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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벽운 Nov 13. 2024

9. 배반의 길

단종복위운동을 밀고한 김질과 김효흡

                      배반의 길

     

 그는 캄캄한 길을 찾아가는 길이다. 길은 여기저기 깔려있지만 몸이 하나이니 하나의 길을 선택하여 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깝고 편평한 길을 가고 있어 다른 사람들도 그냥 따라가고 있다. 멀고 험난한 길은 적은 사람들이 함께 간다. 끝까지 완주하는 사람도 있지만 중간에 되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처음부터 편평한 길을 가는 사람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냐마는, 어려운 길을 가다가 되돌아오는 사람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이왕 되돌아올 길이라면 가지나 말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며 자신을 탕진하였으니까 말이다.


 김질은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오늘 결행하기로 한 거사가 다음으로 무기한 연기되어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게 아닌가. 성사가 되었더라면 공신의 반열에 올라 충신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손 대대로 번창하겠지만 지금은 그것을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여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연회에서 지금껏 해오던 별운검을 안 한고 말았단 말인가. 여러 가지 의구심이 강하게 떠오르기만 한다. 오늘 연회를 파하고 나오는 길에 한명회 대감이 야릇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니 낌새를 채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하였다. 같은 동료 중에 어느 누가 밀고를 하였고 그 배후를 캐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망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그는 불안하여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이번 거사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평소에 가까이하던 신숙주를 찾아갔다.

 가안, 자네 오랜만일세. 이렇게 직접 찾아주어 고맙네. 무슨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는가. 근보 나 인수같은 집현전 학사 출신들 하고 한편이 되어 서로 왔다 갔다 한다면서, 여긴 웬일인가.”

 허허, 나에게 누구 편이라고 하는 게 있겠는가. 그저 친구들을 좋아하다 보니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게지. 그 좀 서운한 말을 하네 그려. 나야 자네하고는 오랜 친구가 아니던가. 정으로 보면 그들보다 더 가깝지 안 그런가.”하고 김질은 능청스레 말을 하면서 신숙주의 속내를 들여다보고자 하였다. 이런저런 말 중에서 거슬리는 것은 성삼문과 박팽년을 만나 작당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한편이 되어라는 말이었다. 의심이 많기로 소문난 김질이 그 말을 확대하여 해석해 보니 지금 단종복위를 음모하고 있지 않나 하는 것으로 들렸다. 오늘 한명회 대감의 야릇한 비웃음과 신숙주의 의미심장한 말을 듣고, 결정적인 단서를 못 잡았지만 불충한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는 듯하였다.


 김질은 집에 돌아오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탄로가 난 것은 아니지만 거사계획을 어느 정도 미리 알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앞으로 닥쳐올 피바람을 생각하니 몸서리가 치질 지경이어 전전긍긍하여 장인인 정창손 대감을 찾아가서 고변을 하는 게 멸문지화를 당하지 않고 사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날은 비가 내리고 길은 미끄러웠다. 김질은 조심조심 혼자서 어두운 적막 속으로 걸어갔다. 주변을 조심스레 살펴보고 대문을 두드리니 하인이 나와 별채로 안내한다. 안에는 벌써 정창손 대감이 간단한 주안상을 차려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중한 일이라고 하여 하인을 통해 서찰을 보내 오늘 저녁에 들린다고 전갈이 온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내용도 없는 서찰까지 보내 만나자고 한단 말인가.

 장인어른 많이 기다렸셨지요. 긴히 말씀드릴 게 있어 중간에 종에게 마필을 돌려보내고 걸어왔습니다. 지금부터 목소리를 낮추어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술을 한잔 받으시고 저에게도 주십시요.”

 허허, 무슨 일이기에 이리 마음을 흔들고 하는가. ! 자네도 한잔 쭈욱 들이키게. 보아하니 맨 정신에는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분명히 좋은 일은 아닐 것 같고 말일세.”

 맞습니다. 좋은 일이면 뭐 하려고 긴히 보자고 하였겠습니까. 잘못하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촌각을 다투는 엄중한 상황입니다. 놀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역모입니다.”

 지금 자네가 뭐라고 하였는가. 그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역모, 역모라고 말일세. 소리를 낮추어 찬찬히 말해 보게나. 이런 괴이한 일이 있나. 혹시 단종 복위를 위한 역모는 아닐 테고......”

