕 포로로 잡혀서 불명예를 안으니 당당하게 한판 붙어 죽는 것이 군인의 길이라는 것을 부하들에게 가르쳤다. 그믐날에 어둠을 틈타 제1진을 성밖으로 내보냈다. 육박전이 벌어지고 고구려군이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다시 2진을 내보내니 신라군 지휘부는 매우 당황하여 겁을 먹기 시작했다. 적들은 과연 온달장군이기에 사기도 높고 전술도 탁월하다고 혀를 찼다. 어두운 밤이니까 군사의 숫자도 가늠하기 힘들기에 신라군은 우왕좌왕하였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온달장군은 마지막 3진을 이끌고 출정하였다. 우렁찬 함성에 적들은 겁에 질려 흩어지고 온달의 군사들은 적들을 내몰았다. 드디어 신라군이 필사적으로 후퇴를 하는 것이었다. 적들은 소백산 능선을 타고 국망봉 쪽으로 도망을 가기 시작하여 이번에 확실히 결판을 지어야겠다고 온달은 추격을 하였다. 그때 어둠 속에서 날아온 화살이 그의 목덜미를 찔렀다. 온달이 적의 화살에 치명상을 입었고 부하들은 그들 성안으로 긴급히 후송했다. 신라군들은 혼비백산하여 그 많은 병력이 후퇴를 하였다. 아마 심리전에서 이긴 모양이었다. 적들은 함성과 북소리에 엄청난 군사들이 성내에 있다고 오판한 모양이었다.
그는 다시 잠시동안 과거에로의 꿈에 잠긴 모양이다. 눈을 떠보니 보슬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안개에 파묻혀 주변은 분간하기 힘들었다. 성안에 무수히 들어선 개망초꽃이 바람에 일제히 흔들리니 고구려 군사의 열병식을 보는 듯하였다. 휘익 휘익하면서 귓전을 스쳐가는 바람소리는 온달장군의 호가소리 같기도 하였다. 성밖에 무수히 서있는 잡목들이 서로 엉켜 부딪히는 소리는 고구려 군사와 신라 군사의 칼이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날은 아직 저물지 않았는데 주변은 어두웠고 무너진 석성 틈을 통과하는 바람소리는 곡성 같기도 하였다. 그는 더 이상 혼자서 그 음산함을 견딜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처음 올라갈 때 잠깐 쉬었던 평바위 옆에 비에 젖어 쉬고 있던 두꺼비를 또 만났다. 무려 한 시간이 넘었는데도 그 장소에 그대로 배를 불룩불룩 목을 볼록볼록하며 숨을 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누구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하기도 비를 맞으며 그 옛날을 그리는 듯하기도 하였다. 그는 두꺼비가 한자리에서 한치도 자리를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게 신기하였다. 그가 다시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서 무슨 사연을 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도 그 자리에서 두꺼비가 이제 떠나기를 바라며 잠시 그 평바위에서 쉬어가기로 하였다. 시간이 제법 또 흘렀는데도 꿈적도 안 하는 게 아닌가.
그는 잠시 잠깐 생각에 잠겨 과거로 돌아가 보았다. 온달이 총각시절에 어머니와 나눈 이야기가 있었다.
“애야, 네가 빨리 장가를 가야 내가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는데 어쩌면 좋으냐. 집안이 변변치 못하다 보니 글도 배우지도 못하고 죽으나 사나 나무나 하고 일만 하고 있으니 이 어미가 가슴이 아프구나. 그렇다고 누가 우리 집에 시집을 오려고 하겠나 마는 천생연분이 있으면 좋겠다.”
“어머니,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그냥 편안하게 지내십시오.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은혜만 하더라도 갚기가 힘든데 어찌 마음 아파하십니까. 또 동네에서 저를 바보라고 하는데 어찌 색시가 우리 집에 오겠습니까. 저는 그냥 어머니 모시고 사는 게 제일 행복합니다.”하고 온달이 어머니하고 나눈 대화였다.
