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강선대의 추억
기생 두향과 퇴계 이황의 러브스토리
강선대의 추억
그해 겨울은 무던히도 추웠다. 완락재에 놓아둔 매화화분이 내년을 기다리며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 벌써 이 화분을 받아 키운 지 10년이 넘었고 매년 정월이면 꽃망울 터트려 그윽한 매향을 서재 가득히 풍기지 아니하였던가. 그런 뜻이 담겼는지 면학의 열정을 예열시켜 주고 있으니 연인이기도 형님이기도 군자 같기도 하였다. 퇴계는 조그만 종지에 물을 담아 살며시 뿌리에 뿌려본다. 이물은 생명수이기도 자신의 정성이기도 애정이기도 한 것인가. 벌써 죽령을 넘어 단양을 떠난 세월만큼 매화는 더 자랐으나 키는 별반 크지 않았고 가지는 조금 벌어져 누구를 껴안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퇴계는 완락재에 앉아 과거로 돌아가 보았다.
“나으리, 이제 가면 다시 보지 못하시겠지요. 그것도 저 높은 죽령을 넘어 풍기로 가시니 미천한 저와 다시 만날 수가 있으시겠는가요. 그동안 딸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연인처럼 대해주셔서 그 은혜를 잊을 수가 없사옵니다.”
“그래, 두향아. 내가 여기서 너를 만나 마음의 안정을 찾고 그간 잊고 있었던 인생의 즐거움을 되찾았었다. 어찌 그리 마음이 부드럽고 시와 거문고 등 예능에 재질이 있다는 말이고. 나도 너와 헤어지려고 하니 가슴이 미어진단다.”
“나으리, 저를 두고 가시려면 이 치마폭에 시를 한수 적어주고 가시옵소서. 이 몸이 나으리가 그리울 때마다 그 시를 읽으면서 고이 간직하겠사옵니다. 그리고 이 매화화분은 저가 정성껏 기른 것이니 저가 보고 싶을 때 저라고 여기면서 잘 보살펴 주시옵소서.”
“오냐, 나이도 어린 네가 어찌 이렇게 마음이 깊다는 말인고. 어서 치마폭을 앞에 내놓아라 내가 뜻깊은 시를 한수 적어 주겠다. 이 매화가 너의 모습처럼 청초하고 지조가 있게 보이는구나. 내 방에 두고 항상 너를 대하듯이 물을 주고 잘 기르겠다.”하고 퇴계와 두향은 이별을 앞두고 나눈 이야기였다.
퇴계는 단양군수로 부임한 날 이방으로부터 고을 내 여러 사항을 보고 받고 업무를 시작하였다. 저녁이 되어 관아의 정원을 거닐고 있으니 소백산 위에 걸린 초승달이 미인의 아미눈썹처럼 그윽하고 소슬바람이 우수를 불러일으킨다. 몇 년 전 둘째 부인하고도 사별하고 짝 없는 혼자가 아니던가. 그날따라 가을바람 따라 말할 수 없는 고독감이 밀려왔다. 여인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채울 수 없는 공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지금껏 세속의 욕망이 솟아오르면 서재에 들어가 성현들의 가르침을 적은 글을 읽었지만 그날 저녁만은 부임 첫날이고 해서 마음이 정돈되지 않았다. 그는 관아의 업무 외에 돌아가는 민심을 듣기 위해 이방을 불렀다.
“이방, 단양은 예로부터 산수가 좋아 단양팔경이니 하는 명승이 즐비한 곳이 아니던가. 내가 이곳보다는 고향이 가까운 소백산 너머 고을을 원했는데 의외일세 그려. 그래도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적어보고 조용한 곳에서 격물지치지의 진리를 탐구하고 싶네. 물론 목심관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고 말일세.”
“사또, 저가 생각할 적에도 외로우신 것 같기에 힘닿는 대로 도와드리겠습니다. 관아업무는 저가 차질 없이 관리할 테이니 학문탐구와 시문창작에 힘을 쏱으십시요. 그리고 내일모레에는 남한강변 강선대라는 명소에서 환영 연회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때 거문고도 잘 타고 시도 잘 짓는 관기를 한 명 붙여 여독을 풀어드리려고 합니다.”
“허허, 괜스레 번거로운 행사를 하지 마시게. 그냥 말을 타고 단양팔경 중 이름난 곳을 조망만 하고 싶네. 고을의 수령이 오자마자 향연을 열면 살기 힘든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냥 소소하고 조용히 준비하게나.”