 이렇게 하여 김질은 장인인 우의정 정창손에게 역모를 털어놓고 말았다. 이것은 성삼문이 주동이 되고 집현전 학사 출신들이 주축이 된 단종복위계획이다. 행사 당일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자리에서 유응부가 별운검을 하는 계획이 갑자기 없게 되자 다음으로 거사를 미루게 된 게 발단이 된다. 이 계획이 연기되자 불안감을 느낀 김질이 두려워서 장인에게 누설하고 만 것이다.

 정창손 대감은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이 말을 믿어야 할지 넘어가야 할지 낭패감을 느꼈다. 사위가 하는 말이고 좌초지종을 들어보니 분명히 역모를 꾸미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한명회 대감이랑 만나면 아마 단종복위를 위하여 어느 누군가가 물밑에서 분명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얼마 전에도 함경도에서 이징옥이 난을 일으켜 평정이 되었지만, 아직도 민심은 단종에게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사위 놈이 괘씸한 건 자기를 제쳐두고 저만 살라고 그 역모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거사를 일으키면 세조를 비롯한 한명회나 정인지, 신숙주, 권람은 물론이고 우의정인 자신도 척살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치를 떨었다. 그러니 김질이라는 사위 놈이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고약하고 약싹 빠른 놈이라고 생각했다. 사위로 맞을 때도 그놈의 아버지를 보고 혼사를 했지, 촐싹거리고 경망스러운 그의 행실이 영 마음에 안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 사태를 수습하고 나서 심하게 질책을 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정창손은 이런 역모의 계획을 듣고 바로 즉시 입궐하여 세조에게 고변하였다. 세조는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하면서 천정을 한번 올려보다가 고개를 내리면서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연회장에서 운검으로 자기의 목을 치려고 했다는 것을 듣고 이성을 잃고 말았다. 도승지를 불러 한명회를 포함한 대신들을 당장 입궐하라고 하였고, 혹시나 모르니 어영대장을 시켜 궁궐의 감시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하였다. 계유정난 때 고명대신을 포함한 안평대군 등을 죽인 기개는 보이지 않고 고양이 앞에 겁에 질린 쥐새끼 마냥 벌벌 떨고 있었다. 천하의 수양대군도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는 필부처럼 돼버리는 졸렬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김질의 밀고에 의해 성삼문, 박팽년을 포함한 수많은 인재와 연루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다. 세조는 그 후 단종을 영월로 유배 보내고 철저히 감시하게 하여 또 다른 역모를 미연에 방지하기로 하였다. 이 모든 지략은 자신의 장자방이라고 하며 신뢰하는 한명회가 다 내놓았다. 한명회는 지금의 영화도 모자라 자신의 딸들을 세조의 후궁으로, 세자의 빈으로 보내는 등 인륜을 무시하며 무너지지 않을 권력의 아성을 쌓았다. 김질을 포함한 신숙주, 권람 등을 비롯한 모신들도 높은 벼슬을 얻고 공신전이라고 하여 막대한 땅을 하사 받았다. 반면 사육신을 비롯한 역모에 가담한 역적이라고 부르는 만고의 충신들은 목숨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재산은 물론 아내와 딸들을 공신들에게 넘겨주었다. 특히 괴이한 것은 신숙주가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를 자신의 노비로 달라고 하는 파렴치를 넘은 반인륜적인 요구를 하였다는 것이다.


 사육신의 시신을 거두어 노들언덕 위에 묻은 김시습은 그런 간신들의 행태에 격분하였다. 한명회를 조롱하며 압구정의 현판을 떼어내어 글자를 바꾸어 충신을 역신으로, 갈매기와 노닌다는 것을 괴롭힌다고 파자하기도 하였다. 길가에서 만난 정창손을 비꼬며 조롱하고, 김질과 신숙주를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그는 기회주의가 난무하고 입신을 위해서 양심을 버리는 세태에 염증을 느껴 광인처럼 행동하다가 망가져가는 자신을 구제하기 위하여 중이 되기도 하였다.

 어느 날 김시습은 도성 안을 지나가다가 가마를 타고 가는 신숙주와 마주친다.

 어이구, 나으리, 신수가 훤하십니다. 거기에다가 꽃가마에다가 등을 뒤로 젖히고 수염을 쓰다듬는 모습이 정말 위대하게 보입니다. 얼마나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셨는데 그 정도는 되셔야 지요. 저에게도 가마를 멜 수 있는 자리라도 마련해 주시지요.”