온달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효도를 다하며 살아갔다. 집이 워낙 가난하여 장가를 갈 형편도 안될 뿐만 아니라 배운 게 없다 보니 세상 물정을 몰라 바보라고 사람들이 대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워낙 우직하고 순진하고 죽도록 일만 하는 걸 보고 바보온달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온달은 화를 내지 않고 오직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그 고을에서 온달이 홀어머니에게 효도를 잘한다는 소문이 퍼져나갔고, 장가도 못 가면서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바보온달이라고 나라 전체로 퍼져 나갔다. 어느 집의 어린 딸이 울고 하면 자기 부모가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내 버릴까.”하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이었다. 그 말을 들은 어린 딸은 온달에게 시집가기가 싫어 울음을 뚝 그쳤다는 이야기가 생겨났을 정도였다. 온달은 바보가 아닌데도 자신을 챙기지 않고 오직 홀어머니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에 욕심도 없는 바보 같은 사람으로 평가하였던 것이었다. 어찌 보면 장가를 가서 아내와 사랑을 나누고 자식을 낳는 것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그런 욕심조차 없으니 바보라고 할만하였다. 그 이면에는 효도는 물론이고 고귀한 희생정신이 숨어있었던 것을 세상은 바보라고 풍자하였던 것이었다.
어느 날 평원왕이 울보인 딸에게 한 이야기가 있었다.
“애야, 울음을 그쳐라. 무엇이 못마땅하여 매일 바보처럼 울기만 하느냐. 자꾸 그렇게 울고 있으면 나중에 바보온달에게 시집을 보내 버린다. 그러니 울음을 그치거라.”
“온달은 글도 모르고 죽으나 사나 일만 하는 바보이니까 네가 그에게 시집을 가면 죽을 고생을 하게 된단다. 그러니 울음을 그치면 잘 생기고 똑똑한 낭군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게 될것이니라.”하고 평원왕이 또 딸에게 한마디를 더하였다.
온달은 이렇게 하여 고구려에서 바보로서는 최고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평원왕의 딸은 자기 아버지가 말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자기는 바보온달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 정해진 것처럼 알았으니 어찌 보면 그 역시 진짜 바보가 맞는 것 같기도 하였다. 나중에 평강공주라고 호칭하는 그녀는 자기 아버지가 울보이자 바보라고 하였으니 바보들끼리 결혼을 하는가 보다 하고 믿었다. 평강공주는 나이가 들어서도 바보온달에 대한 관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의 뇌리에는 온달과의 결혼이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이미 각인되었다. 어느 날 평원왕이 딸인 평강공주에게 말을 건네었다.
“우리 평강공주가 이제 시집을 가야 할 때가 되었는데 좋은 신랑감을 구해볼까 한다. 이제부터 궁궐을 떠나서 살아가야 하고, 잘생기고 많이 배워 장래가 촉망되는 남편감을 고르고 있는데 마음을 즐겁게 가지거라.”
“아바마마, 저는 예전에 말씀하신 대로 바보온달에게 시집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저가 그동안 항상 온달을 마음에 새기면서 어떻게 잘 살아갈까를 생각해 왔습니다. 아바마마께서도 저의 선택을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애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옛날 그 말은 네가 하도 바보처럼 울어대니까 너에게 겁을 주려고 그랬는데 그 뜻을 모른단 말이더냐. 지금 그냥 빈말을 하는 게 맞는 게지. 허허.”
“아바마마, 저가 어찌 빈말을 하겠습니까. 저의 마음속에는 온달외에 다른 남자가 없습니다. 부디 저의 생각대로 온달과의 혼인을 성사시켜 주시옵소서. 소문으로는 바보라고 하지만 홀어머니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다 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여깁니다.”
"애야, 정말로 온달한테 시집을 갈 작정이란 말이냐. 어찌 공주가 그런 천민이자 못 배운 바보에게 시집을 가려고 한단 말이냐. 그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내가 그냥 해본 소리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그대로 따르려고 하니 참으로 바보스럽구나.”