“예, 사또께서는 듣던 대로 훌륭한 목민관이 맞으신 것 같습니다. 우리 고을의 백성들이 복이 아니겠는가요. 연회는 아주 간단히 하고 그래도 시중을 드는 관기 한 명은 부르도록 하겠습니다.”하고 퇴계와 이방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이방은 퇴계의 부임 연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지금껏 여러 고을의 수령을 하고 중앙관직에도 근무하였지만 퇴계는 유흥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나마 한다면 시연을 여는 등 학문과 가까이하였다. 이런 성품을 소문으로 듣고 이방은 수령의 취향에 맞추어 연회를 간소하게 준비하게 되었다. 이방은 관기 중에서도 고혹적이고 육감적인 창기 대신에 단아한 자태와 예술적 재능을 지닌 예기를 부르기로 하였다. 단양에서도 유명한 남한강변 금수산 아래에 있는 강선대에 공식적인 환영행사가 끝나고 다음 차례인 연회가 열렸다. 가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퇴계의 성향에 따라 어느 어린 예기가 등장하여 거문고를 탔다.
“오우, 그 어린것이 거문고를 아주 심금을 울리도록 잘 타네. 그 소리를 들으니 애절하기도 하고 감미롭기도 하네. 내가 좋아하는 운조이니 어찌 내 마음을 그리 잘 안다는 말인가.”
“사또, 저 애는 아직 어리지만 그야말로 거문고에 능하고 시어를 읊기도 하는 예기입니다. 앞으로 가까이 불러 허전하실 때 수청을 들게 하겠습니다. 저 애의 기명은 두향이라고 합니다.”
“두향이라, 두견새가 우는 듯 애절하고 노래와 글 속에 향기가 배어 나온다는 뜻이 들어있는 것 같구려. 내가 음악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금 그 거문고 소리는 나의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리는 것 같구려”
“사또, 다음번에도 이곳 강선대로 오셔서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물과 소백산에 걸린 달을 보면서 두향이와 함께 음풍농월을 하시지요. 저 애는 아주 시를 잘 짓기도 하지만 시를 잘 이해하기도 하답니다. 서로 운을 주고받으면서 시를 지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하고 강선대에서 두향과의 첫 만남은 이루어졌다.
어느 날 퇴계는 퇴청한 후에 마음이 허전하여 관아 안에 있는 만월정이라는 정자에 올랐다. 지금껏 흐른 세월을 뒤돌아 보면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이 많았던가. 첫째 부인인 허씨가 둘째를 낳고 떠나버렸고. 2년 전에는 둘째 부인인 권씨마저 세상을 등지지 않았던가. 거기에다가 어미 없이 자란 둘째 아들을 얼마 전 오래 앓던 지병으로 보내버렸으니 그의 심정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공허하였다. 잘 안 마시는 술도 입에 자주 대게 되고 한 번씩 여인의 품이 그리워지기도 하였다. 나이는 마흔을 넘었지만 그래도 내재된 열정은 젊은이 못지않았다. 그런 심정을 이해해 주고 대화를 나누려고 하나 어느 누구도 와닿지 않았다. 그간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던 학문도 이제 좀 쉬고 싶을 정도로 마음자체가 가라앉았다. 이런 퇴계의 마음을 아는지 이방이 전번 강선대에서 만난 두향을 퇴계의 침소로 보냈다.
“어허, 이 늦은 저녁에 어찌 이곳을 들렀단 말이더냐. 전번 강선대에서 보고 두 번째이구나. 거문고 솜씨는 이미 알았고 시를 잘 읊는다고 하던데 한번 들어보고 싶구나. 자, 우선 술을 한잔 따라주거라. 자작이라도 하려는 나의 마음을 이방이 알아서 너를 부른 모양이구나.”
“나으리, 이 미천한 기생을 어찌 그리 칭찬해 주신단 말씀이시온가요. 객고에 외로우신 것 같아 곁에서 술을 따라 드리고 거문고를 한번 타드리리다. 시는 흥취가 올라야 나오는 법이기에 나중에 서로 운을 주고받으면서 짖겠사옵니다.”
“오, 그래. 내가 먼저 운을 띄울 테니 같이 한번 지어보자꾸나.”하고 술이 몇 순배 돌자 퇴계가 말했다.
“닭 밝은 만월정에 올라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니.”하고 퇴계가 먼저 운을 뗀다.
“소리 없이 흘러가는 물은 누구의 울음인지 애달프기도 하네.”하고 두향이 화운 한다.