 이게 누구신가. 매월당 선생이 아니시오, 어찌 이런 행색으로 다니신단 말이시요. 내가 자리라도 한번 마련해 드릴 테니 지금 같이 우리 집으로 갑시다. 그 재주를 나라를 위해 쓰셔야지 이렇게 방랑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뭐라고 이놈아. 여름철도 아닌데도 금방 어버리는 숙주나물 같은 놈아. 내가 너의 가마꾼 자리라도 달라고 하던 게 무슨 더러운 벼슬이라도 바라는 줄 알았나 보더냐. 그렇게 세상사를 분간 못하니 수양대군에게 빌붙어 더러운 인생을 사는 줄도 모르고 쯧쯧.”

 그 참, 말씀이 너무 지나치시오. 지나가는 사람이 다 듣고 흉을 보겠소이다. 배우실 만큼 배우신 분이 언사가 왜 그렇게 천박하시오. 세조임금님 보고 수양대군이라니 불충이 심하오.”

 그래, 말 한번 잘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내 흉을 보는 게 아니라 네 욕을 하고 있고 킬킬 거리는 소리가 안 들리느냐. 지금 가마를 들고 가는 하인들도 우스워서 킬킬거리고 있는 건 안 보이지. 너 같은 말종은 그런 모습과 소리를 보고 듣는 눈도 귀도 없는 것이니라.”하고 백주 대낮에 김시습은 신숙주에게 망신을 주었기에, 그 이후로는 신숙주 외에도 모신들은 김시습이 보이면 눈을 마주지치 않고 급히 피해버리는 것이었다.


 이렇듯 단종복위에 연루된 충신들과 선비들이 참사를 당하자 세상은 솥뚜껑을 덮어 둔 것처럼 조용하였다. 그렇지만 솥밑에서는 민심이라는 불길이 타올라 언제가는 솥뚜껑도 들썩거릴 것 같았다. 조정에서는 모신 한명회가 용이 주도하게 세상의 동태를 살피고 만약 또 있을지 모를 역모에 대처하기도 하였다. 단종을 영월 청령포로 유배 보내고 금성대군은 순흥으로 유배하여 위리안치하였다. 자기의 동생인 한상진을 안동부사로 보낸 것은 선비의 고장인 영남의 동태를 감시하고 사전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그들도 언젠가는 또 한 번 단종복위거사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며 올가미를 걸어두고 걸려들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한명회의 단수는 대단하여 사건을 만들기도 조장하기도 하는 모략에는 천재적이지 아니하던가. 단종을 미끼로 하여 거사를 유발하여 남은 단종을 비롯한 추종세력들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육신이 주동이 된 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단종은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그곳을 오가는 선비들도 있었고 의인들도 있었으며, 민초들은 여전히 임금으로 생각하였다. 치악산을 넘어온 선비는 물론 소백산을 넘어온 영남의 선비들이 오갔기에 단종도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원주에서 원호가 서강변에 관란정을 짓고 오갔으며, 영남에서는 봉화의 이수형이 함안의 조여가 함께 만나 치악산 무릉도원에서 결의를 하여 비석을 세웠으며, 정사종이 군위현감을 사임하고 영월로 들어와 단종을 흠모하였다. 그런데 관에서는 단종 알현을 허용하고 가까이에서 접촉하는 것을 방치하다시피 하였다. 이런 분위기가 잠복해 있던 복위거사 의욕에 불을 붙이는 불씨가 될 수 있었다. 소백산 너머 얼마 안 되는 순흥에는 금성대군이 유배해와 있고, 순흥부사 이보흠 또한 집현전박사 출신이라 뜻만 같이 하면 언제든지 거사를 결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 것인지 일부러 조장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한명회라는 모신이 있기에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할 수 있다.


 세조는 단종이라는 선왕이 살아있는 한, 반역으로부터 안심할 수가 없었다. 한양에서는 즉시 수습이 가능하지만 영남지역에서 발생하면 어려울 수가 있다. 그래서 치밀하고 상황판단이 빠른 한명회는 자기 동생을 안동부사로 보냈었던 것이다. 1차 복위운동도 의심 많고 영악한 한명회의 경계심에 의해 무산되었고, 그것에 불안을 느끼고 제 발로 찾아온 김질의 고변에 의해 반역세력들을 일망타진한 것이 아니던가. 그것도 참혹하게 형을 집행하는 본보기를 보여줌으로써 감히 역모를 상상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의분이라는 죽음을 불사하는 불씨는 그들의 예상을 뒤엎고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갈 수 있다. 이런 보이지 않는 불씨는 조용히 숨어서 큰 바람이 일 때를 기다리며 잠복해 있었다.