“아바마마, 그러니 저가 바보이니 신랑도 바보인 온달과 맞지 않는가요. 저의 마음은 이미 정해졌으니 저를 쫓아낸다 하더라도 온달한테 시집을 가겠습니다. 저가 그에게 글도 가르치고 무술도 배우게 하여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하고 평원왕과 평강공주 간에 나눈 대화였다.
이렇게 하여 평강공주는 평원왕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코 온달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평강공주는 거의 쫓겨나다 시피하여 온달의 집으로 찾아가서 혼례를 올렸다. 그녀는 온달에게 천자문을 가르쳐 글을 읽을 수 있게 하였고, 궁궐에 있던 무사를 데려와 그에게 무술을 가르쳤다. 온달은 못살고 바보라고 소문난 자기에게 찾아와 부부의 연을 맺은 평강공주의 바람대로 이제 글도 알고 무술도 뛰어난 인물이 되었다. 그 소문은 장안으로 퍼져 나가 평원왕의 귀에 들어왔다. 어느 날 평원왕이 사위인 온달을 불러 나눈 이야기가 있었다.
“이보게 온달사위. 그간 딸이 자네에게 시집보낸다고 한걸 그대로 믿고 결혼을 하게 되었구만. 우리 공주가 철이 없어 그런 것인지 나름대로 생각이 깊은 것인지 나의 빈말 때문에 자네와 맺어졌군 그래. 글도 잘 읽고 무예에 특출한 자질이 있다 하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로다. 이제부터는 고구려를 위하여 충성을 다해주게. 나는 자네를 정식으로 사위이자 장군으로 임명할까 하네.”
“마마, 저같이 어찌 비천한 자를 부마로 삼으시고 그기에다가 장군으로 임명하신단 말씀이시옵니까. 저는 그 고마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저 몸이 가루가 될 때까지 나라와 임금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겠습니다.”하고 온달은 평원왕의 말에 감읍하여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사실 온달은 평강공주를 아내로 맞고 난 후 사람 자체가 크게 변했다. 그간 홀어머니를 모신다고 꿈도 못 꾼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공주가 홀어머니를 시어머니를 대하듯 받드니까 너무 감격하였었다. 그기에다가 글을 읽고 쓰게 되고 무예까지 배웠으니 이제 그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평강공주는 왕비인 어머니로부터 몰래 보석등 폐물을 많이 받아왔다. 그것을 팔아서 돈을 만들어 집을 새로 짓고 하여 집안을 바로 세웠다. 시어머니를 잘 모셨으며, 돌아간 후에 장례도 치러 마을 뒷산 산소에 안치하였다. 시어머니는 생전에 며느리인 평강공주에게 하늘이 내려보낸 선녀라고 여기며 잘 대해주었다. 온달 역시 아내인 평강공주는 물론 자기에게 안타깝지만 시집을 가게 한 평원왕에게도 고마움을 느꼈었다.
다시 그 당시로 되돌아가보았다. 온달성 전투에서 적들은 물러가고 온달은 치명상을 입고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어떻게 어둠 속에서 급소인 목덜미를 화살에 맞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아마 그것은 온달의 운명이라고 보아야 하였다. 그날 저녁을 못 넘기고 온달은 세상을 떠났다. 그 죽음을 일체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였다. 장군이 죽은 걸 적군이 안다면 급습을 또 해올 것이고 군사들이 안다면 사기가 크게 저하될 것이었다. 그런 보안을 잘 유지하면 당분간 온달산성을 지킬 수가 있는 것이었다. 며칠 후 온달의 시신을 비밀리에 옮기는 운구작업이 있었다. 산아래로 옮겨 남한강물을 따라 서해로 옮겨 평양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그때까지 남한강 물길은 고구려군이 통제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시신을 옮기는데 두꺼비같이 생긴 바위 부근에서 꼼짝을 안 하는 것이 아닌가. 며칠을 그 자리에서 퍼져있어 진척이 안되는데 평강공주가 내려와서 관을 부여잡고 울었다. 그리고 목이 메인 목소리로 한마디 하였다.