“그것은 사십 평생 홀로 살아온 나그네의 발자취이련가.”
“그 마음 달래주려고 초생달이 살며시 방문을 열어주었네”하고 퇴계와 두향이 한수시를 주고받아 만들었으니 그 시가 암시하는 바가 야릇하다.
듣던 대로 두향은 시를 알아듣고 짓기도 하는 해어화이었다. 퇴계는 그 순간 하늘이 내린 천의무봉의 선녀를 만났다고 환상에 빠져들었다. 이토톡 간절한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도 알아주었으니 필시 인연이라고 여겨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두향이 따라주는 술을 몇 순배를 더 하니 그 찬서리 같은 이성은 마비되어 가고 마음속에 잠복되어 있던 감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주고받는 시도 그에 맞추어 점점 빨라지고 또 깊어진다. 어느 임계점에 이르니 지탱할 수 없을 정도의 사모의 정이 폭발하려고 한다. 퇴계는 손을 뻗어 두향을 끌어당겨 가슴에 품어 본다. 그윽한 분냄새가 오래 동안 음미하지 못한 향수를 자극하여 얼굴을 끌어당겨 마주한다. 한쌍의 원앙이 서로를 애무하듯이 병풍뒤에 스르르 무너져 내린다. 소백산에 감도는 구름이 봉우리에 걸려 한줄기 비를 잠시잠깐 내렸다.
퇴계는 두향을 품어 하룻밤의 운우지정을 나누었다. 비록 딸 같은 나이의 기생이지만 그동안 외롭고 메말랐던 그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그 얼마나 긴 세월 학문에 파묻혀 공자왈 맹자왈에다가 주자왈 하였던가. 그 학문의 심오한 경지인 격물치지를 궁극으로 삼아 공부하였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도구는 아니었다. 마음이 울적하고 쓸쓸할 때 책 속의 성현들의 가르침도 답을 주지 못했고, 같이 면학하는 선비들 역시 고루하기만 하였지 해결해주지 못했다. 퇴계는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본능이라는 진리 아닌 진리를 애써 외면하여 왔던 게 사실이었다. 때로는 냉철한 이성을 마비시켜 본능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도 자연의 이치라고 여겼다. 이제부터 두향과는 돌이킬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가 되어버렸고 그 둘의 영혼은 이미 하나로 감응하는 단계까지 이르고 말았다.
어느 날 도산서원에서 퇴계는 조용히 정원을 거닐었다. 열정이라는 우물가에서 샘물을 한 바가지 마시고 강변 쪽에 홀로 서있는 자신을 닮은 등이 굽은 소나무를 발견하였다. 그 소나무는 제법 밑동이 굵었고 그 나뭇가지를 보니 바람과 눈에 꺾이고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였다. 퇴계는 그 소나무에 자주 끌리는 게 자신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그는 시간만 나면 그 소나무를 찾았고 방에 들어와서는 매화화분을 찾았다. 어찌 보면 매화는 두향이고 그 소나무는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화화분을 이제는 자유스럽게 놓아주어 그 혼을 담은 매화가 자신이라고 여기는 소나무와 마주하여 서있기를 바라보았다. 제자들이 퇴계가 매화를 아끼고 그 외로운 등이 굽은 소나무도 자주 찾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어느 날 제자들이 모여 나눈 이야기였다.
“김선비, 내가 선생의 최근 거동을 살펴보고 있으니 매화를 아끼는 것은 물론이고 서원 마당 끝에 있는 등 굽은 소나무 곁으로 자주 가고 있다네. 아마 그 소나무가 자신의 분신이라고 보는 것 같기도 하단 말일세.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로 선생께서 자기가 죽고 나면 화분에 있는 매화가 버려질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는 것 같기도 하단 말일세.”
“허허, 조선비는 만물을 그냥 보지 않고 그에 담긴 사연을 항상 밝히려고 한단 말일세. 내가 생각할 적에도 선생님이 단양에 두고 온 두향을 그리워하고 있고 죽어서도 마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고 보이네. 이참에 소나무와 마주 보는 서원 뜰에 매화화분에서 열린 매실을 발아시켜 나무로 심어 보면 어떨까 하네.”
“아, 김선비가 어찌 그리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단 말인고. 선생님 모르게 내년에 매실을 발아시켜 모종을 만들어 봄세. 그리고 조금 자라면 마당 좋은 자리에 옮겨 심고 말일세.”