 어느 날 이징석 대감의 집으로 급하게 들이닥치는 역마가 있었다. 그 말 위에는 풍기현감 김효흡이 타고 있었고 말을 내려 곧장 대문으로 들어선다. 손에는 무슨 대자보 같은 창호지로 포장한 문서가 들려있었다.

 대감, 안에 계시옵니까. 급한 일이 있어 죽령을 넘어 급히 말을 달려왔습니다.”

 자네가 풍기에서 이 멀리 까지 말을 몰고 왔다는 말인가. 도대체 무슨 큰 사건이라도 발생한 게 아니면 이런 난리법석을 떤다 말인가.”

 역모입니다. 화급한 상황이라 빨리 이 격문을 조정에 올리십시오. 금성대군과 김효흡이 짜고 오늘내일 영남에서 군사를 일으킨다는 내용입니다.”이렇게 김효흡이 금성대군의 역모거사를 위한 격문을 이징석에게 전하였다.

 조정은 난리가 났다. 세조는 망연자실한 듯 하늘을 한참 올려보고 있다가 고개를 내리며 한명회를 비롯한 대신들에게 대책을 내놓으라고 닦달한다. 이에 한명회가 나서서 세조를 진정시키며 천만다행이라고 말을 한다. 이미 그는 이런 역모를 대비하여 자기 동생을 안동부사로 내려보냈던 게 아닌가. 세조는 그제사 굳은 얼굴을 펴고 어명을 내린다. 금성대군과 이보흠을 즉시 잡아서 압송하라고 한다. 역모가 확실하면 압송할 것도 없이 현장에서 처단하라고 다시 명을 내린다. 이렇게 하여 두 번째 단종복위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수많은 선비들과 양민들이 죽계제월교 밑에서 참살을 당하게 된 것이다. 안동부사 한상진은 자기 형보다 더 잔인하였다. 죄 없는 양민들까지 소수서원 인근의 양민들을 죄상도 묻지 않고 무차별 살상을 하여 흘린 피가 십리나 흘러가 멈추었다. 그 피가 멈춘 곳의 동내이름이 피끝마을이라고 하여 그때의 참상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김효흡이 들고 온 격문을 받은 이징석은 몇 년 전 함경도에서 자기 휘하의 군사들과 백성들을 규합하여 난을 일으킨 이징옥의 친형이다. 이징옥은 김종서가 키워준 무인으로, 김종서가 척살당하자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난을 일으킨 것이다. 형과 동생은 형제이면서 다른 길로 갔으며, 공신과 역적이 한 가문에서 나오게 되는 기구한 운명을 안게 되는 것이다. 이번 밀고로 김효흡과 이징석은 큰 포상을 받고 창창한 앞날을 보장받는다. 반면에 자신을 키워준 이보흠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늘은 항상 선의의 편에 있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하늘의 뜻을 거슬러 탐욕에 눈이 먼 소인배들의 소행으로 돌려야 하는가. 그런 참극을 통하여 역사는 후퇴하지 않고 의를 생명처럼 숭상하는 선비정신을 살아 숨 쉬게 한다.


 두 번의 역모사건이 수습된 후 정창손은 사위인 김질을 불러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퍼붓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김질이 한 밀고는 나라를 걱정하는 충절이 아닌 자기만 살고자 하는 변절이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정창손 자신의 목숨도 날아갈 법 한데 사위란 놈이 자기가 무슨 의인이나 되는 것처럼 처가는 안중에도 없이 전방지축 날뛰었으니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아. 너만 살겠다고 거사에 가담했다가 불리해지니 또 너만 살겠다고 배신을 하였단 말이냐. 나는 네가 어쩔 수 없는 사위이지만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하고 정창손은 김질이 사람이 되라고 나무라는 게 아니라 못된 인간성에 침을 뱉는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정녕 그 말을 한 정창손도 김시습에게 수모를 당한다.