“이제 몸은 죽었는데 어찌하리요. 어서 집으로 돌아 갑시다.”하고 흐느끼니 관이 움직였다. 그의 시신은 영춘에서 남한강 물길을 따라 서해로 가서 다시 평양성으로 운구되어 그곳에서 장례가 치르 졌다. 평원왕은 그의 시신을 보고 말을 하였다.
“그대는 참으로 충신이로다. 내가 그대의 자질을 알아서 장군으로 임명하였더니 중원에서 연전연승의 전공을 올렸고, 후방이 불안하니까 그대를 남한강변으로 내려보내어 장렬한 죽음을 맞지를 않았던가. 그대가 고토를 회복하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약속 아닌 약속도 지켰으니 깊고도 거룩한 마음이로다.”하고 평원왕은 말을 하였다.
참으로 감동적인 죽음이었고 약속을 지킨 그 신의는 평강공주가 지킨 약속과도 비슷한 것이니 서로는 부부이기 이전에 참다운 인간이었다. 하늘은 분명히 온달을 지상으로 내려 보내 시련 속에 결국 인의를 실천하게 하였고, 평강공주 역시 선녀로 내려와서 온달의 성공을 이끌었으니 하늘의 뜻은 깊고도 신묘하기만 하였다.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고사가 딱 들어맞는다. 고대 중국에 형가라는 자객이 있었는데 자기를 알아주고 자신의 어머니를 잘 모시도록 도와준 연나라 태자를 위하여 진시황을 암살하여 진나라로 떠나갔다. “장사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하는 비장한 노래를 부르면서 역수를 건넜던 것이었다. 비록 암살에는 실패했지만 자기를 알아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것이니, 온달의 그것과 닮지가 않았는가. 온달은 자기를 위하여 어머니를 위하여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할 바를 다한 평강공주를 위해서 목숨을 버렸다. 또 사위로 받아들여 장군으로 임명한 평원왕에 충성하기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중원에서 연전연승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남한강 온달성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으니 또 자신을 알아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다 바친 것이었다.
그는 비 내리는 온달성을 답사하고 내려오다가 마당바위에서 또 두꺼비를 만났다. 그 두꺼비는 그 옛날로 돌아가서 회상하게 한 누구의 분신일까가 궁금해졌다. 그토록 긴 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누구를 기다리는 그 절실함과 애절함이 그에게 전해졌으니 그것을 느끼는 그는 또 누구의 분신이던가. 그는 아무래도 온달산성과 두꺼비 바위에 반응하니 그 역사의 현장에서 싸운 군사이던지 온달의 용맹성에 감동한 평원왕이던지 주인공인 온달인지 이상한 생각이 감돌았다.
다시 산길을 따라 내려오니 탁 트인 곳에 사모정이라는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돌이로다. 아니 풀이로다. 장군은 맹세하고 출정하였네.’ 라는 구절이 눈길을 끈다. ‘충정은 돌처럼 굳어져 굳건하고, 혼령은 풀처럼 흐느끼며 하늘거린다’ 라는 표현 같았다.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에서 죽어서도 맹세를 지키고자 하는 온달 장군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思慕亭! 누가 누구를 사모하는 건가. 온달이 평강공주를 평강공주가 온달을, 민중들이 온달을 모두가 해당되는 것이었다. 약속을 지킨 신의, 보은을 위한 충정, 사랑을 위한 헌신에 대한 추모를 하기 위한 애절한 장소에 애절한 현판이 걸려있었다.
그는 이제 쏟아지는 폭우를 피해 사모정에 앉아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눈앞에는 희미하게 남한강이 전개되고 강물 위에는 물안개가 애달프게 피어올랐다. 온달을 추모하기 위해 피우는 향불의 연기처럼 사모정을 감돌았다. 그는 깊은 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장군, 이제 몸은 죽었는데 이대로 있으면 어쩌리오. 어서 집으로 갑시다. 그간 긴 세월 동안 나라를 위하여 중원에서 다시 이곳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몸은 하나이지만 얼마나 싸웠던가요. 이제 싸움도 증오도 없는 그 편안한 집으로 갑시다”하고 평강공주가 그의 관을 부여잡고 흐느끼며 말했다.