“맞아, 두향의 혼이 그 매실에 담겼으니 그 매화나무가 등 굽은 소나무를 마주 보며 세세년년 정을 나누게 되니 선생께서 떠나가시더라도 마음이 편하실 것 같네.”하고 제자들 간에 나눈 대화이었다.
이듬해 매화화분에 열린 몇 개의 열매 중에서도 튼실하고 정감 있게 보이는 것을 따서 땅에 묻어놓았더니 새싹이 나오는 게 아닌가. 그 어린 묘목을 다시 일 년간 애지중지 키우니 제법 키도 크고 튼실하여 서원 마당 담벼락 옆에 옮겨 심었다. 그 나무는 자라고 자라 첫 꽃을 피웠다. 어느 한겨울 퇴계는 서원 마당을 거닐다가 담벼락 옆에서 몇 송이 꽃을 피운 매화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는 상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마 매화나무는 죽령을 넘어온 것이라고, 그것도 두향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제자들은 일체 자기들이 심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먼발치에서 퇴계선생이 매화 곁에서 생각에 잠겨있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뜻이 정확히 들어맞았다고 믿었다.
다시 퇴계는 옛날로 돌아가 보았다. 단양군수로 부임한 지 열 달이 안되어 풍기군수로 발령이 나자 퇴계는 크게 당황하였다.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마당이기도 하지만 정이 든 어린 두향을 두고 떠난다는데 가슴이 미어지기에 장차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심하였다. 다음 날 이방을 불러 앞으로의 대책 겸 부탁을 하게 되었다.
“이방, 이 무슨 날벼락같은 소식인가. 내가 이제 이곳에 터를 잡고 오래도록 근무하고 싶은데 정말 난감하네 그려. 무엇 보다도 두향이의 앞길이 걱정이 되어 면천을 하여 나와 혼인을 할까도 생각해 보았다네. 어떤 방도가 없겠는가.”
“사또, 아쉽지만 어떠하겠나이까. 제가 보기에는 두향이 마음이 걸리는 모양이신데 아무리 면천을 하여 혼인을 한다고 하지만 과연 세상이 그것을 받아들이겠는가요. 그것은 어렵기에 정 그러시다면 기적에서 풀어주어 자유의 몸이 되게 해 주시는 게 상책일 것 같습니다.”
“허허, 면천이야 내가 해줄 수 있지마는 어떻게 생계를 꾸려 갈 수가 있겠는가. 내가 돈을 보탠다 한들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고 아무리 봐도 방도가 보이지 않네. 데려갈 수도 없고 남겨놓자니 살길이 어려울 것 같고.....”
“사또, 정 그러시다면 제가 두향이를 돕겠습니다. 단양관아에서 어려운 사람에게 제공하는 규휼미가 있는데 저가 굶지 않을 정도로 챙겨주겠습니다. 그것은 불법이 아니고 전관이 추천하면 부임하는 신관도 들어줄 것입니다. 사또께서 오셔서 저수지나 보를 만들어 가뭄을 극복하여 농민들이 살기가 좋아지고 관곡도 비축이 되어 있기에 아무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을 겁니다.”하고 퇴계와 이방은 두향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할 당시에 상습적인 가문으로 농사를 망치는 일이 많아 농민들이 살기가 어려웠다. 비록 남한강이 크게 흘러가고는 있지만 수리시설이 없어 그냥 흘러 보내버렸기에 저수지를 만들고 보를 축조하여 그것을 해결하였었다. 또 수령으로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재정을 튼실하게 하여 관곡도 충분히 비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또 탐관오리를 만나지 않고 청백리를 만났기에 모두 다 퇴계를 존경하고 있었기도 하였다.
이별의 날은 다가왔고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다. 며칠간을 서로는 마음으로 울고 또 체념도 하였으리라. 퇴계가 떠나면서 치마폭에 이별의 시이기도 영원한 기억의 시이기도 한 글을 적어주었다.
“비록 산이 높고 길이 멀어 오가지는 못하지만 바람처럼 구름처럼 마음만은 오가고, 꿈길에서도 한 번씩 만나 뜨거운 정을 나누어 보세.”
“세월이 흘러 이 몸이 떠나가도 그대가 준 매화는 꽃을 피우리니, 나는 소나무 되어 가지 벌려 손내밀테니 그대는 향기 되어 영원토록 손잡으세.”하고 퇴계는 마지막 이별이기도 또 다른 해후를 바라는 깊은 뜻의 글이었다.