 어느 날 김시습은 작정하고 정창손 대감이 지나가는 길목을 지키다가 만나 비꼬는 듯한 독설을 내뱉는다.

 저놈을 잡아라. 저 놈이 남의 목숨도 앗아가고, 재산도 훔쳐가고 내 신발도 훔쳐갔다.”하니 정창손은 기겁을 하고 가마를 급히 몰고 도망치고 말았다. 그한테 한번 걸리면 여지없이 당하고 백주 대낮에 길거리에서 망신을 당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신숙주가 곤욕을 치렀다는 소문을 듣고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가 한 말은 다 맞는데 신발을 훔쳐갔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그것은 하잘 것 없는 인간에게 욕설을 퍼붓기 위해 찾아다니다가 짚새기가 몇 켤레나 닳아 없어졌는지 아느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변절은 수시로 일어났지만 밀고는 잘못하면 양날의 칼이니까 신중하게 하였다. 변절은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니까 숨길수는 있지만 밀고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기에 그렇다. 정확하지 않는 정보나 풍문을 가지고 밀고라고 올렸다가 잘못되었을 경우에는 무고로 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흔히 남을 해치려거나 비난하는 말을 들으면 귀를 씻는다는 옛말은 은인자중을 미덕으로 여기는 풍속에서 비롯된다. 지혜롭고 선량한 사람은 혹시 역모의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올바른 것이면 속으로 잘되기를 빌고, 나쁜 것이면 귀를 씻는다. 본래 밀고나 고자질은 인성이 잘못되고 남의 불행을 자기의 이득으로 바꾸려는 소인배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런 점에서 격문을 훔쳐낸 계집종이나 노비 급창은 당연하고, 선비라고 행세하던 김질이나 김효흡도 마찬가지 소인배이다.


 단종애사를 불러온 왕위찬탈과 변절의 뿌리는 열등감에서 출발하였다. 세조는 형제인 안평대군에 비해 문장과 서예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떨어졌다. 부왕인 세종이 군호를 수양이라고 지어 백이숙제의 덕목을 이어가기를 바랐고, 안평대군은 권력과 거리를 두고 평안한 학문과 예술의 세계에서 머물게 하였다. 이는 세자인 문종을 보필하고 각자의 재능을 발휘하여 분란 없는 왕권의 계승을 바랐기 때문이다. 수양대군은 주나라의 주공이 형인 무왕을 보필하고 조카인 성왕을 옹위하였던 사실에 착안하여 군호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수양대군에게 내재된 열등의식이 발동하여 죄 없는 안평대군을 계유정난 때 지체 없이 처단하였다.

 한명회는 부모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칠삭둥이라는 별명에서 보듯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권력을 지향함으로써 보상받고자 하였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여 음서를 통하여 관직에 진출하고 첫 벼슬은 경덕궁을 지키는 역할이었다. 그 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 후련하게 그 열등의식을 불살라 버렸다. 신숙주는 성삼문에게 항상 뒤처져서 열등의식을 안고 살았기에 수양대군 편에게 가담하여 공신의 반열에 올라 권력을 차지함으로써 보복하였다.


 그는 역사의 현장을 산책하면서 의로움이 서려있는 밝은 길도 걸어보았고, 밀고와 배신으로 얼룩진 캄캄한 길도 걸어보았다. 의로운 길은 그 당시에는 비정하고 아팠지만 세월이 흐르면 밝고 아름다운 길로 변하는 것이다. 단종의 유배 행렬을 따라가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었기에 민심은 천심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벼슬도 이름도 없는 평범한 백성들이었다.

 여주 이포나루를 건넌 단종의 유배행렬은 첨지중추부사 어득해, 내시부사 홍득경, 군자감 김자정의 인솔하에  영월로 나아간다. 원주 근방에 이르자 백성들이 울고불고하며 임금의 행차를 가로막는다. 군졸들은 말을 때리듯이 채찍을 갈기며 길을 티운다. 어느 노파는 물 한 바가지를 건네려고 하다가 물을 쏟고 바가지마저 깨뜨리고 길가에 퍼져 앉아 통곡을 한다. 쉼터에 다다르자 단종은 수레에서 내리니 시장기가 들어서 음식을 좀 달라고 내시 홍득경에게 말하니 거절하고, 어득해는 노산군이 자꾸 그런 부탁을 하면 수레에서 내려 걸어가게 하겠다고 말한다. 이 광경을 지켜본 차성복이라는 상인이 하도 애처로워 마을 노파에게 부탁하여 백설기를 찌게 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대구포를 잘게 찢어 보따리에 함께 싸서 어소를 찾는다.