“당신은 나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나이다. 그것은 겉으로 대하는 다정함도 아니고 보살핌도 아닌 오직 진정한 마음을 갖고 매사를 대하도록 일깨워준 것이외다. 나는 지금 마음은 슬프지만 당신은 자식으로서 할 바를 다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다 바친 그 효성과 충정을 이루고 갔으니 더 이상 울지는 않으리다.”하고 평강공주는 이제 눈물을 닦고 관을 어루만지며 일어섰다.
어떻게 꿈적도 하지 않던 온달의 관이 평강공주가 한 말을 듣고 움직였는지가 궁금하였다. 사람의 육신은 죽었으나 영혼은 살아 있는 것이니 그 장소에서 꿈적을 안 했다는 것은 항상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평강공주를 그렸기 때문일 것이었다. 온달은 그 전망대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앉아서 공주를 그리워하였기에 그 장소에 그의 혼이 감응하여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조선시대 세조의 명에 의해 안동도호부 종루에 걸려있던 동종을 오대산 상원사로 옮기려는데 죽령고개에 퍼져 앉아 며칠간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동종의 젖꼭지 한 개를 떼어내어 안동 종루밑에 묻었더니 종이 움직였다. 또 하나 단종비각에 설치하려고 제작한 비석을 운반하려는데 영월 장릉 앞에서 트럭이 움직이지 않자 김진정행보살이 간절히 발원기도를 하니 움직였다는 설화가 있기에 설득력이 있었다.
그는 다시 비가 주춤한 틈을 타서 산아래로 내려간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내려가니 빗길을 헤집고 투구를 쓰고 창과 칼을 든 군사들이 우르르 몰려 올라오고 있지 않은가. 다시 위쪽에서는 바람소리인지 고함소리인지 분간이 안 되는 함성이 들려오고 좌우에서는 북소리까지 울려 퍼지니 소름이 오싹 끼쳐왔다. 그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가서 살을 꼬집어 보았는데 생시가 맞았다. 그는 자신이 고구려 시절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날 아침에 버스를 타고 온달성 입구에 내려서 산성을 답사하였고, 또 입고 있는 등산복이나 신고 있는 등산화가 현재 그대로이고 얼굴을 만져보니 수염도 잡히지 않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의 몸은 하나인데 정신은 과거로 가버렸단 말인가. 그날따라 이해하기 힘든 여러 가지 상황을 보지 않았던가. 온달산성을 오를 때 평바위에서 비를 맞고 쉬고 있던 두꺼비를 만났고, 온달산성 안에서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는 곡성을 듣고 또 호가 소리를 듣지 않았던가. 내려오던 길에 오를 때 쉬었던 평바위에서 한 시간 넘게 그대로 비를 맞고 있던 두꺼비를 그대로 만나지 않았던가.
이곳 소백산 자락은 영월하고 가깝기 때문에 산신령이 된 단종의 혼이 감돌고 있을 것이며, 거기에다가 온달장군의 혼도 함께 하기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현혹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날따라 보슬비가 내리고 안개까지 끼어 음산한 분위기이어서 산성을 오를까 말까 주저했는데 기어코 홀리고 말았단 말인가. 그는 눈앞이 캄캄하고 불안하여 그 자리에 퍼져 앉고 말았다. 현기증이 나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어릴 적 시골 상엿집을 지날 때 겁을 먹고 며칠간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적도 있었고, 밤길을 가다가 길가에 구렁이를 만나 기절초풍하고 혼비백산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비록 그 구렁이는 새끼줄이었는데 겁을 먹다 보니 구렁이로 보였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현 상황의 진실을 알고 싶었지만 좀처럼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는 혼자서 야간산행을 할 정도로 담력도 있고 좀처럼 겁을 먹지 않은 정신력이 강하다고 남들이 인정하고 있지 않았던가. 어찌하였던 그 미궁에서 빠져나와야 했기에 그는 앞에 보이는 헛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 보았다.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꿈도 생시도 아닌 상황에서 정신을 되찾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때 아래쪽에서 올라오던 군사들이 나누는 대화가 뚜렷이 들려오는 게 아닌가.