그 글을 간직하면서 두향은 관아를 떠나 자유스러운 신분이 되어 퇴계와 시정을 나누었던 강선대 아래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퇴계가 그를 보고 글을 이해하는 꽃인 해어화라고 하지를 않았던가. 그 한마디가 두향에게 엄청난 자긍심을 심어주었고 자신의 신분에 대한 한탄 대신 퇴계를 만난 것은 하늘이 내린 은혜로 여겼다. 만약 퇴계가 아니었다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거문고를 연주하지도 못했을뿐더러 자신의 시재를 펼쳐 볼 수가 있었겠는가.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다듬는다는 말이 있지만, 두향은 남자처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제 세월도 흐르고 흘러 퇴계도 나이가 들어 병석에 누웠다. 두향과 이별한 지도 20년이 넘었고 퇴계는 칠순을 바라보게 되었다. 제자들이 머리맡에 앉아 스승의 건강을 염려하고 회복을 빌지마는 이미 정해진 수명을 다 채운 상태이니 임종을 지켜볼 도리밖에 없었다. 퇴계는 단양시절을 생각하며 두향의 손을 잡으려는 듯 허공을 휘젓는다. 아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고 무엇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세이었다. 제자들은 그 손짓의 의미를 알아차렸지만 두향을 데려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비록 동방주자라는 호칭이 붙은 대유학자이지만 죽음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학문의 경지는 높았으나 가슴에 품고 있는 애환의 무게는 무엇으로 저울질할 수가 있겠는가. 퇴계는 정신이 잠시 돌아오자 제자들에게 한마디 하였다.
“매군에게 물을 주어라.”이 단 한마디이었다. 그리고 다시 깊은 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였다. 50대에서는 매화를 연인이라고 여겨 그냥 매화에게 물을 줘라 하였고, 60대에서는 상호존대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매형이라고 불렀고, 마지막 70십을 바라보는 지금은 매군이라고 부르니 그 호칭이 예사롭지 않았다. 분명 퇴계에게는 두향이라는 인물이 비천한 기생이 아닌 자신을 구원하려 온 선녀라고 여겨졌다. 어찌 그 고독한 마음에 봄바람 같은 온기를 불어넣고, 메마르게 잠자고 있던 감성에 불을 붙여 참다운 인간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지 않았던가. 두향을 만나고 난 후 메마른 유학에 참다운 仁이 무엇인가에 사색하였고 性卽理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만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곧 진리요 도라고 말이다. 그러니 두향은 연인의 모습으로 만났지만 자신을 깨닫게 해 준 군자라고 여겨서 임종을 앞두고 梅君이라고 불렀으리라.
퇴계가 남긴 매화시 중에는 자신이 비록 매화라고 하였지만 두향을 은유한 깊고도 애절한 글이 있다.
“임이 돌아가신 뒤에는 천향을 피우리라. 원컨대 임이시여 마주 앉아 생각할 때, 청진한 옥설 그대로 함께 고이 간직해 주오.”
이 시는 매화를 의인화하여, 자신이 죽으면 매화는 천향을 피울 것이며, 마주 보고 앉아 있듯이 서로를 사모할 것이며, 옥설처럼 맑고 진실한 마음을 변치 않고 간직하겠다는 뜻이었다. 또 임이 돌아가신 뒤의 뜻은 퇴계 자신의 임종인지 두향의 임종인지는 분간되지 않으나 둘 다 해당되는 것 같았다. 서로는 동체이고 한마음이니 누군가 돌아가면 즉각 반응을 일으켜 하늘이 내린 향기를 피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퇴계가 두향을 그리기도 또 두향이 자기를 그리워하기를 바라는 相思의 정을 듬뿍 안고 있었다. 퇴계는 두향이 보낸 매화를 보고 외롭고 그리울 때면 마주 보고 대화하였던 것이었다. 서로는 연인이기도 스승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퇴계의 입장에서는 두향은 강림한 신선이기도 하였다.
이윽고 퇴계는 인생의 종말을 그가 항상 쉬고 사색하는 완락재에서 맞았다. 예정된 수순이지만 제자들의 울음은 그치지를 않는다. 퇴계는 임종 전에 가족과 제자들에게 유언을 남긴다.