 임금님, 귀한 몸을 이렇게 막 대하는 인솔자가 너무 비정합니다. 아무리 어명이라 하지만 시장하다고 자실 것을 달라고 하는데 거절하는 모습을 보고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저가 보살 것 없지만 백설기와 대구포를 가져왔으니 품속에 안 보이게 넣어 가시는 길에 드십시기 바랍니다. 이 이름도 없는 장사꾼이 눈물을 머금고 올리니 너그러이 받아주시기 바랍니다.”하고 차성복이 말를 하니 단종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꼬옥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처럼 어명을 집행하는 관졸들은 눈물도 없이 비정하였지만 일반 백성들은 임금의 가는 길을 눈물로써 배웅하였다. 내시 홍득경이 왜 단종 임금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겠는가. 총책임자 어득해가 왜 눈감아 줄 수는 없었던가. 홍득경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위치이고 어득해는 잠깐 자리를 뜨면서 눈을 감아 줄 수는 있는 것이다. 어득해의 몸보신과 기회주의적인 면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신을 풀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좀 달라는데 한때 자기의 임금이었던 단종에게 어찌 그렇게 비정하게 대한단 말인가. 임금을 구걸하듯이 만들어 한때 지존이었던 분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았으니 그 부덕함은 역사에 기록되어 마땅하다. 모두가 자신의 출세를 위한 위선에 가득 찬 세조에 대한 과잉충성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자들도 김질이나 김효흡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소인배들인 것이다.

 김효흡이 말을 달려 격문을 훔쳐 달아나던 급창을 잡으려고 죽령을 넘었지만, 막상 격문을 보고 갑자기 욕심이 발동하여 마음이 표변한다. 뒷간을 오갈 때의 마음이 변하는 것은 생리작용이니까 이해는 되지만 뜻으로서 명세한 결의를 저버리고 변심을 하는 것은 인간만이 갖는 고유한 특성인가. 김효흡은 죽령을 넘어 한양이 가까워지자 자기가 봉직하던 기천현감이 보잘것없게 보이고, 더 큰 자리를 얻어 가문의 영광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안동부사 한상진이 수령들을 모아놓고 은근히 자기편에 가담하라고 회유를 하지 않았던가. 분명히 모신(謀臣) 한명회는 이 거사가 일어날 것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니 두 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당대에만 누리는 달콤한 꿀맛이지만 세대가 바뀌면 돌이킬 수 없는 치욕으로 후세에 추한 이름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영원히 사는 길을 가지 못하고 달콤한 권력의 유혹에 빠져 역사에 오명을 남기는 것이니, 대인과 소인배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두 번의 밀고에 의한 단종복위계획이 무산되었는데, 그것은 한명회가 깔아놓은 치밀한 덫에 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천하의 한명회가 책만 읽었지 지략이 모자라는 집현전 학사 출신들의 역모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언제 어디서나 변절자는 있게 마련이고 교활하게 동정을 염탐하여 뒤로 보고하는 끄나풀들도 있다. 선비 출신이 아니더라도 입신출세를 노리는 노비나 하인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셈이다.

 한명회는 계유정난 후 민심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만일의 사태에 만반의 대비를 하였다. 평소에 단종을 흠모하고 양위에 대해 은근히 불만을 표시해 온 성삼문, 박팽년 등의 집현전 출신과 그에 동조하는 세력들의 블랙리스트를 이미 만들어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계유정난 때 살생부를 만든 그 치밀한 지략을 발휘하여 역모 모의세력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 언젠가는 걸려들기를 기다리며 은밀히 덫을 깔아놓았다. 미리 잡아들여 문초하면 실토를 하겠지만 물증이 부족하겠고 민심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기에 그러지를 못했다. 또 핵심 주동세력만 제거하는 게 아닌 추종세력까지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2차 단종복위운동을 수습하고 난 후 한명회는 정창손과 신숙주 등 친한 사람들을 불러놓고 술상을 차렸고, 여기에서 오간 말이다.