“아이구, 오늘은 비가 와서 고생을 실컷 하네. 저 산아래 있는 산성까지 이런 장대비를 맞고 올라가야 하니 미끄러지지 않고 갈 수 있을지 걱정이네. 왜 하필 이런 날을 날을 잡아 개고생을 시키는지 모르겠네.”
“그래 말일세. 오늘은 좀 쉬는가 했는데 갑자기 출발하라고 하여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허겁지급 올라왔는데 벌써부터 배가 고프네. 아이구 빨리 잘 보여서 장군이나 되어야지 졸병 노릇하기가 정말 힘드네.”
“야, 이 사람아. 그게 제 뜻대로 되는 감. 사람은 지 분수를 알아야 하고 능력대로 자리를 얻는 법일세. 나는 어찌하던지 이 자리를 안 잃고 고생스럽지만 계속하고 싶네. 그래야 여편네 하고 새끼들을 먹여 살리지 않겠는가.”
“맞아, 우리같이 못 배우고 빽이 없는 사람들이 어찌 높은 자리를 넘 볼 수가 있겠는가. 나는 집에서 갑자기 연락받고 나오느라 핸드폰도 못 가져오고, 오다가 편의점에서 햄버거 하나만 사 먹고 왔더니 지금 배가 고파 죽겠다.”
“그래 말일세. 을지문덕 장군이나 온달장군 같은 배역을 맡아야 하는데 항상 군졸 같은 엑스트라이니 수당도 뻔하고 고생은 진땅 하고 다음번에는 그만둘까 생각 중이네.”하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좀 수상했다. 그는 그대화에서 과거에서 쓰지 않는 언어를 보고 생시임을 직감하였다. 그때 밑에서 군사 한 명이 소리를 치고 있었다.
“거기서 내려오시는 분은 누구신가요. 이런 우중에 등산을 갔다 오시는 모양인가 본데 하필 이런 음산한 날에 오셨소. 우리야 밥 먹고 살려고 비를 맞고 개고생을 하고 있지만서도요.”
“아이구, 여러분들은 사극영화를 찍기 위해 올라오시는 배우들이시군요. 나는 비도 오고 음산한데 무엇인가에 홀려 실성할 뻔하였다니까요. 무슨 영화를 찍기에 이런 날씨에 출연을 하셨나요.”
“허허, 손님께서 우리 보고 배우라고 하니 웃음이 나오네요. 그냥 일당을 받고 하는 엑스트라입니다. 그냥 출장이다고 하면 될걸 출연이라고 하니 기가 차네요. 우리가 촬영하는 영화는 ‘연개소문’입니다.”하고 그 배우이기도 일당을 받는 엑스트라이기도 한 노무자들이 말을 하였다.
그는 산아래 사극영화 촬영세트장 옆에 있는 주막으로 들어가서 그날의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온달산성은 이름 그대로 예스럽고 애절하고 신비스러웠다. 그런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비가 내리면서 안개가 끼면서 홀로 간 산객의 혼을 빼앗았으니 온달의 혼이 그를 혼내주었다고 보였다. 몇 시간 동안 그를 역사의 현장에 푹 빠져 과거로 돌아가게 하였으니 환상 속에서 온달과 그 군사들을 만나고 왔었다. 그날 그는 한 편의 드라마를 찍기 위해 일부러 그런 날씨를 택해 산성을 오른 연출가 같기도 하였다. 그것은 자아자찬 일뿐이고 남들의 평가는 정반대일 것이었다. 왜 하필 그런 음산한 날씨에 간도 크게 혼자서 위험한 빗길을 타고 산성까지 올라갔다는 말인가 하고 말이다. 남들이 보면 바보라고 하였을 것이고 그러니 같은 바보인 온달을 찾아서 그곳으로 갔다고 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