“내가 죽거든 그냥 평민들처럼 봉분만 만들고 일체의 장식을 하지 마라.”하였다. 그는 허례허식을 철저하게 배격하였고 조상을 모시는 것은 정성이지 겉치레가 아니라고 가르쳤다. 그의 운구행렬은 어릴 적 놀던 토계를 따라 저 멀리 청량산 쪽으로 평소에 퇴계가 자주 걷던 길을 따라갔다. 낙동강변이 살며시 내려다 보이는 선산에 별다른 석물 없이 간소하게 무덤에 묻혔다. 그가 바라보던 길은 청량산으로 가던 산책로이었고, 그 강변은 도산구곡인 탁영담곡과 천사곡이 있지를 않은가. 퇴계는 그가 좋아하던 청량산이 곁에 있고 도산구곡이 바라보이는 명당에 영면을 취하였다.
퇴계의 부음은 사방으로 전해졌지만 두향은 그 소식을 늦게 알았다. 드디어 첫 번째 이별에 이어 영원한 이별을 맞았다. 안동으로 가자니 초상이 지났고 간다고 한들 어찌 문상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의 마음은 가고 싶었지만 퇴계를 보내드릴 때 앞가슴의 옷깃을 잘라 주었지 않았던가. 그것은 살아있을 때의 이별에 대한 것이지만 죽었어도 지켜야 할 영원한 이별의 징표이니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두향은 이제 살아갈 힘도 살아갈 이유도 없었기에, 옛날 임과 같이 올라 상사를 나누었던 강선대로 올랐다. 남쪽 소백산 넘어 안동방향으로 재배를 하고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남한강물에 몸을 던졌다. 이로서 두 명의 연인이기도 동료이기도 스승이기도 한 최고 지위의 선비와 최저 신분의 기생과의 연분은 남한강물에 담겨 한스럽게 흘러가고 말았다. 그다음 날 아침 안동방향인 소백산 하늘에 오색 무지개가 떴다가 한참만에 사라졌다. 그것은 두향의 영혼이 안동 쪽으로 간 것인지 퇴계의 영혼이 단양으로 온 것인지 두 영혼이 하늘에서 같이 만난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두향은 퇴계를 떠나보내면서 노래했다. 또 떠나는 그에게 자신의 가슴 쪽에 있는 옷깃을 잘라서 주면서 부른 노래이기도 가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흐느끼는 하소연이기도 하였다.
“님이시여, 다북쑥 우거진 그곳을 잊지 말고 그곳에서 만난 나를 항상 생각하시옵소서.”
두향은 다북쑥이 높게 자라던 그 강선대의 추억을 잊지 말라는 것으로 말한 것 같으며 그 자신도 그 다북쑥 우거진 그곳에 묻혔으니 그가 남긴 말들은 그대로 실천되었으니 어찌 보면 그 신통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퇴계가 매군이라고 하였듯이 세상을 일깨워주려고 내려온 신선이 맞는 것이었까. 그 바위 이름이 강선대이니 이름과도 들어맞으니 그렇게 불러도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 강선대를 지나가면서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두향과 퇴계의 사랑에 관한 글을 지었다. 비록 운우지정을 맺었지만 족보에 오르지 못하는 신분의 벽을 넘기가 죽령고개처럼 높고 험난하였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퇴계는 동방의 대유학자이자 공자의 仁을 참답게 실천하였기에 학자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완성된 경지에 이르렀다고 후세가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남녀상열지사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대하는 유연성이며 매화를 의인화하는 사고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런 것이었다. 퇴계가 남긴 매화시가 수를 헤아리기 힘든데 그 영향은 두향과의 인연에서 비롯되어 매화를 사랑하였다고 본다.
두향이 퇴계를 떠나보내면서 자기의 윗저고리 가슴 쪽 옷깃을 잘라 주면서 나눈 이야기이었다.
“나으리, 저가 이 옷깃을 잘라서 드리는 이유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나의 마음의 징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뜻도 있나이다.”
“뭐라고, 옷깃을 잘라 주는 것은 잊지를 말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 다른 뜻은 무엇인지 궁금하구나.”
“나으리께서 넘어시는 곳은 가파른 죽령이고 아마 이곳 단양을 떠나기가 아쉽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마 저를 두고 떠나시기가 힘들다고 보이기 때문이옵니다.”
“그렇지, 내가 이곳에 정이 들고 너를 만나 고향의 품에, 연인의 가슴에 안긴 것 같다고 영원히 주저앉으려고 했는데 정말로 가슴이 아파서 발길이 나갈지를 모르겠다. 그냥 사직을 하고 이곳에서 너와 함께 죽을 때까지 살고 싶구나.”