 자준 대감의 지략은 천문지리를 통달한 장자방에 버금갑니다. 어떻게 하여 그 역모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가려내어 사전에 일망타진하였단 말입니까. 이 모든 공은 자준 대감의 몫이며 저희들은 우매하여 낌새조차 채지 못했으니 무어라고 감사의 말을 할지 모르겠습니다.”하고 정창손이 아부성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한다.

 맞습니다. 한 승상께서 누란의 위기에 있던 사직을 지키고 세조대왕의 영세를 보장하신 일등공신이십니다. 저는 항상 사타구니에 밤송이를 끼고 있는 듯한 갑갑하고 불안한 마음이 일거에 녹아내려 버렸습니다.”하고 눈치가 빠르고 교활한 신숙주도 맞장구를 친다.  

 허허, 내가 뭐 큰일을 하였다고 과찬의 말씀들을 하시오이까. 그냥 돌아가는 상황에 의구심이 많이 들고 징검다리도 두들겨 가며 건너라 하듯이 방심하지 않았기에 역모를 막을 수가 있었지요. 내가 좀 천문지리에 대해 눈이 좀 트인 것은 맞는 것 같소이다. 허허.”하고 한명회는 주변의 찬사에 흡족해하며 건배를 제의한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만약 명나라 사신 영접 연회장에 별운검이 없다 하더라도 미루지 말고 당일 결행하였으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완벽한 거사 성공을 위하여 뒤로 미룬 성삼문, 박팽년 등 주동세력의 우유부단함도 한몫을 하였다. 여기서 문신과 무신의 상황판단 능력에 많은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사육신을 국문하던 형장에서 유응부가 성삼문 등 문신들을 꾸짖는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상황판단을 할 줄 모르고 우유부단한 백면서생들과 함께한 것이 원망스럽다.”고 한 말이 바로 그것이다. 무신인 유응부는 산전수전 다 겪은 무인으로서 전장에서 적의 동태와 심리를 간파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당일 현장에서 완벽한 기회는 아니지만 거사를 단행하였더라면 성공 가능성도 있어,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한명회, 그는 세조의 장자방이라고 할 정도로 지략이 뛰어나고 상대의 심리를 간파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모신임에 틀림이 없다.


 금성대군의 단종복위계획도 한명회가 치밀하게 파놓은 함정에 빠져 실패한 것이다. 한명회는 단종을 영월로 유배할 때부터 영남지역 선비들이 거사를 도모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마주 보는 소백산을 넘으면 선비의 고장인 영남이 아니던가. 이미 생육신인 원호가 원주에서 내려오고, 영남의 이수형과 조여가 오가는 것도 알았고, 군위현감을 사임한 정사종도 영월로 왔다는 정보를 입수하였기에, 언제가는 선비들에 의한 역모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자기의 동생인 한상진을 안동도호부의 부사로 임명하여 내려 보내어 선비나 관리들의 동태를 철저히 감시하게 하였다. 한상진이 순흥에 위리안치한 금성대군은 물론, 순흥부사 이보흠을 감시하고 동태를 파악하는 첩자들을 심어두었다. 한 번씩 안동도호부 관내의 수령들을 불러 성향을 파악하여 자기 형에게 보내고 대비책을 마련하였다. 그중에는 기천현감 김효흡도 들어가고 이보흠과의 친분도 파악하여 보냈다.

 풍기현감 김효흡은 어느 날 이보흠으로부터 거사계획을 듣고 마음에 갈등이 일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준 사람은 이보흠이 맞지만 금성대군과 의기투합하여 단종복위계획을 세우고 있지 아니한가. 거사가 성공하면 공신이 되어 앞길이 확 트이지만 실패하면 사육신의 죽음처럼 삼족을 멸하는 비참한 상황을 동시에 그려보았다. 지금은 잘 나가는 김질대감을 생각해 보니 밀고의 유혹이 그를 가만 두지 않는다. 아마 조정에서도 이미 거사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어닥친다. 김효흡이란 인물은 라는 소중한 가치를 모르고 라는 사욕에 눈이 먼 관리이기에 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소인배였던 것이다. 그 점에서는 김질과 너무나 닮은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이자 변절자인 것이다.


 변절의 유혹을 견뎌내고 멀리 떠나가 은둔함 사람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수형이다. 그는 세조의 어린 시절 친구이었으나 왕위찬탈 후 벼슬을 버리고 그를 멀리하기 시작하였다. 세조는 어느 날 친구인 그를 불러 자기 곁에 남아주기를 바란다.

 영보, 자네가 내 곁에 있어주면 큰 힘이 될 텐데 어찌 벼슬을 내려놓고 쉬고 있단 말인가. 다시 돌아와 나를 좀 도와주게나. 내 주변에 권력에 욕심이 있는 자들이 나를 돕는다고 모여들고 있지만, 그럴수록 진정한 친구가 그리워지네. 나와 함께 힘을 모아 나라를 굳건하게 경영해 보지 않으려나.”하고 세조는 하소연 겸 회유를 하였다.

 상감의 말씀은 고마우나 나는 알다시피 유약한 사람이 아니던가요. 또 유학의 삼강오륜을 실천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서로 간의 인간적인 정이야 변함이 없겠지만, 내가 생명처럼 여기는 불사이군의 신조를 저버릴 수가 없으니 혜량하여 주시옵소서.”하고 이수형은 비장하게 말을 한다. 세조는 인간적인 정이 그리워 그를 가까이에 두고 함께 정사를 논하고 싶었지만 이수형의 강직한 성품을 아는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 후 이수형은 장인의 고향인 봉화로 내려가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한양땅를 찾지 않았다. 삼면의 벽을 막고 오직 한쪽 만은 열어둔 공북헌이라는 사당을 지어 오직 단종을 위한 일편단심의 충절을 실천하였다.


 한명회는 단종을 영월로 유배 보내는 데 자신의 의사가 전부 반영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도성과 가깝고 감시하기 쉬운 강화도로 유배를 보내기를 주장하였으나, 영월에서 수령을 지낸 신숙주가 유배지로서는 영월 청령포가 천혜의 장소라고 강력히 주장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금성대군을 순흥으로  유배 보낸 것은 이외이다. 대신들은 오히려 강화도로 보내어 단종과의 연결고리를 미리 차단하자고 주장하였지만 한명회는 거꾸로 순흥으로 보내자고 주장하였다. 누가 봐도 소백산을 경계로 하여 연락이 가능한 영월과 순흥이 역모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는 의견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교활한 한명회의 지략이자 포석이었던 것을 단수가 낮은 대신들은 잘 몰랐던 것이다. 한명회는 역모를 조장하여 단종과 금성대군을 일거에 제거하려는 위험하기도 비겁하기도 한 발상을 하였다. 그는 아마 사마천의 사기열전과 삼국지를 몇 번 읽었기에 책 속의 계략의 달인들로부터 배운 것을 현실에 적용하였다.

 이미 한명회는 금성대군과 이보흠을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는 호두알처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방심하는 척 내버려 두고 오판을 하여 거사를 꾸미게 하여 심어두었던 間者인 김효흡을 통하여 잡아버린 것이라는 역사에 대한 가설이 성립할 수도 있다. 이러한 술책은 정상적인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알더라도 치사하여 실행하지 않고, 사람은 고귀한 본연의 인간성을 저버리지 못한다는 특성을 악용하여 의표를 찌르는 발상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금도를 넘는 천박하고 비열한 책략으로 순수한 인간의 성벽을 공략한 것이다. 이렇듯 희대의 권모술수의 달인이요 금도를 넘는 몰염치한 계략의 대가인 한명회가 있었기 때문에 복위운동은 실패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죽어서 부관참시를 당하는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이었다.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유발한 계유정난과 단종복위운동은 잠자고 있던 선비정신을 일깨워, 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증명한 비극적이면서도 교훈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엄흥도, 정사종, 추익한과 같은 신하들의 눈물겨운 충절의 이야기를 파생시킨 한 편의 대하드라마였다. 단종애사라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는 의로운 길과 배반의 길을 가는 인물들을 설정하여 중간중간 시청자들로 하여금 비애의 눈물을 짓게 하였었다. 종영을 앞두고는 권선징악의 결과를 내놓아 슬픔을 승화시켜 감동의 눈물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하였다. 인생은 짧고 역사는 영원하다는 진리를 일깨우고, 일시적인 영달은 짜릿하게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사라지지만, 의로운 희생은 마음의 근원을 흔들어 그 희열을 영혼 속에 영구적으로 저장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해 본다. “의로운 길은 험난하고 희미하여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가다가 다치기도 하지만 그 끝에는 환희가 맞이한다. 배반의 길은 달콤하고 야릇하여 쉽게 발길이 가지만, 그 단맛이 다하는 종점에는 고통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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