"그렇지만 어찌 나라의 명을 거역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디 마음을 추스르시어 이곳을 떠나가시옵소서. 세조 때 안동도호부 종각에 있던 범종을 오대산 상원사로 왕명에 의해 옮기려고 죽령을 넘어서려는데 꼼짝을 하지 않아 범종의 젖꼭지를 하나 떼어내 안동종각에 묻었더니 종이 움직였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옷깃을 잘라서 드리는 것이옵니다.“
“아, 네가 그런 깊은 뜻을 갖고 옷깃을 잘라 내게 주었다는 말이더냐. 나도 그 범종처럼 정말 죽령을 넘어가기가 싫구나. 아, 깊고도 애정 어린 너의 마음을 보니 다시 가기가 싫어지는구나. 내가 다음에 자리를 잡으면 기별할 테니 꼭 기다려 다오. 두향아!”하고 두향과 퇴계가 애절하게 말했다.
사실 퇴계는 두향을 두고 깊은 고심을 하였었다. 자신이 이미 상처를 한 상태이니 두향을 면천하여 부인으로 맞아드리려고도 생각했었다. 그냥 데려가는 것은 관기에 대한 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퇴계는 두향을 떠날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나려는 구상을 하였다. 그런데 엄격한 유교의 법도상 천민출신을 부인으로 앉힌다는 것은 그 당시 풍도가 용납하지 못했다. 퇴계 자신이 남녀유별 사상을 중시하는 유학의 대가로서 스스로 그 법도를 무너뜨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감언이설처럼 보이지만 두향을 달래주기 위해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애처로운 두향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설령 거짓이라도 그렇게 말해야 했다. 그것이 두향에 대한 존중이기도 사랑한다는 유일한 징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두향은 그것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퇴계가 미련 없이 자기 곁을 떠날 수 있도록 옷깃을 잘라서 이별에 대한 면죄부를 준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퇴계는 감정이 북받쳐 보여서는 안 되는 눈물을 흘렸다. 참으로 애달프고 안타까운 이별이었다.
어느 날 진성이씨 종중회의에서 오간 말이였다.
“여보시게들, 오늘이 퇴계 선조의 기일이지 않은가. 물론 유교의 예법에 따라 선생과 부인의 위패를 동시에 모시는 게 맞지만 한편으로 생각나는 분이 있네. 퇴계 할아버지가 유명한 유학자이지만 또 다정다감한 인간애를 지닌 인물로 만든 사람이라고 말일세.”
“그러고 보니, 단양기생 두향이 맞군요. 비록 비천한 기생출신이지만 거문고 연주며 시를 읊고 하는 절세의 예기가 아니겠는가요. 황진이가 비록 절세미색에다 시재가 있다고 하나, 화담 서경덕 선생을 수용하지는 못했지 않았나요. 그런 점에서 두향은 퇴계 선조에게 큰 영향을 끼친 우리 가문에서도 받들어야 도리라고 봅니다.”
“올커니, 바로 그 점을 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외로운 퇴계선생을 위로하고 매화를 보내어 매화의 고귀한 절개를 가르쳐 준 한편으로는 스승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번 제례 마지막에 두향에게 잔을 한잔 올리는 것을 건의드리는 것입니다.”하고 문중에서는 명절 차례에도 올리고 기제사에도 마지막에 잔을 올리는 것으로 정했다. 그리고 시사철에도 단양의 다북쑥 우거진 강선대를 찾아 벌초를 하고 잔을 올리는 게 관례되었다.
어느 시절 성관균 유생들 간에 논쟁 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친하지만 퇴계문하와 율곡문하 출신들이었다. ‘유학과 인간애’라는 논제를 가지고 논쟁이 벌어졌다. 먼저 율곡문하의 김생원이 말을 했다.
“퇴계선생은 학문의 경지는 높을지 모르지만 남녀유별의 법도를 잘 지키지 않은 모양이더이다. 어찌 두향과 같은 기녀들과 교분을 맺고 방중술에 능하다고 하는 세평이 있는가요. 이는 선비로서 교육자로서 대단한 흠결이 아니겠소.”
“허허, 김생원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모양이오. 어찌 남녀 간의 교분을 백안시한다는 말씀이시오. 퇴계선생은 학자이기 이전에 인간애를 지닌 진실한 선비가 아닌가요. 대다수 선비들이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점잖은 척하지마는 그것은 위선일 뿐이외다.”
“박생원께서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을 하시는가요. 그것은 사람이 지켜야 할 법도이자 본능의 지배에 이끌려 가는 것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지요. 오죽하면 낮 퇴계와 밤 퇴계는 따로이다는 말이 있을까요.”
“지금 김생원이 금도를 넘은 말씀을 하시네요. 그 말은 우주의 진리인 음양의 도를 모르고 하는 말씀이시오. 밤은 음이고 낮은 양이니 사람의 성정도 밤과 낮이 달라야 한다는 뜻이오. 또 음양의 흐름을 거역해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하하, 무슨 합리화하는 말씀도 아니고 논리에 대단한 비약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통제하기 힘들고 특히 남녀 간의 애정은 불길과 같다고 하지 않던가요. 우리 율곡선생은 그런 욕망을 경계하고 여자를 멀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하시오. 율곡선생은 아마 일시 불교에 귀의한 적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것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요. 불교도 출가자에게만 적용되고 재가불자는 정실부인과의 운우지교를 허용하고 있지 않은가요. 운우지락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며 또한 생명의 동력이기도 하고요.”
“제가 말하는 것은 퇴계선생이 두향이라는 기생과의 도를 넘은 교분으로 유학의 정신을 훼손하였다는 것이지요. 또 제자들에게 남녀유별을 가르치는 게 아니고 허용한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 율곡선생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합방을 하지 않고 내실에 들어갈 때는 의관을 갖추고 간답니다.”
“아이고, 그 스승에 그 제자로군요. 율곡선생이 자손이 귀한 것이 음양운행의 원리에 역행하기 때문이지요. 운우지정이라는 말이 좋은 예가 아니던가요. 구름이 서로 만나 비를 내린다고 말입니다. 자연의 문이나 사람의 문이나 마찬가지로 만나고 두드려야 열리는 게 아닌가요. 그런 점에서 저의 스승은 유학자를 넘어 도인의 경지에 이른 분이라고 봅니다.”하고 두 명의 유생들이 진지한 토론을 하였다.
이 토론에서 보듯이 퇴계는 유학자이기 이전에 따뜻한 인간성을 지닌 인격자이었다. 두향뿐만 아니라 자신의 둘째 아들이 죽자 정혼상태에서 유교의 법도에 따라 꼼짝달싹을 못하는 며느리를 보고 새 출발을 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보내주었다. 또 둘째 부인인 권씨가 정신박약으로 민망한 행동을 할 때 그녀를 다독이며 품어 안는 것은 눈물겨운 인간애의 표상이라고 여겨진다. 두 명의 부인을 먼저 떠나보내고, 아들을 잃은 슬픔을 승화시켜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사랑한 그의 인품은 학문의 경지 보다 더 높게 평가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두향은 장회나루 옆에 있는 소백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그 장소의 옛 이름은 그대로인지 바뀌었는지 두항리라고 불렀다. 그쪽에서 금수산을 바라보는 강가에 그의 무덤이 있었다. 나무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청명한식이나 추석 전에 말끔히 벌초를 해놓았다니 비록 기생의 신분이었지만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으니 자손 아닌 자손들이 받들고 시인묵객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으니 불행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퇴계와 두향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아직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만약 사랑이 이루어지고 가정을 이루었다면 일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사랑은 가까이하고 싶지만 항상 가까이 있으면 그 연정은 식어버리는 것이니 거리를 두고 사랑하여야 한다. 두향과 퇴계의 사랑은 가정을 이루는 차원의 사랑이 아니었다. 영원히 잊히지 않는 소유하지 않는, 육체보다는 정신을 통한 사랑이다. 퇴계가 동방의 대유학자가 되고 존경받는 인격자가 된 것은 두향과의 사랑에서 출발하였다. 유교의 근본정신은 어짐이 아니겠는가. 말로만 이론으로만 학문을 배우고 터득하지만 仁을 깨우치지 못하면 진정한 성공이 아닌 것이다. 이런 점에서 퇴계라는 대유학자이자 인격자를 탄생시킨 것은 책을 통한 학문이 아닌 처절한 곤경 속에서 발견한 상호 간의 연민의 정일 것이다.
두향이 유명해진 것은 퇴계때문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퇴계가 유명해진 것은 두향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귀하게 여기고 서로에게 배워야 하는 게 격물치지의 바른 길인 것이다. 어느 사람을 비천하다고 배척하지 말라. 어느 사람을 귀하다고 맹종하지 말라. 오직 진리를 위해 가는 사람을 찾아서 배워야 한다. 강선대 앞을 흐르는 남한강물은 흐르지만 그 수위가 높고 낮으면서 변화할 뿐 그 강물의 성질은 오직 한길로 아래로 흐르면서 진리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